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Ki Kids
1. 개요
일본의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 듀오. 쟈니스 첫 남성 듀오이자 첫 칸사이(킨키) 지방 출신 그룹이다. 약칭은 킨키(キンキ). 음반 레이블은 쟈니스 엔터테인먼트.
KinKi Kids의 K는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며, 'Ki'가 3번 들어가 있기 때문에 팬클럽 이름은 [Ki]×3이다. 회원번호는 코이치가 1번, 츠요시가 2번.
2. 멤버
3. 이력
1991년 5월 5일 히카루겐지의 요코하마 아리나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 92년 유닛 결성[3] . 그룹명이 정해지기 전에는 '쟈니스 칸사이구미', '도모토 브라더스', 'W도모토'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당시 이노하라 요시히코, 나가세 토모야와 함께 4인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그냥 소문일 뿐이었다고. 1993년 4월 4일 방송된 キスした?SMAP 1화에서 정식 그룹명이 KinKi Kids로 결정되었다[4] . K를 모두 대문자로 통일하기 시작한 건 1994년 말부터. 1997년 7월 21일 싱글 '유리의 소년(硝子の少年)'과 앨범 'A album' 동시발매로 CD 데뷔[5] .
데뷔 전부터 특이한 이력으로 유명한데, 두사람 모두 같은 킨키지방 출신[6] 1979년생으로, 생일은 코이치가 1월 1일, 츠요시가 4월 10일로 딱 100일 차이가 난다.[7][8] 또한 성이 똑같은 도모토[9] 이기 때문에 형제로 오해받는 일이 많지만 전혀 남남이다. 가족 구성원의 이름도 비슷하며[10] , 쟈니스 사무소에 들어가게 된 이유도 신기하게 둘 다 '''누나가 제멋대로 이력서를 보내버려서'''(...)라고 할만큼 기이한 인연이기도 하다.[11] 게다가 둘 모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다.[12] [13]
1997년, '유리의 소년(硝子の少年)[14] '과 'A album' 으로 싱글과 앨범이 동시에 데뷔하자마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기록한다. 당시에는 아이돌 가수의 최고 싱글판매량을 26년만에 갱신할 정도의 기록이었다.[15]
데뷔 이후 지금까지 발매한 41장의 싱글이 모두 오리콘 위클리 차트 초등장 1위를 기록해 세계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갱신 중이다. 그리고 2016년 싱글 '薔薇と太陽'가 1위를 달성하면서 20년 연속 위클리 1위를 기록하였고, 이것은 역대 1위 기록이 되었다. 앨범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대로 내는 것도 특징으로 그에 컨셉을 맞춰 앨범을 제작한다. 2021년 현재 O 앨범까지 발매되었다. 최근에는 그룹 활동보다는 솔로 활동에 비중을 크게 두기 때문에 싱글이나 앨범 발매 간격이 점점 길어져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작사작곡이 가능하며, 자작곡은 주로 솔로활동에서 피로하고 있다[16] .
1996년부터 2001년까지 <LOVE LOVE 아이시떼루>라는 레귤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14년 9월 28일, 2001년에 첫방영된 <도모토 쿄다이>에 이어 십수년간 진행하던 <신 도모토 쿄다이>가 종영되었다. 이후 2014년 10월 26일부터 후지 테레비에서 <KinKi Kids의 붕부붕>이라는 레귤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4. 특징
콘서트 중 토크가 긴 걸로 유명한데, 토크만으로 1시간 반을 넘겼던 때도 있다. 오프닝 토크만 30분을 한 적도 있을 정도. 또한 매년 1월 1일 공연에서 코이치의 생일을 축하한다[17] .
이미지 컬러는 코이치가 빨강, 츠요시가 파랑. 콘서트에서 사용하는 마이크의 손으로 잡는 부분이 각자의 컬러로 되어 있다. 데뷔할 당시 사무소에서 정한 둘의 이미지 컬러는 코이치가 파랑, 츠요시가 빨강으로 지금과 반대였지만,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지금처럼 바뀌었다.
쟈니즈웹에서 각자의 웹일기를 쓰고 있다. 코이치는 'Show Must Go On', 츠요시는 'Love Fighter'. 둘다 비정기적으로 갱신되며, 특히 코이치는 일기가 아닌 연기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갱신이 드물다.[18]
쟈니스 카운트다운콘서트에서 사회를 맡고 있으며 98년부터 4년간 방송했던 러브러브 아이시테루에서 같이 레귤러를 맡았던 시노하라 토모에와 오랜 친구사이이다. 시노하라 토모에가 신도모토형제에 나왔을때의 둘의 반응을 보면(...).[19]
매년마다 홍백 측에서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 데뷔한 년도에는 같은 날 다른 공연 일정이, 그 이후에는 줄곧 카운콘 때문에 아쉽게도 출장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7년,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연해 유리의 소년(硝子の少年)을 피로했다.
