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애황후 허씨

 



恭哀皇后 許氏
전한 선제의 황후이자 원제의 생모로 휘는 평군(平君).
아버지 허광한(許廣漢)은 창읍왕(昌邑王)의 낭(郎)을 지내면서 실수로 다른 낭의 안장을 자신의 말에 얹어서 도둑질한 것으로 몰렸는데, 이는 당시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기에 궁형을 받고 환관이 되었다. 이후 환자승(宦者丞)이 되었는데, 상관걸이 모반하였을 때 증거품을 찾아내지 못하여 액정(掖庭)으로 쫓겨나 폭실색부(暴室嗇夫)가 되었다.한편 선제가 즉위하기 이전에 아직 여태자의 손자로 취급받아 복권되지 못했던 시절에 허광한은 딸을 선제에게 시집보냈는데, 1년 뒤에 원제를 낳았다.
창읍왕을 폐위시킨 곽광은 세적황손으로서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던 선제를 옹립하였고, 대신들은 황제를 옹립하는 공적을 세운 곽광의 딸을 황후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선제의 뜻에 따라 적처였던 그녀가 황후로 즉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곽광의 부인인 현(顯)은 딸을 황후로 세우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고, 공애황후가 다시금 임신했다가 병이 나서 진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궁중의 여의(女醫) 순우연(淳于衍)을 매수하여 공애황후를 독살하였다.
공애황후는 3년 동안 재위하였고, 두릉남원(杜陵南園)에 장사지냈다. 이후 곽씨 일족이 주살되고 선제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허씨 일족은 조정에 등장하였고, 원제의 치세에 영화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