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Julio César Cháv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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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멕시코, 소노라 주, 오베르곤
생년월일
1962년 7월 12일
신장
171cm(리치 169cm)
출전체급
슈퍼페더, 라이트, 라이트 웰터, 웰터
스탠스
오소독스(오른손잡이)
통상 전적
115전, 107승(86KO) 6패 2무
별명
Mr.KO, The Grand Mexican Champion, The Caesar of Boxing
1. 개요
2. 상세
2.1. 초기생애
2.2. 슈퍼 페더
2.3. 라이트급
2.4. 라이트 웰터급
2.5. 웰터급
2.6. 은퇴
3. 파이팅 스타일
4. 기타


1. 개요


멕시코의 복서. 데뷔 후 87연승을 거두다가 퍼넬 휘태커에게 무승부를 거뒀고 89연승을 찍은 후 프랭키 랜달에게 첫 패를 당했다. 비록 랜달에게는 리벤지에 성공했지만 오스카 델 라 호야에게 패하면서 세계패권을 넘겨주며 은퇴하였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파워와 스태미너를 바탕으로 수준높은 기술을 구사하며 '''체급을 올려가면서도 높은 피니시율을 거둔''' 화끈한 복서다. 메이웨더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통상 체급을 올리면 결정력이 약해지고 임펙트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챠베스는 그와 상반되는 실적을 거뒀다.
스타성이나 경기력, 커리어에서 보여준 도전등 여러 면에서 복싱 역사상 최고의 미들급 복서로 인정받는 복싱계의 레전드이다.

2. 상세



2.1. 초기생애


1962년 7월 12일 소노라주 오베르곤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아주 많아 5남 5녀 중 막내였고, 아버지가 철도원이었기 때문에 유년시절 형제들과 버려진 열차안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의 옷을 세탁해주고 다림질을 해주며 돈을 벌었는데, 그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고생시키지 않고, 좋은집을 한 채 사다주기 위해 돈을 벌려고 복싱을 시작하였다.

2.2. 슈퍼 페더


만16세때 아마추어 복서로 시작하여 이듬해 17세때는 프로로 데뷔하였다. 1979년에 데뷔하고서 5년간 43연승을 거뒀고, 44전차에 마리오 마르티네즈에게 승리를 거두며 WBC 슈퍼페더급 타이틀을 거뭐진다. 이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총 3년간 9명의 도전자들로부터[1] 타이틀을 방어해냈고, 1987년 말 라이트급으로 월장한다. 이때까지 차베스는 56연승을 거두고 있었고, 이중에서 KO만 45개로 KO율이 80%를 넘어갔다.

2.3. 라이트급


만 25세가 되던 1987년 11월 라이트급으로 월장하여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이던 푸에르토 리코의 에드윈 로자리오와 맞붙었다. 11라운드의 치열한 접전 끝에 차베스의 TKO승. 초반 에드윈의 풋워크와 잽이 두드러져보이며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순식간에 달라붙어 인파이팅을 펼치고 우세한거리를 잡은 결과 에드윈이 731번의 펀치 중 261(36%)번을 맞추었고, 차베스는 743번중 450(61%)를 맞추며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주었고 스포츠 일간지에서는 차베스를 멕시코 최고의 파이터로 치켜세웠다.
이후 라이트급에서 3번의 방어전을 거쳐 총 6연승을 거두고 또다시 월장하여 타이틀전을 갖게된다. 라이트급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한번을 제외한 모든 경기가 KO승이고 이때까지 총 전적은 62연승 50 K.O