고베 대지진 자선 활동의 일환으로 TOKIO, V6와 함께 스페셜 유닛인 J-FRIENDS를 결성해[20]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 동안[21] 활동했다.
쟈니스 후배들 사이에선 '''킨키키즈의 가운데에서 춤을 추면 메이저 데뷔한다'''라는 도시전설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사무소에서 아직 데뷔하지 못했거나 갓 데뷔해서 일거리가 없는 경우 선배 그룹의 백댄서를 맡는 경우가 많은데 쟈니스도 그런 형식.
그 중에서 킨키키즈의 경우 카메라에 두 사람을 함께 잡을때는 중앙 공간이 비는데 이 때 백댄서 중에 이 중앙 공간에 비추어지는 사람은 곧 데뷔를 한다는 것.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자신이 첫 MC를 맡았던 버라이어티 방송인 제네레이션 천국에서 한 발언인데, 앞에 있던 쟈니스 Kis-My-Ft2의 멤버들이 별다른 반론을 안한것을 보면 아마도 쥬니어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두 명다 솔로 앨범은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중이다. 데뷔 초 도모토 쿄다이의 전신이 되는 러브러브 아이시떼루라는 방송을 하면서 출연진으로 인연을 맺게된 일본 포크 록의 거장 요시다 타쿠로에게 두 사람은 기타와 작곡의 노하우를 배웠고, 이후 각자의 솔로 활동은 각자의 자작곡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물론 KinKi Kids 활동시에도 이따금씩 자작곡을 싣기도 했고, 츠요시와 코이치가 공동으로 만든 음악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둘이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중. (우와사를 막고자 일부러 친하지 않은 척 한다는 말도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당히 거리감을 두면서 프라이벳을 존중해주는 사이. 이로 인해서 불화설이나 해체설이 종종 대두되곤 했는데, 두 사람은 이에 대해서 계속 해명을 해야만 했다. 츠요시는 "코이치의 취미나 관심사가 나와는 맞지 않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일 뿐이며, 코이치를 이해한다"라며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두 사람은 둘이 아니면 KinKi Kids가 아니다라는 인터뷰도 자주 하는등, 그룹 멤버로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중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츠요시가 과호흡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던 시절에는 코이치가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토크에 임하거나 하면서 배려해준다는 일화가 대표적. 두 사람 개인적으로 같이 어울리지는 않아도(둘의 목격담이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씩 있긴 하다) 공통 친구인 나가세 토모야와는 셋이 어울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셋이서 낚시 여행 갔다가 러브 호텔에서 숙박한 일화가 대표적.
데뷔전에 찍은 드라마로[22] 인해 여러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설이 있었다. 추측이 아니라 기자들이 기사까지 낸 적도 있었다고 이 소문을 없애려고 소속사에서 택한게 각자 솔로 활동이고 그로 인해 악성 개인팬(악개)이 많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악개가 많기로 유명한데 위에서 말했듯이 소속사의(개같은)대처 때문. 심한 경우에는 콘서트 중 솔로곡이 나오면 악개들은 다 화장실로 간다는 말도 있었다. 킨키는 계속해서 악개들을 저격하고 싫어하는듯한 태도를 당당히 보인다 [23]
5. 음반
5.1. 싱글
5.2. 앨범
5.3. 베스트 앨범
6. 여담
쟈니스 사무소의 사장인 쟈니상과의 엽기적인 네타가 많다. 소속 가수들과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쟈니상과 다른 가수들의 일화 중에서도 재밌는 일화가 많지만, 유독 킨키와는 대폭소(...) 일화가 많다. 유투브에 영상도 있으니 궁금하다면 직접 보는 걸 추천. [도모토들이 이 영상 하나로 웃겨드립니다 (부제: 쟈니상 폭로전)
- 뉴욕 가서 뮤지컬을 보게 된 킨키와 쟈니. 쟈니상이 'YOU들 분명 졸거야'라고 하기에 킨키는 '아니에요. 안졸아요. 제대로 볼 거에요'라고 대답했고 실제로도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정작 쟈니상이 옆에서 곯아떨어졌다(...) 그러더니 1막 끝나고 일어나며 '그만 가자! YOU들 졸다니 최악이야!!!!'라고 되려 킨키에게 역정을 냈다.
