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계수

 

'''성씨'''
고(高)
'''이름'''
계수(罽須)
'''부왕'''
신대왕(新大王)
'''형제'''
고발기(高拔奇), 고남무(高男武),
고발기(高發歧), 고연우(高延優)
'''생몰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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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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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대왕의 아들이었으며, 고국천왕, 고발기, 산상왕의 동생이었다. [1]
둘째 형 고발기산상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에 한나라에서 군사를 빌려와 고구려를 치자 이를 무찌르고, 서로간의 탐욕 때문에 피흘리고 싸웠던 형들을 꾸짖은 일화로 유명하다.
용병술과 무예가 출중하여 무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형인 발기가 일으킨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2. 일생


184년, 한나라의 요동 태수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를 침략해오자 왕명을 받들어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자 고국천왕이 직접 정예 기병을 이끌고 좌원에서 한나라 군대와 싸워서 크게 격파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인용하자면 이때 '''잘려나간 머리가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2]
197년, 고국천왕이 뒤를 이을 후사를 얻지 못한 채 죽자 그 둘째 동생인 산상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이에 원한을 품은 고국천왕의 첫째 동생인 고발기가 한나라의 요동 태수였던 공손탁(또는 도)으로부터 3만의 군사를 빌려와 고구려를 침공해왔다.
이때에 계수는 왕명을 받들어 나라를 배신한 형의 군대와 싸웠다. 이 싸움에서 계수는 크게 승리하였으나 발기는 군사를 잃고 패하였는데, 계수는 스스로 선봉에 서서 달아나는 형을 추격하였다.
계수는 발기를 거의 잡아 죽일 뻔 했지만 이때 발기가 '''"네가 늙은 형을 죽이려하느냐?"'''라고 꾸짖자 차마 형제를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발기를 그냥 놓아 주었다. 그러나 계수는 달아나는 발기에게 폭풍간지의 명언을 날렸다.

'''“연우[3]

가 나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것이지만 당신이 한 때의 분함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발기는 그제서야 잘못을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찔러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계수는 죽은 발기의 시신을 거두어서 [4] 장사를 지낸 후에 다시 고구려로 돌아왔는데, 이를 알게 된 산상왕이 계수를 불러서 반역자를 그냥 놔준 것도 모자라서 장례까지 치러주고 왔냐고 꾸짖었다. 그러자 계수는 슬프게 울더니 또다시 폭풍간지의 명언을 날리며 형의 잘못을 꾸짖었다.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세웠더라도, 대왕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리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신은 대왕의 미덕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시신을 거두어 안치해 둔 것입니다. 어찌 이것으로 대왕의 노여움을 당하게 될 것을 헤아렸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일 어진 마음으로 악을 잊으시고, 형의 상례(喪禮)로써 장사지내면 누가 대왕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이미 말을 하였으니 비록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관부에 나아가 죽기를 청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산상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는 계수에게 다시 화해를 청하였다. 이때 계수가 왕에게 절을 하였는데 '''산상왕도 계수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1] 그런데 고국천왕 6년 조에는 왕자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에 왕제(王弟)라는 개념이 없어서 선왕의 왕자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2] 이전에 고구려의 국상 명림답부도 좌원에서 한나라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적이 있다.[3] 산상왕의 본명[4] 원문에는 草葬, 즉 적당히 시체를 풀로 덮어 장사지냈다고 나와 있다. 추격 중에 후히 장사를 지냐 줄 여유도 없을테고, 후히 장사지냈다가는 진짜로 엄청난 문제가 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