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중원

 


1. 개요
2. 발전과정
2.1. 시작/곽일산
2.2. 발전/정립병
2.3. 완성/진산월
3. 결론
3.1. 아직도 미완성인 이유
4. 관련 문서


1. 개요


유운검법의 묘미는 무수히 변하는 검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끝 없이 이어진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한 번 펼쳐진 초식이 다음 초식과 연계되어 두 개의 초식이 원래 하나의 초식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합쳐진다는 것.
이 면면부절의 특성을 이용해 곽일산은 처음 초식부터 마지막 십팔초까지 연계되어 하나의 초식이었던 것처럼 합쳐진 검초,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하는 검초'''를 원했던 것이다.이 검초를 '''검정중원(劍定中原)'''이라 부른다.
묘사는 용영검이 환영처럼 움직이는 동시에 구름이 피어오르며 일정범위를 완전히 뒤덮어버린 후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상대는 피투성이가 된 체 쓰러져 죽는다.

2. 발전과정



2.1. 시작/곽일산


검정중원의 시발점이 된것은 유운검법의 창립자인 종남파 5대 장문인 풍운무적검 곽일산이다. 유운검법을 제자들 앞에 선보인후 곽일산은 이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할 수 있다면 '''능히 검으로 중원무림을 평정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유운검법에 한 가지 미진함을 느껴 이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십팔 초의 유운검법을 일통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곽일산은 자신의 유운검법이 아직 미진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거하여 자신이 언급한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할 검결에 대해 연구하여 결국 유운검법을 개정하는데 성공한다.[1]
이후 그는 오랜시간동안 유운검결의 뼈대와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검의 기재이자 평생 검도에 헌신한 그조차도 유운검법을 일통하는 미완성의 검초를 완성하지 못한채. 후대의 누군가가 그 과업을 이어주기를 기대하며 지금까지의 심득을 담은 책자(유운검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2. 발전/정립병


곽일산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흐른 뒤, 11대 장문인 유백석의 제자 종남오선의 등장과 함께 종남파는 천하제일문파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종남오선 최고수인 검선 매종도와 그 경쟁자였던 혈선 정립병, 그리고 비선 조심향은 삼각관계였고, 그 관계 탓에 매종도와 정립병이 싸우며 종남파의 전성기가 끝난다.
정확히 80 초만에 왼쪽 가슴을 찔려 패배한 정립병은 몇 달 간 검을 놓고 패인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남은 길은 매종도를 꺾는 것뿐임을 자각한다. 이후 검선을 꺾을 절학을 창립하기 위해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채 비무행을 떠난다. 종남파에게 누를 끼칠 수 없었기 때문.
많은 고수를 꺾고 '혈삼객'이라 불리며 검선에게 맞먹는 검객으로 유명해졌지만, 정립병은 비무행을 계속해도 검선을 꺾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매종도와 재결투하기 위해 종남산으로 귀환했지만, 매종도와 조심향, 거기에 소선 우일기가 실종된 뒤였다. 종남오선 중 넷이 한꺼번에 실종되면서 종남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이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정립병은 허탈감속에 종남산으로 귀환하기로 한다. 그러나 돌아가던 도중 잠시 누관의 경치를 보고 가려고 들렸던 중봉 정상에서 종남파 선대 고수 곽일산이 남긴 유진을 발견한다.
이후 정립병 또한 곽일산과 같은 행로를 밟으며 미완성의 유운검결의 마지막 부분을 연구한다. 선대고수의 유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곽일산이 남긴 유운검법 18초를 관통하는 검결을 완성하면 매종도를 능히 능가할수 있을 것 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2]
정립병은 곽일산이 남긴 난해한 검결을 연구하여 자신의 심득을 담아 백이십 가지의 도해를 만들어 내었고. 각각의 도해마다 선과 점들을 그으며 그 선들을 모두 이어지게 하여. 백이십개의 도해가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로 순식간에 연결하여 펼치는 검법을 만들었다.
정립병은 '''유운검법 십팔초에 관련된 초식은 단 하나의 도해에도 넣지 않았으며'''. 천하삼십육검의 일부 초식들과 삼재검법, 육합검법 등 유운검결에 적합한 각종 검법 초식들을 닥치는대로 끌어 들였다.[3] 이것은 정립병이 과거 중원을 주유하며 전국 비무행으로 각종 검법을 견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정중원의 과정에서 혈선 정립병이 검정중원을 연구한 것은 진산월로서도 크나큰 다행이였는데, 정립병이 연결고리가 되어준 덕분에 진산월은 3년만에 검정중원을 완성하여 무림에 출도할 수 있었다.

2.3. 완성/진산월


그 후 기나긴 세월이 흘러 200년 이후 진산월이 두명의 기재 곽일산과 정립병이 연구해 놓은 수 많은 연구 성과들을 중봉 석실에서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정립병이 남긴 도해에 감히 손도 못대고, 먼저 곽일산의 개량판 유운검법을 다 익힌 후에야 시작했으며 유운검법을 다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미완성 유운검결의 난해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진산월은 도해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도해가 백이십여 개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도해였던 것. 각 도해는 인체에 있는 혈도를 나타내며, 선은 혈도와 혈도를 있는 경맥의 흐름을 가리키고 도해 사이에 찍혀 있는 점들은 호흡이 맺고 끊음을 나타냈던 것.
진산월은 기존의 도해에 적지 않은 도해를 추가하였고 싯구처럼 보이는 곽일산의 유운검결을 마침내 완성시켰다.

'''구름, 변하다.'''

그 흐름은 물과 같고, 형태는 안개와 같으며, 기세는 바람과 같다.

