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포 해전

 


'''날짜'''
1871년 8월 28일
'''장소'''
군산 개야도 북서쪽 6해리(약 11km) 지점
 
'''교전국1'''
'''교전국2'''
'''교전국'''
조선
연합군
'''지휘관'''
전라우수사 이민우(李敏宇)
충청수사 이규안(李奎顔)
원정 해군 부사령관 겸 기동전단장 존 로저스 제독
'''전력'''
전라우수영 판옥선+귀선 25척
충청수영 판옥선+귀선 7척
기만 전술용 연합 방선 24척
기만 전술용 연합 병선 52척
장갑함 USS 뉴 아이언사이드
프리깃함 HMS 갤러티어
프리깃함 HMS 글래스고
프리깃함 USS 콜로라도
슬루프함 USS 알레스카
슬루프함 USS 베니시아
연안포함 USS 모노카시
연안포함 USS 아슈엘롯
'''피해 규모'''
전라우수영 전선 8척 격침
수병 1600~1700여명[1] 전사
프리깃함 3척 격침
최소 1300명 전사[2]
'''결과'''
개전 후 조선군이 '''처음 거둔 승전''', 기동전단 후퇴
서양 함대의 재해권이 영종도, 인천 앞바다로 한정됨

1. 개요


가상역사소설인 한제국 건국사에서 나온 전투로 조선 수군이 서양 원정함대를 상대로 거둔 '''최초의 승전이다.'''
원정군 해군 전단은 조선 수군을 격멸시키고 통상파괴작전으로 수운을 방해하고자 강화도 일대의 서해에서 남해 쪽으로 남하한다. 첩자로서 원정군 진내에 있던 이승훈의 첩보로 이를 포착한 조선 수군은 인천에서 군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해안을 포기한 채 군산에 집결하여 결전을 준비한다.
해안 방위를 포기한 탓에 충청도 일대에 원정군 해군 전단이 포격을 가하는 등의 피해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행적을 파악해낸 조선 수군은 시간을 딱 맞춘 작전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정군 전대의 남하에 시간을 맞춰 섬그늘에 숨어있던 1백근포 장비 판옥선들이 장사진을 치고 원정군 전대와 포격전을 주고받는다. 이때 1백근포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데, 원정군 서양 전함들의 것과는 동일한 위력이면서도 사정거리와 재장전 속도가 압도적임을 이용해 초반에는 일방적으로 유린한다. 거리가 좁혀지고 원정군 전단이 반격하기 시작하면서 피해가 속출하지만, 상기한 위장용의 방선과 병선이 마치 1백근포를 탑제한 주력함인 것인 양 당당하게 접근하며 기만작전을 편다.
이에 포위를 우려한 원정군 전단은 더이상의 전투를 포기, 범선의 장점을 활용해 해역에서 이탈해 강화도 일대의 원정군 진영으로 돌아간다.

[1] 작중에서 전선 한척 당 수병 200여명이 타고 다닌다고 언급[2] 정확한 전사자 수를 세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