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취
景翠
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인물. 사기 월왕구천세가, 전국책 초편 및 동주편, 죽서기년 등에 언급된다.
< 사기 월왕구천세가 >
초위왕 시기, 월왕 무강이 제를 치려하자 제위왕이 사신을 보내 제 대신 초를 치도록 설득하였는데, 이때 제나라 사신과 월왕 무강의 대화 중에 언급된다. 제 사신이 월왕 무강에게 초군은 분산되어 있음을 역설하면서, "경취의 군대는 북쪽의 노나라, 제나라 및 남양 일대에 집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 죽서기년 >
사기집해 중 한세가 한양왕 12년의 '초가 옹지를 포위하자 한이 진에 구원을 요구했다.'는 구절의 주석에서 죽서기년을 인용하며 경취를 언급한다. 한세가의 해당 구절이 죽서기년의 『초의 경취가 옹지를 포위했다. 한선왕이 졸하고 진이 한을 도와서 함께 초의 굴개를 무찔렀다.』는 대목과 일치한다고 언급한다.
< 전국책 초편 >
초회왕 시기 제ㆍ진이 약속하여 초를 공격하자 초는 경취를 시켜서 여섯 성을 제에 선물로 주고 태자도 인질로 삼았다고 언급된다. 이후 소수(昭雎)란 인물이 경취에게 유세하여 “진나라는 장차 경리(景鯉: 초회왕의 총신)와 소려(蘇厲: 소진의 동생)를 통해 초나라에 땅을 바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이 제나라에 땅을 주어 제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면 경리와 소려는 진나라에게 땅을 떼어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은 필시 원한을 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공은 경리와 소려가 예물을 후하게 갖춰 진나라에 사자로 가도록 대왕에게 권하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이에 두려움을 느껴 필시 땅을 요구하지도 않고 초나라와 화합하자고 할 것입니다. 만일 제나라가 땅을 요구하지 않게 되면 그때 공은 맹약을 맺어도 될 것입니다.”라고 설득했다고 하는데, 경취가 이 말을 따랐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 전국책 동주편 >
감무가 이끄는 진나라 군대가 한나라 의양(宜陽)땅을 공격하자, 한나라 초나라 연합군대를 이끌고 진군을 공격했다.
원래 의양은 한낱 현에 불과했지만, 군사 요충지라 한나라에선 대군을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진나라는 장차 중앙으로 세력을 뻗기 위한 주요 거점이라 반드시 차지해야 했고, 감무는 의양 공략에 정치 생명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동주(東周)는 의양이 함락당하면 진의 다음 타겟이 될 게 뻔했다.
이처럼 의양 땅엔 여러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경취가 연합군을 이끌고 감무와 한판 결전을 준비할 때, 동주의 조루가 말리며 한가지 계책을 낸다. 가뜩이나 진군과 감무는 몸이 단 상태인데, 연합군이 압박을 가하면 글자 그대로 '''결사적 태세'''로 나올 테고, 자연 의양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함락당하고 전화는 동주까지 번진다는 것. 차라리 의양을 공략하느라 진군이 힘을 몽땅 뺐을 때 들이쳐서 진군을 몰아내는 편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경취는 조루의 계책을 받아들여, 진나라 군대가 의양을 점거하고 피폐한 틈을 타 공격한다.
진나라는 당장 초나라와 싸울 여력이 없음을 알고서 자국의 성을 떼어주는 대가로 의양의 점유권을 갖는다. 당연히 떼어준 성에는 초군이 들어서고, 진나라는 이를 견제하느라 잠시 군사행동을 벌일 수가 없었다.
미처 이런 속사정까진 몰랐던 한나라는 당장 경취가 진군의 진격을 막아낸 사실을 고맙게 여겼고, 동주 역시 진군이 의양에서 발이 묶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경취 입장에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