홍정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홍정표'''
'''洪正杓'''

<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홍창성(洪昌成)·홍창수(洪昌秀)
홍정성(洪正成)·홍정수(洪正秀)
<color=#fff> '''본관'''
남양 홍씨[1]
<color=#fff> '''출생'''
1885년 8월 3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추곡리
<color=#fff> '''사망'''
1934년
경기도 안성군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정표는 1885년 8월 3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추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민들이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양성읍으로 행진했을 때, 그는 군중과 함께 양성읍내를 돌며 면사무소, 주재소 등을 에워싸고 만세를 부른 다음 서서히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원곡면민과 합세한 뒤 2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대한독립만세를 드높이 부르며 횃불과 등을 흔들며 개선 군대와 같이 의기충천의 기세로 주재소로 향하여 행진을 하였다.
군중은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은 주재소에 불을 질렀고 이때 홍정표도 돌을 던졌다. 다음으로 시위행렬은 양성우편소로 향하여 투석하고 방화하였다. 군중들은 사무실 안에 들어가 서류와 도구 등을 사무소 앞마당에 끄집어내었다. 군중은 또 양성면사무소로 들어가 호적원부를 꺼내어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한 후,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원곡면으로 돌아가던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을 포박하고 사무소를 불질렀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홍정표는 소위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출옥 후 안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4년경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홍정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당홍계 34세 '''표(杓)''' 식(植)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