2.4. 라이트 웰터급


메이웨더의 삼촌 로저 메이웨더와 WBC 라이트 웰터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걸고 맞붙으며 화려한 월장식을 가졌다. 로저 메이웨더와는 이미 슈퍼페더급 타이틀을 두고 맞붙은 바 있었으나, 차베스가 2라운드만에 넉아웃 시키면서 손쉽게 이긴바 있었다. 라이트웰터에서의 리매치는 10라운드의 접전 끝에 11라운드 시작전 로저의 세컨드에서 기권을 선언하며 차베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90년 3월 17일에는 IBF무패 챔피언인 맬드릭 테일러와 통합타이틀을 두고 맞붙었다. 초반 8라운드 동안 테일러가 우세를 펼치며 경기를 주도했지만, 차베스는 남은 4라운드에 회복을 도모하며 역전을 노렸다. 30초를 남겨둔 마지막 12라운드에 차베스가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맬드릭에게 작렬시켰고 맬드릭은 그대로 넉아웃되면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2] 이 경기는 링스매거진으로 부터 1990년 올해의 파이트로 선정되었고, 나중에는 90년대 최고의 파이트로 선정되었다.
1990년 9월 12일에는 WBO챔피언이었던 헥터 카마초와 맞붙어 12라운드에 걸친 혈전을 벌이며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이 경기 직후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 의전차량을 차베스에 내주기도 하였다.
총 1993년까지 11번의 WBC, WBC&IBF통합 타이틀 방어전이 있었지만 모두 격퇴하고 라이트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내었다.
라이트웰터급 타이틀을 지킬 동안 그의 총 전적은 87전 70KO, 웰터급 타이틀을 지킬 동안 총 25전 중 KO승이 무려 20개였다. 나머지 5경기는 2경기만 판정승이었을 뿐, 3경기가 상대방이 경기속행을 포기하여 생긴 기권승이었다. 그만큼 차베스란 복서는 높은 KO율에 화끈한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2.5. 웰터급


차베스는 슈퍼페더, 라이트, 라이트 웰터 간 총3체급을 제패하고서 이제 웰터급에 도전한다.
1993년 9월 웰터급 타이틀을 두고 맞붙은 상대는 방어의 귀재 퍼넬 휘태커. 본래 차베스는 1980년 말부터 퍼넬 휘태커와 맞붙으려 했으나, 그간 퍼넬의 팀이 차베스와 맞붙는걸 꺼려서 서로 활동체급이 겹침에도, 93년에야 대회가 성사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차베스가 나이를 먹을 때까지 휘태커가 기다린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차베스의 나이는 만31세, 휘태커의 나이는 만29세로 2살이 어렸다.
치열한 접전 끝에 심판 전원일치 무승부로 기록되었으나#, 복싱 잡지들은 휘태커의 근소 우세 판정승으로 보았다.

2.6. 은퇴


프랭키 랜달과의 2연전에서 1패 후 리벤지에 성공하는 등 여전히 정상에 위치한 차베스였지만, 화끈한 인파이터 스타일의 멕시코 출신 복서들이 대부분 그렇듯 차베스 역시 서서히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1996년에 만나게 된 선수가 바로 훗날 차베스처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는, 당시 만 23세의 초신성 오스카 델 라 호야. 이 경기에서 차베스는 초반에 저돌적인 경기운영을 통해 호야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스텝과 연타 속도 그리고 자신의 최대 강점이라고 판단되었던 파워에서마저 밀리며 1라운드부터 윗눈썹에 열상을 입는 등 매우 고전했다. 결국 눈가가 심하게 찢어지며 출혈이 심해지자 코너에서 닥터와 심판이 상의한 끝에 차베스의 TKO패를 선언했다. 커리어 사상 두번째로 참담한 패배였고, 동시에 초신성 델라 호야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게 되는 경기가 되었다. 이후 미구엘 앙헬 곤잘레스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 이외에는 전승을 거두며 1998년에 다시금 델라 호야에게 도전하게 되지만, 전체적인 경기 양상은 바뀌지 않았고, 8라운드 종료 직후 코너에서 기권하며 호야에게만 2연패를 당했다.#
이후 승패를 반복하던 중 2000년도 7월 라이트웰터급에서의 코스챠 추와의 대결에서 커리어 사상 가장 참담한 패배를 당하며 정상권에서 내려오게 된다.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완벽에 가까운 스턴을 당하며 다운을 내어주고, 10라운드에는 같은 인파이터형인 추를 상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코너에 몰려 두들겨맞자 레프리가 직접 나서서 경기를 중단했다. 당시 만 38세. 세월의 흐름은 차마 비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이르기까지 경기를 계속했고, 그로버 와일리와의 경기에서 4라운드 이후 기권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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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이팅 스타일


