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US TOWN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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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타츠로의 솔로 첫 정규앨범. 밴드 SUGAR BABE로 1973년에 프로로서 데뷔를 했지만, 3년 후 1976년에 해체하고 어쩔 수 없이 솔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밴드 해체에 의한 멘탈 데미지와, 슈가베이브 시절 목표로 했던, 60년대 스타일과 레코드 매니아로서의 취향이 당시 일본음악 트렌드에 전혀 먹히들질 않아서 좌절을 하게 되고, 자신이 이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감이 안잡혔다고 한다. 솔로 활동을 하기로 했지만서도, 어느 쪽이든 객관적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두고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판단해보지 않고선 나아갈 수 없다. 이게 솔로 앨범을 해외에서 녹음하려고 생각했던 이유였다.
작곡에 관해서, 슈가베이브는 실질적으로 야마시타의 원맨밴드였다곤 하는데, 프로듀싱이니 편곡이니 해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뻔한 말들이었고, 야마시타 자신도 그런 연유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 처음으로 솔로앨범에서는 프로듀싱과 편곡을 제3자에게 부탁해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이 듣고 자라온 아메리칸 히트 발라드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사운드를 들려주면, 어떤 것이 나올지 프로듀서, 편곡자, 뮤지션부터 스튜디오와 엔지니어까지 자신이 골라서, 그 위에 자신의 곡과 노래를 얹어보면 자신의 예상 수치와 현실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날지 그 때문에, 레코딩은 무조건 뉴욕에서, 프로듀서와 편곡자는 60년대와 70년대 스타일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야 했다고 한다.
작곡에 관해서, 슈가베이브는 실질적으로 야마시타의 원맨밴드였다곤 하는데, 프로듀싱이니 편곡이니 해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뻔한 말들이었고, 야마시타 자신도 그런 연유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 처음으로 솔로앨범에서는 프로듀싱과 편곡을 제3자에게 부탁해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이 듣고 자라온 아메리칸 히트 발라드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사운드를 들려주면, 어떤 것이 나올지 프로듀서, 편곡자, 뮤지션부터 스튜디오와 엔지니어까지 자신이 골라서, 그 위에 자신의 곡과 노래를 얹어보면 자신의 예상 수치와 현실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날지 그 때문에, 레코딩은 무조건 뉴욕에서, 프로듀서와 편곡자는 60년대와 70년대 스타일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야 했다고 한다.
이런 계획을 모토로 편곡자와 뮤지션 몇 명을 고르고, 당시 솔로 계약하고 싶다고 오퍼가 들어온 레코드사 몇 군데와 이야기하면서, 당시에는 해외 레코딩은 아직 특별한 작업이었던 데다, 뮤지션과 스튜디오의 섭외 등 현지 코디네이팅도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야마시타의 요구에는 스튜디오와 뮤지션의 급이 높아 단가가 너무 비싸고 막대한 경비가 들어,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 판매량 실적으로는 예산편성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어느 레코드 회사든지 난색을 표했다. 그런 와중에 딱 한곳, RVC에서 제작 디렉터로서 커리어를 갓 시작한 코스기 류조[2] 가 손을 내밀었다.
RVC에서 일본의 락을 하고싶어했던 코스기는, 매니지먼트 회사 '아워 하우스' 대표인 마키무라 켄이치의 소개를 받았는데, 오기쿠보 로프트에서의 슈가베이브 해체 콘서트를 보고, 야마시타와 계약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때 이미 CBS소니와 계약을 결정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사인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본인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RVC에 와 있던 야마시타 타츠로에게 코스기는 '너와 같이 하고 싶은데..'라고 이야길 꺼냈다. 이에 대해 야마시타 타츠로는 ' 뉴욕 레코딩을 하고 싶으니, 그 준비를 해주면 같이 하는 걸로 하자.'는 얘기로 이어지고, 정식 오퍼 리스트를 야마시타에게서 받은 코스기는, 뉴욕에서 유학생활 경험을 살려 홀로 미국으로 넘어가, 야마시타가 지명한 프로듀서 몇 명을 직접 섭외한 결과, 제 1 후보였던 '찰스 칼렐로'의 OK를 받고,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산 관계로 앨범 트랙 전부를 뉴욕에서 하는건 불가능해서, 이에 대해선 'LA에는 뮤지션 친구가 있어서, 걔네들한테 제작비용 반띵을 부탁해볼까' 하는 얘기가 나왔고,[3] 우연히 그 친구라는 사람이 야마시타 타츠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던 것도 인연이 되어, 이렇게 RVC와 계약이 추진되어 솔로 앨범의 준비가 갖춰졌다.