'''구름, 계속 변하다.'''

그 기상은 봉우리와 같고, 그 빠름은 뇌전과 같으며, 그 도도함은 바다와 같다.

'''구름, 변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유운검결」'''

마지막에 이르자 진산월은 유운검결의 진리를 깨달았다. 모든 변화는 결국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4] 그것이야말로 유운검법 십팔 초를 단숨에 관통할 수 있는 궁극의 '''요결'''이었던 것이다.
진산월은 3년동안 미완성 상태의 유운검결을 정리/완성하여 검정중원(劍定中原)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는 곽일산이 미완성 유운검결에 남긴 유언, '''검으로 중원을 평정해줄 것'''을 당부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검정중원이 양천해와의 결투 이후 아직도 미완성임이 밝혀진다.

3. 결론


검정중원의 뼈대는 유운검법이지만 실제 검정중원의 밑바탕에는 유운검법 외에 곽일산[5]과 정립병[6]이 연구한 셀 수도 없이 많은 무공들의 초식들이 자양분임이 묘사되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진산월이 이후 검정중원을 완성한줄만 알았지만, 양천해와의 결투[7]와 낙일방과의 대련에서 아직도 '''미완성'''임을 깨닫는다. 이 때문에 35권 시점에서 진산월은 도봉 양천해와 싸운 이후로는 구파 복귀라는 일생일대의 숙원이 걸린 형산파와의 마지막 싸움에서조차도 검정중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물론 이 때는 검정중원 없이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검정중원을 익히기 위해 수많은 검초를 연구했던 시간 덕분에, 진산월은 고진이 쓴 구주파천황 검초의 홍수 속에 숨어 있는 미세한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의 시간이 종남파가 과거 형산파와의 기산취악의 굴욕을 씻고 형산파를 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3.1. 아직도 미완성인 이유


  • 검정중원의 근간인 유운검법 자체가 천하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익히기 힘든 검법 중 하나이다. 검법의 천재이며 진산월 이전 종남파 최고 고수였던 임영옥도 유운검봉은 단지 4개를 만들어내는 수준에서 그쳤다.[8] 방화는 유운검법 입문하기도 전에 소지산이 펼치는 유운검법의 초식들을 보고 자신이 이것을 익힐 수나 있을지 절망할 정도이며, 창시자 곽일산 조차도 말년에 이르러서야 16개의 검봉을 만들어 냈다.
    • 그러나 최근의 35권 연재분에서 이 문제는 해결한 것 같다. 이괴와의 싸움에서 개량판 유운검법을 넘어 진산월만의 유운검법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진화하였다. 또한 진산월은 말년의 곽일산을 뛰어넘어 서른두 개의 검봉을 만들었는데, 이후 이를 또다시 뛰어넘어 처음부터 서른두개의 검봉이 합쳐진 일봉을 사용했다. 야율척이 평하길 진산월의 유운검봉은 유운검봉이라는 검술의 단계에서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완벽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중에서 진산월의 유운검법 경지는 극에 달해 있다고 서술되어, 지금의 진산월은 유운검법을 대성한걸로 추정된다.
  • 종남파 모든 무공의 근간이 되는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하지 못했다. 조익현이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종남파 무공의 끝[9]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면 육합귀진신공 완성에 따라 검정중원의 위력이 천차만별로 달려질거라고 추측된다. 더군다나 육합귀진신공을 완성시킨 정립병이 검정중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말은 지금의 검정중원은 정립병이 예측하던 완성된 검정중원이 아닌, 다른 검정중원일 수도 있다는 소리이다.
  • 검정중원의 근간이 된 초식의 대부분은 검법의 초식들이라 장법이나 권법에서 파생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5성도 안된 낙일방의 구반장법을 상대로 대련하면서 우랑장의에 이은 천손직금의 연계기로 용영검을 놓칠뻔했으며 그때 비로소 검정중원이 아직 보완할 구석이 많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제서야 진산월은 종남파 무공의 근간인 권법과 장법 등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10]

4. 관련 문서



[1] 유운검법 자체는 이미 곽일산이 연구를 마친것으로 보인다. 정립병이 연구한것은 유운검법이 아닌 유운검법 18초를 일통하는 미완성의 검결이다.[2] 실제로 미완성의 검결에 불과한데도 기존의 상념을 송두리째 바꾼 검학이며 정립병이 원했던 매종도를 꺾을 검도의 궁극에 이른 단계였다고 묘사된다[3] 다섯 개는 삼재검법, 세 개는 육합검법에서 따왔고 일곱 개는 천하삼십육검에서 가져왔다. 도해들을 전부 분석해서 진산월은 서른다섯 개의 도해는 어느 검법에서 왔는지 알아냈지만 나머지 도해들은 진산월도 어느 검법들에서 가져온 초식들인지 모를 정도.[4] 이를 통해, 검정중원은 심검의 경지로 추정.[5] 태을검선 이전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6] 매종도가 인정한 경쟁자. 정립병이 아직도 내가 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냐고 따지자 부인하며 천하에서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는것은 오직 혈선 정립병 뿐임을 언급했다. [7] 검정중원을 펼쳤음에도 불구, 양천해에게 두 개의 칼자국을 허용하였다.[8] 그 이상 검봉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임독양맥이 타통되고 내공이 한갑자 이상이 되어야 했기 때문.[9] 육합귀진신공을 익힌 상태에서만 비로서 종남파 무공의 본연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10] 평소 권법 장괘장권구식을 검초에 섞어 변초로 즐겨쓰는 진산월이면. 구반장법, 낙뢰신권 등 종남파의 각종 무공들을 충분히 검초에 섞어 검정중원에 넣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