'''인파이터의 교과서'''
오른손잡이의 오소독스 스탠스에 오른손과 왼손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거나 너무 가깝지 않은 정석의 커버링과 원투를 중심으로한 인파이팅으로 가장 교과서적으로 이상적인 인파이터형 복서라고 평가받는다. 구체적으로 커버링을 잘 활용하고 위빙과 더킹을 잘 섞어주며 회피와 블로킹등 기본적인 움직임을 잘활용한 방어를 보여주었고, 원투펀치와 래프트 훅, 바디, 라이트콤보로 필요할 때에 단타와 연타를 언제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높은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방어력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는데, 위빙과 더킹, 패링, 커버링을 전부 활용한 그의 방어는 그와 맞붙는 대부분의 상대가 뚫기 어려워 했다.
세계를 제패한 대부분의 복서들이 천부적인 신체능력을 이용해 도저히 남들은 따라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3] 비해 차베스는 정석적이고 교과서적인 스타일의 극한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복서'''였다. 물론 이 정도 복서이니만큼당연히 재능도 바쳐주었겠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기초를 통해 실제적인 동작들을 활용하여 싸워나갔다는 면에서 차베스는 피지컬에 의존하는 재능파 복서들보다 높게 평가해줄 여지가 있다. 초보 복서[4]들이 참고하고 따라해볼 수 있는 교본이기도 하다. 특히 차베스가 활약하던 당시 한국 권투계는 차베스와 같은 멕시코복서들의 스타일과 유사한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므로 많은 프로복서들이 차베스를 모범적인 복서로 꼽은 바 있다.

4. 기타


  • 아들인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주니어도 프로복서다.# 전적은 49승 2패 1무. KO율은 60%로 아버지에는 조금 못미치나 아버지보다 체구가 커서 신장이 185cm에 리치도 185cm나 된다.[5] 슈퍼웰터, 미들, 슈퍼미들급 챔피언을 지냈으며, 2015년 라이트헤비급으로 월장하여 현재 라이트 헤비급 세계랭킹 10위다.# 다만 당대 경쟁상대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뛰어난 기본기와 펀치력을 자랑했던 차베스와는 달리 경쟁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기본기가 문제가 되고 있으며, 계체량 역시 여러차례 통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숱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라이트헤비급으로 월장한 것으로 보이나, 라이트헤비급 선수들의 펀치력을 견뎌내지 못했고 신체적 우위 역시 상당 부분 사라지며 폴란드의 안제이 폰파라에게 커리어 사상 첫 코너스탑 패배를 당하는 등 고전중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탄탄한 기본기로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와 비교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

[1] 메이웨더의 삼촌인 로저 메이웨더를 포함[2] 주심이 경기종료 2초를 남겨두고 섵부르게 넉아웃을 선언한게 아니냐며 맬드릭측에서 거센 항의가 있었고, 주심이 빨리 말리지 않았다면 맬드릭이 승리한 경기였다며 수많은 복싱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지만, 주심인 스틸리는 이후의 인터뷰에서 내가 라운드 종료시간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닐 뿐더러 경기종료시간과 상관없이 너무 많은 정타를 맞아 다운된 것이기에 경기를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였다.[3] 로이 존스 주니어의 노가드 프리스타일,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숄더롤과 우주방어, 마이크 타이슨의 위빙과 피커부는 타고난 재능이 없이는 쓸 수 없는 기술들이다.[4] 말 그대로 처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갓아마추어 복싱에 입문한 새내기 복서들.[5] 손가락 끝에서 끝까지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