- 중학교 때 개교기념일이어서 학교를 쉬게 된 츠요시. 당시 합숙소에서 점심 때쯤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다가 쟈니상을 마주쳤는데, 쟈니가 'YOU 뭐하고 있어?'라고 해서 학교 휴일이라고 하니 그럴 리가 없다고 화를 냈다. 당황한 츠요시는 '오늘은 학교가 세워진 날 있잖아. 그래서 학교 쉬어.'라면서 설명했는데 쟈니에게 돌아온 말은 '거짓말하고 앉아있네'(...)
- 쟈니는 콘서트나 공연이 있을 때 무대를 모니터하고 메모한 뒤에 이렇다 저렇다 조언을 해 주는데 본인이 쓴 메모를 보면서 'YOU 이거 뭐라고 적었는지 알아?'라고 매번 묻는다고. 그걸 들은 츠요시의 반응은 아무리 사장님이라지만 '니가 쓴 거잖아'라고 말하게 된다고 한다.
- 츠요시가 전화가 와서 확인해 보니 쟈니상이었다. 전화를 받아 '네, 여보세요?' 했더니 '누구야?'라고 물어서(...) 츠요시는 쟈니상에게 처음으로 '하????????(뭐??????????)'라고 했다.
- 코이치의 반려견의 이름은 '팡'이다. 쟈니상이 코이치에게 강아지 이름을 물어봐서 팡이라고 했더니 쟈니상은 팡꿍을 '브레드! 브레드'라고 불렀다. 어쨌든 가타카나로 썼을 때 그 빵이 맞긴 맞다(...)
[1] 동시 발매.[2] 코이치가 만든 이름으로 ' 케이아이바이쓰리'로 읽는다.[3] 최초의 그룹명은 칸사이 보야(KANZAI BOYA), KAN'''S'''AI가 아닌 KAN'''Z'''AI인 이유는 쟈니상이 '그게 멋있잖아' 라고 했기 때문. 이후 KinKi Kids로 개명했다.(뜻은 거기서 거기...)[4] 둘 다 그룹명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이제 끝났네" 하면서 낙담했었다고(...). 하지만 선배들이나 주위사람들이 킨키라고 불러주는 걸 듣다보니 자신들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5] 데뷔 기자회견 전날까지도 본인들은 데뷔한다는 걸 몰랐다고.[6] 코이치는 효고 현, 츠요시는 나라 현 출신이다.[7] 코이치가 빠른 생일이라 한학년 위이다.[8] 엄밀히 말하면 벌써 kids라고 할 나이는 지났다.[9] 일본에 5000명 정도밖에 없는 성이라고 한다.[10] 아버지-미츠오/미츠구
어머니-키요코/요코
누나-메구미/노조미[11] 쟈니스에는 이렇게 누나가 이력서를 마음대로 보낸 것이 뽑혀 데뷔한 케이스가 꽤 많다. 누나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쟈니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12] 도모토 쿄다이에 보아가 출연했을때 보아가 쟈켓 사진 촬영등의 스케쥴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코이치는 어떻게하면 좋아할 수 있는 거냐고 말하며, 본인은 사진 찍는 일이 되게 싫다고 했다 (...)[13] 그래서인지 사생활에 있어서는 꽤 엄격한 편이다. 때문에 쟈니스 내에서 스캔들이나 사건사고가 거의 없는 그룹이기도.[14] 일본의 유명가수 야마시타 타츠로가 작곡한 곡으로 그냥 들어보면 상당한 뽕끼가 느껴져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듣다보면 계속해서 듣게되는 중독성도 갖고 있는 명곡. 곡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도 사무소측에서 지적을 받았으나 지금까지의 쟈니스의 역사를 이미지화한 곡이라는 결론이 나와 발매된 결과 킨키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총판매량은 178만장.[15] 쟈니스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했던 이 기록은 후에 SMAP의 ' 세상에 하나뿐인 꽃'으로 인해 깨지게 된다(...)[16] 츠요시는 기본적으로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 코이치는 주로 작곡 위주[17] 그래서 1월 1일 공연은 생일콘이나 바스콘(Birthday Concert)이라고 부른다.[18] 06년까지는 한달에 몇 번씩 올리는 때도 있는 등 상당한 근성을 보여주었으나 07년을 접어들며 갱신수가 급감, 언제부턴가 본인도 연간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듯 1년에 한번씩 (보통 1월) 연례행사 격으로 신년인사를 겸해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은 이례적으로 2번이나 갱신해서 팬들을 놀라게 했고, 2011년은 지진사태로 인한 본인 주연 뮤지컬 Endless SHOCK 공연 중단 관련 갱신 글이 올라왔다. 2015년 3월 20일, 3월 24일에 Endless SHOCK 공연 도중 일어난 사고(LED 패널이 쓰러졌다) 관련하여 글이 올라왔다. 2016년 7월에 최신 싱글 장미와 태양의 무대 중 따로따로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19] 어린 시절부터 만나서 그런지 애정표현이 과격하다. 