2. 트랙리스트
2.1. New York Side
레코딩은 당초 뉴욕에서 2주, 그 후에는 LA로 옮겨 1주일로 하는 스케줄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해외, 여태껏 밴드도 소소하게 하던 게 갑작스럽게 판이 커졌다. 게다가 상대는 1티어 뮤지션 집단. 뉴욕에서 세션이 시작되고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목소리도 안나왔다고 한다. 찰스 칼렐로는 좋게 봐줘도 친절하게 봐줄 수가 없었고, 뮤지션도 버릇이 안좋은 인간들 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드럼 앨런 슈월츠버그(Allan Schwartzberg)와 엔지니어가 도와준 덕에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23살이었던 야마시타에게 있어,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인간관계는, 돈 얘기와 인종차별이란 불쾌한 부분까지 포함해 어마어마한 컬쳐 쇼크였지만, 그래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와 거의 맞아떨어져서 일단 안심했다고 한다. 그건 무엇보다 자신의 미적 의식이 기본적으론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내어, 이후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티타임에 잠깐,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찰스의 질문에, 이 때다 싶어서 핼 블레인[4] 과 버디 샐츠먼[5] 을 이야기했는데, 찰스의 '걔네들은 확실히 1967년에는 탑 클래스였지.'라는 한 마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말이, 지금까지의 팝 매니아였던 야마시타의 음악적 방향성을 전환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한마디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찰스와의 작업을 계기로 후에 야마시타는, 락앤롤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없었으면, 새로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은 분명히 10대들이 듣고 좋아할만한 음악만을 쫓아, 한물 간 소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중요한건 그런 게 아니라 두왑을 좋아해도 랩은 할 수 있다며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 1. Circus Town
작사 : 요시다 미나코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뉴욕에서 자주 연주했던 16비트의 곡을 이 곡으로 재현했다. 뉴욕을 이미지화한 곡. 간주 색소폰은 루 마리니. 인트로에 피콜로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검투사들의 입장'에서 따왔다.
뉴욕에서 자주 연주했던 16비트의 곡을 이 곡으로 재현했다. 뉴욕을 이미지화한 곡. 간주 색소폰은 루 마리니. 인트로에 피콜로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검투사들의 입장'에서 따왔다.
- 2. Windy Lady
작사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본래, 슈가베이브 시절 후기 레퍼토리였지만, 당시에는 레코딩할 기회가 없어서 이 앨범에 수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카고 R&B를 좋아했기 때문에, 시카고의 별칭인 '윈디 시티'를 떠올려 만든 작품. 야마시타가 가지고 있던 데모테이프를 모두 들은 찰스 칼렐로에게서 '니 노래는 뉴욕보단 시카고 스멜이 난다.'는 이야길 듣고,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작법이 의도한 대로 맞아떨어져서 기뻐했다고 한다. 간주 색소폰은 맨하탄 재즈 퀸텟의 멤버 조지 영.
본래, 슈가베이브 시절 후기 레퍼토리였지만, 당시에는 레코딩할 기회가 없어서 이 앨범에 수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카고 R&B를 좋아했기 때문에, 시카고의 별칭인 '윈디 시티'를 떠올려 만든 작품. 야마시타가 가지고 있던 데모테이프를 모두 들은 찰스 칼렐로에게서 '니 노래는 뉴욕보단 시카고 스멜이 난다.'는 이야길 듣고,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작법이 의도한 대로 맞아떨어져서 기뻐했다고 한다. 간주 색소폰은 맨하탄 재즈 퀸텟의 멤버 조지 영.
