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rr

 


1970년대 엘피 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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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하단에서 볼 수 있다. LXT 2512 자켓에서.
Full Frequency Range Recording(MONO)
Full Frequency Sterophonic Sound(STERO/이하ffss)[1]
ffrr을 풀어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주파수(가청주파수)를 들을 수 있는 레코딩을 의미한다. 이 기술 이전에는 가청주파수만큼의 넓은 주파수 범위을 녹음하지 못했다고 한다.
데카의 기술진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한 공학도가 많았다. 이들은 잠수함이 심해에 어떤 물체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데카 개발자들은 이 기술을 음악 녹음하는데에 접목시켰고, 그 결과로 나온게 바로 ffrr이다.
이 기술은 나오자마자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동시대에 발매된 음반들 중에서는 음질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녹음에 호평이 있지는 않았다. 기술
자체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ffrr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적응 문제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흑역사는 푸르트벵글러의 브람스 교향곡 녹음. 녹음 당시에 푸르트벵글러가 마이크를 보고서 질겁을 했고, 결국 푸르트벵글러는 녹음하는 동안에 자기 앞에서 마이크를 치워달라고 요청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녹음이 엉망진창으로 되고 말았고, 결국 음질이 개판 오분전인 녹음이 탄생! 그 당시의 비평가들은 이 엉망인 음질로 녹음된 연주에 놀랐다고 한다. [2] 하여간 이 기술로 인해 데카사는 SP시대의 마이너 레이블[3]에서 메이저 레이블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삼을 수 있었다.
1950년대 중후반에는 시대의 발전으로 인해 음반사 전체적으로 스테레오 녹음에 대해 기술적 개발과 진보가 있었는데, 데카사에서는 FFRR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FFSS라는 새로운 녹음 기술을 만들어내었다. 이 기술도 엘피 발매 직후[4]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스테레오 녹음이 본격화된 1970~1980년대에도 런던[5]레이블에서 자주 FFRR로고를 사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불명...
[1] 이 기술은 스테레오 녹음에서 사용하였다. 실제 FFRR하고는 기술적인 면에서 다른 게 많다[2] 이로 인해 데카는 오랫동안 이 녹음을 재발매하지 않았고, 결국 해적 레이블이 발매하는 시디나, 오래전에 발매한 엘피로 한동안 감상할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도 마찬가지.[3] 다른 회사의 녹음을 라이센스 발매하는 경우가 많았다.[4] 1958~1959년이니까, 시디가 아니라 엘피[5] 데카사의 미국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