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점리

 

高漸離
생몰년도 미상
1. 소개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1. 소개


중국 전국시대 말기 연나라의 악사이자, 암살미수범.

2. 생애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자객 형가의 친구로서, 진시황을 제거하기 위해 역수를 건너는 그를 위해 [1]를 연주하며 그를 배웅하였다고 한다. 축을 연주하는 솜씨가 상당히 뛰어났던지,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형가가 암살에 실패하고 살해당하자 그 뛰어난 축 실력을 발휘하여 진나라의 궁중 악사가 되어 시황제 곁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 형가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의 정체를 아는자가 있어 그 이후로는 눈을 가리고 연주를 하게 되었다.[2]
비록 진나라의 궁중 악사로 활동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고점리는 친구인 형가의 유지를 받들어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하였다. 이후에 축 안에 납을 부어넣어 흉기로 개조하고는 연회에서 시황제를 향해 휘두르지만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고점리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자신의 귀로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와 방향을 계산해서 던졌는데, 그곳에 있었던 커다란 구리 징이 시황제의 목소리를 되받아 버리는 바람에 거리 계산이 틀려서 빗나가고 말았다는 설도 있다.
보통 단독으로 기록되기 보단, 형가의 실패담 이후 그의 친구가 이러했지만 역시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기에는 고점리의 암살 시도가 있고 난 뒤로 진시황은 다시는 멸망한 6국 출신 사람들을 자신에게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했다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


[image]
고우영 십팔사략에도 등장한다. 형가의 암살이 실패한 후 친구로 알려진 고점리도 체포되었는데 진시황은 그의 눈을 멀게하고 궁중악사로 두었다. 얼마 동안은 불려갈 때마다 연주만 하면서 진시황이 마음을 놓게 만들었는데 몰래 악기에 손을 대서 납을 잔뜩 채워넣어 무거워진 축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연회 자리에서 진시황이 앉아있는 자리를 알아내기 위해 축을 치라는 내시의 명령에 '나는 황제의 악사이니 황제의 명령만 듣겠다'며 뻗댔고 진시황이 껄껄 웃으며 '그래 고점리야 축을 치려무나' 하자 그 소리를 듣고 진시황이 앉아있을거라 생각한 곳으로 그 축을 던졌지만 실패했다.[3] 위 사진처럼 두 페이지 전체를 할애하여 배경 하나 없이 사람들만 묘사하며 폭발적인 비장미를 자랑한다. 웬만한 영화 스틸컷같은 씬으로 이 책의 독자들이 최고의 묘사로 많이 손꼽는 명장면이다. 이후 시황제는 눈먼 병신까지 내 목숨을 노린다며 외부 접촉을 극도로 꺼렸고 이는 사구정변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고우영 화백은 해석했다. 실제로 진시황은 고점리의 암살 시도 사건이 있고 난 뒤로 다시는 멸망한 6국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눈이 안 보이니, 사람들아,어찌되었냐고 말을 하는데 그 말에 답한 건 분노한 얼굴을 한 호위병이 휘두른 칼이었다.
[1] 고대의 현악기.[2] 기록된 책에 따라선 진시황이 고점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 재주를 높이사서 죽이지는 않고 눈을 뽑히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시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3] 장면에서 보여지듯이 그 소리는 구리징에 반사된 것이었다. 징 밑에 진시황의 허상을 그려두는 작가의 모사력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