- 3. Minnie
작사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20대가 되고서는, 재즈와 보사노바 코드 진행에 매료되어, 써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대가 되고서는, 재즈와 보사노바 코드 진행에 매료되어, 써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 4. 永遠に
2.2. Los Angeles Side
뉴욕 세션을 끝내고, LA로 옮기니, 뮤지션은 친절했지만, 장비들이 오래되고 후져서, 모든 게 어긋났다. LA에서 세션이 시작된 순간, 드러머 존 사이터가 데려온 멤버가 야마시타가 주문한 음을 전혀 못 내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특히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가 너무 쓰레기여서, 첫째날이 가고 완전 진이 다 빠진 야마시타는 이대로 계속해도 답이 안 나으니 걍 돌아갈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존 사이터가 코러스는 케니 알트먼과 제리 예스터에게 부탁해볼 예정이다.'라는 이야길 듣고 '잠깐만. 알트먼이 LA에 있으면 그 사람한테 베이스를 부탁해보자'고 제안해서, 베이스는 바로 갈아버리고, 기타는 당시 키보디스트 존 홉스가 밴드 동료인 빌리 워커를 데려와서, 아슬아슬하게 이틀 남겨놓고 어떻게든 리듬 파트 녹음까지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 1. Last Step[7]
작사 : 요시다 미나코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이 곡도 요시다 미나코의 FLAPPER에 수록된 곡을 셀프커버 했다. 원래는 모타운 스타일을 노리고 썼다.
이 곡도 요시다 미나코의 FLAPPER에 수록된 곡을 셀프커버 했다. 원래는 모타운 스타일을 노리고 썼다.
- 2. City Way
작사 : 요시다 미나코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일본에서 써서 갖고간 곡인데,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져서, 급하게 현지에서 다시 쓰게된 곡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써서 갖고간 곡인데,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져서, 급하게 현지에서 다시 쓰게된 곡이라고 한다.
- 3. 迷い込んだ街と
- 4. 夏の陽
작사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Circus Town과 같이, 어차피 LA갈거면 그런 이미지의 곡을 써서 간 게 그림이 딱 맞아서, 존 홉스의 피아노 연주에 잘 어울렸던 곡. 야마시타 자신은, 이후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조금 이색적이지만, 상당히 맘에 들어서 그 후로도 라이브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은 곡이라고 한다.
Circus Town과 같이, 어차피 LA갈거면 그런 이미지의 곡을 써서 간 게 그림이 딱 맞아서, 존 홉스의 피아노 연주에 잘 어울렸던 곡. 야마시타 자신은, 이후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조금 이색적이지만, 상당히 맘에 들어서 그 후로도 라이브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은 곡이라고 한다.
3. 기타
2002년, '야마시타 타츠로 RCA/AIR Years 1976-1982'로, Circus Town 앨범부터 For You 앨범까지 야마시타 타츠로 본인 감수 아래,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더불어 CD에는 각 앨범마다 미발표음원을 포함한 보너스트랙을 수록해 다시 리이슈되었다. 본 앨범에는 미발표음원과 카라오케 버전(MR) 2곡을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했다.[9]
[1] 이후 여러번의 재발매를 거쳐 현재는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보너스 트랙 2곡이 수록된 2002년 발매 버전이 최종 버전이다.[2] 小杉理宇造. 현, 쟈니스 사무소의 고문 겸 자회사인 쟈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다. 야마시타 타츠로 부부가 소속된 스마일 컴퍼니의 사장이었지만, 2017년에 퇴임했다. [3] 그 친구라는게 존 사이터(John Seiter)라고 터틀스라는 밴드의 드럼을 맡았던 멤버였다.[4] 1929년생. 미국의 드럼 세션 연주자이며, 더 로네츠의 Be My Baby의 드럼 세션으로 유명하다. 2018년에 그래미 특별공로상 수상.[5] 이 역시 드럼 연주자[6] 吉田美奈子.1953년생. 사실 이 뮤지션도 커리어가 후덜덜하다. 작사, 작곡, 코러스까지 다 하는 다재다능한 뮤지션. 주로 외부 작업으론 작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유튜브에 나돌아다니는 시티팝 믹스에도 그녀의 노래가 자주 써먹히기도 한다.[7] 최초 발매된 포맷이 LP 버전이기때문에 LA사이드 1번 부터 시작하지만, CD버전은 그대로 5번부터 시작한다.[8] 웨스트 코스트 락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9] Circus Town과 Windy Lady의 인스트루멘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