엎어치고 메치고 반갑고 편하다는 표현을 조금 남다르게 한다. 킨키가 마음놓고 장난걸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20] 결성 당시 이미 데뷔한 그룹 중, 멤버 중에 칸사이 출신 멤버가 있는 그룹들[21] 지진이 일어났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22] 인간실격~만약에 내가 죽는다면[23] 악개가 콘서트에서 쯔요시 이야기는 필요없다고 소리치자 코이치가 정색하며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얼려버렸네 라고 한 일화는 유명[24] 1998년 발매 싱글임에도 2016년 2월 2주차 오리콘 차트에 25위로 랭크인했다! 트위터 등지를 통해 제트코스터 로망스 밀리언 만들기 대작전이 팬들 사이에서 진행중이다(솔직히 노래 너무좋음).
어머니-키요코/요코
누나-메구미/노조미[11] 쟈니스에는 이렇게 누나가 이력서를 마음대로 보낸 것이 뽑혀 데뷔한 케이스가 꽤 많다. 누나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쟈니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12] 도모토 쿄다이에 보아가 출연했을때 보아가 쟈켓 사진 촬영등의 스케쥴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코이치는 어떻게하면 좋아할 수 있는 거냐고 말하며, 본인은 사진 찍는 일이 되게 싫다고 했다 (...)[13] 그래서인지 사생활에 있어서는 꽤 엄격한 편이다. 때문에 쟈니스 내에서 스캔들이나 사건사고가 거의 없는 그룹이기도.[14] 일본의 유명가수 야마시타 타츠로가 작곡한 곡으로 그냥 들어보면 상당한 뽕끼가 느껴져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듣다보면 계속해서 듣게되는 중독성도 갖고 있는 명곡. 곡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도 사무소측에서 지적을 받았으나 지금까지의 쟈니스의 역사를 이미지화한 곡이라는 결론이 나와 발매된 결과 킨키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총판매량은 178만장.[15] 쟈니스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했던 이 기록은 후에 SMAP의 ' 세상에 하나뿐인 꽃'으로 인해 깨지게 된다(...)[16] 츠요시는 기본적으로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 코이치는 주로 작곡 위주[17] 그래서 1월 1일 공연은 생일콘이나 바스콘(Birthday Concert)이라고 부른다.[18] 06년까지는 한달에 몇 번씩 올리는 때도 있는 등 상당한 근성을 보여주었으나 07년을 접어들며 갱신수가 급감, 언제부턴가 본인도 연간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듯 1년에 한번씩 (보통 1월) 연례행사 격으로 신년인사를 겸해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은 이례적으로 2번이나 갱신해서 팬들을 놀라게 했고, 2011년은 지진사태로 인한 본인 주연 뮤지컬 Endless SHOCK 공연 중단 관련 갱신 글이 올라왔다. 2015년 3월 20일, 3월 24일에 Endless SHOCK 공연 도중 일어난 사고(LED 패널이 쓰러졌다) 관련하여 글이 올라왔다. 2016년 7월에 최신 싱글 장미와 태양의 무대 중 따로따로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19] 어린 시절부터 만나서 그런지 애정표현이 과격하다. 엎어치고 메치고 반갑고 편하다는 표현을 조금 남다르게 한다. 킨키가 마음놓고 장난걸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20] 결성 당시 이미 데뷔한 그룹 중, 멤버 중에 칸사이 출신 멤버가 있는 그룹들[21] 지진이 일어났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22] 인간실격~만약에 내가 죽는다면[23] 악개가 콘서트에서 쯔요시 이야기는 필요없다고 소리치자 코이치가 정색하며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얼려버렸네 라고 한 일화는 유명[24] 1998년 발매 싱글임에도 2016년 2월 2주차 오리콘 차트에 25위로 랭크인했다! 트위터 등지를 통해 제트코스터 로망스 밀리언 만들기 대작전이 팬들 사이에서 진행중이다(솔직히 노래 너무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