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타이

 


1. 개요
2. 기원
3. 왜 나체로 싸웠을까?
3.1. 정신적 이유?
3.2. 기동력을 위해서?
3.3. 가이사타이는 없다?


1. 개요


'''Gaesatae'''
'''Γαισάται'''
갈리아, 켈트 문화에서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전사집단. 흔히 켈트족하면 떠오르는 푸른 대청(大靑, Woad) 문신에 커다란 타원방패와 투창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2. 기원


'''가이사타이'''라는 단어는 갈리아어로 '투창병'을 의미하며 아일랜드, 브리타니아 등 대부분의 켈트 문화권에 가이세타크, 가에사타에 등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젊은 유랑전사집단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대충 기원전 2~3세기경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들과 군인들이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보통 알프스 산맥 주변의 적대적인 갈리아인들이 애용하는 '용병'으로 번역했다. 이들은 로마군이 내지 갈리아[1]를 식민지화하고 그곳의 켈트 일파인 보이족을 압박하자, 보이족의 족장들이 고용한 용병으로 역사 기록에 첫 등장했다. 그러나 단지 야만인 용병이라면 당대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리가 없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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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가이사타이를 재현한 리인액트

그들은 다른 갈리아 전사들이 사슬 갑옷과 망토로 무장한것과 다르게 '''전라'''로 전투에 임했다. -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 -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전쟁에 임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후대 기록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전라인 남녀 전사들이 긴 머리를 늘어트리거나 기름으로 못처럼 뾰족뾰족하게 세운 뒤 시퍼런 대청으로 온몸을 칠하고 괴성을 지르는 야만인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몇몇 기록에서는 이빨을 줄로 갈아 상어이빨처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은 로마를 향해 남하하며 한차례 로마 군단을 격파하였지만, 에트루리아 지방을 약탈하고 북상하는동안 결집한 로마군에게 가로막혀 패배하고 내지 갈리아로 돌아갔다. 당시 이 충격적인 모습을 지켜본 로마인들은 공포에 질렸지만 곧 이들의 좁고 긴 방패가 화살과 투창을 막아내기에는 방어력이 부족한데다가, 이들의 숫자가 2~30,000명 가량의 대군이라고 해도 대다수가 보병으로 이루어져있어 기병에 취약함을 깨달았다. 곧 군단병들의 투창과 이어지는 기병 회전으로 가이사타이는 패퇴했고, 보이족의 수장들은 적은 수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알프스로 도망쳤다가 자결했다.
그 이후로도 10,000명에서 최대 30,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나체 전사들에 대한 기록이 꾸준히 등장한다, 꼭 이들 집단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적으로 만난 갈리아인들 일부가 나체로 싸웠다는 내용이나, 목걸이만 매고 하체를 덜렁거리는 전사들이 트럼펫과 함께 괴성을 지르며 기습했다던지 하는 이야기는 흔히 이어진다.
기원후에는 '가이사타이'라고 칭해지는 전사집단이 기록에 등장하는것은 뜸해지지만, 기원후 3~5세기까지도 스코틀랜드의 켈트계 이민족들을 몸에 도화지마냥 그림그린다는 뜻으로 '픽트'라고 부르는 등 등장 자체는 꾸준했다.
현대 매체속 바바리안 전사들의 이미지들 즉 웃통 벋고 싸우거나 반 나체 상태의 야만전사 이미지들은 사실상 이사람들이 원조라고 할수 있겠다 더 나아가 비키니 아머(...)를 현실로 옮긴것도 이사람들이라 할수 있다.
EB모드에서도 등장한다. 제작진의 켈트 욕구를 형상화한 유닛이자 만인이 인정하는 EB모드의 아이돌. 고증모드를 추구하는 EB모드에서 상당히 튀는 유닛인데, 기본 스탯 자체도 매우 훌륭하고 투창도 들고 있는데다, 화룡점정으로 체력이 2다. 덕분에 실제 역사와는 달리 투사무기를 얻어맞아도 어지간하면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옵션에 따라 하의를 벗길 수도 있는데 가에사타이들이 늠름한 물건을 덜렁거리면서 달려드는 광경은 그야말로 호러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상대하는 플레이어들에게도 마우스를 집어 던지고 싶게 만드는 광경이다. 스웨보즈처럼 보병진이 빈약한 팩션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처럼 비교적 훌륭한 보병진을 갖춘 팩션도 가에사타이들을 처리하는데 골머리를 앓는다.

3. 왜 나체로 싸웠을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로마와 그리스가 싸워왔던 갈리아족이 모두 빨게벗고 싸울정도로 야만한 존재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갈리아, 켈트족의 갑옷, 천 제련기술은 수준급이어서 훗날 로마 군단이 켈트식 사슬갑옷과 투구를 채용하는 등 무구가 발달한 종족이었다.
두꺼운 천 하나만 둘러도 무기에 대한 저항력이 맨몸보다는 엄청나게 오른다는것은 당시로써도 상식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자연상태 그대로 싸움에 임했던 것일까?

3.1. 정신적 이유?


그들은 (나신을 보여주는것으로) 자신감을 고양했다. -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 -

그들은 나체로 싸우면 자연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 시칠리아 역사가 디오도로스 -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이들을 적으로 만난 로마인들은 이 나체 퍼포먼스가 정신, 종교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자연물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전통이 강했던 갈리아, 켈트인들이 자연과 가까운 모습을 함으로써 정령들에게 보호받거나, '''나는 갑옷 없어도 정령들이 보호하니까 너네보다 잘 싸운다!'''하는 과시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갈리아어로 가이사타이라는 존재들은 단순한 전사집단보다 조금 더 종교적인 '대전사', '(신 대신) 무장한 자'라는 뜻 또한 포함되어있으며,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서도 나체의 남녀 전사들이 전투 직전 피칠갑을 하고 포로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이사타이들은 일종의 버서커와 같은 종교적 열광에 찬 존재들일것이다.
또한, 나체의 모습은 어느 쪽으로든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일종의 정신공격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즈텍 제국데스 휘슬(공포 주의)처럼 적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아군을 고양시키는 형식.

3.2. 기동력을 위해서?


그들은 가시나무나 덤불속에서 쉽게 움직이기 위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 -

기습해오는 갈리아 전사들중 몇몇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 플루타르코스 -

적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방패를 물에 띄운 뒤 헤엄쳐서 전진했다. - 갈리아 전기 -

그들이 살던 프랑스와 영국의 수풀지대는 가시나무와 덩쿨이 우거져있었다. 당시에도 지중해 최강으로 불리던 로마 군단을 정면상대하는것은 당연히 힘들다는것을 알았던 갈리아인들은 지형을 이용해 대규모 기습을 감행하곤 했는데, 사슬갑옷과 체크무늬 망토를 두르고 전진한다면 덤불에 옷이 걸려 전진이 더뎌질수 있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예 옷을 벗어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들이 숲이나 강에서 흔히 나체로 돌아다녔다는 점은 당대에도 알고있는 점이었다.

3.3. 가이사타이는 없다?


당시 전쟁을 기록한 역사가나 장군들은 이 가이사타이가 갈리아인 용병 집단인지 종교적인 단체인지 아니면 갈리아 동포들을 위해 용병이나 동맹으로 등장한 별개의 전사부족인지 확실하게 적은적이 없다. 그래서 일견에서는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서의 가이사타이에 대해 부정적인 학자들도 있다. 확실한 건 그냥 켈트족에 빨개벗은 전사들이 많이 있었다 정도...
[1] 현재의 스위스, 알프스, 이탈리아 북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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