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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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거북선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통제영 귀선(왼쪽)과 전라 좌수영 귀선(오른쪽)
경상남도에서 복원한 3층 거북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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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정박 중인 거북선 복원품들
한강의 거북선형 유람선.[2]
1993년 대전 엑스포 때 갑천에서 운행했던 태양 전지 거북선.[3]
龜船(귀선)
1. 설명
1.1. 개발
1.2. 편제
1.3. 무장
1.4. 언제까지 운용 되었나?
1.5. 후계자, 해골선과 창선.
2. 한국에서의 대우
3. 일본과 중국에서의 기록
4. 구체적인 구조에 대한 연구
4.1. 철갑선인가?
4.2. 거북선의 모양에 관해
4.2.1. 그 외
4.3. 서양의 연구
5. 모형•완구•피규어
5.1. 옥스포드
5.2. 영공방
6. 창작물
7. 기타
8. 같이보기


1. 설명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조선 수군의 대표적인 군함.
기본 형태는 기존 조선 수군의 주력함이었던 판옥선을 개량한 것으로 지붕을 덧씌워 방어력을 높이고 포문을 많이 설치하여 사격 공격을 용이하게 하도록 구조를 변경, 앞에는 용머리 형태의 충각 겸 포문을 달아 돌격전에도 용이하게 설계되었다.
당시 일본 수군의 전술은 배에서 직접 사격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동성이 빠른 소형 배를 타고 적함에 난입하여 근접전으로 배를 뺏거나 횃불을 던져 태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옻칠한 나무 지붕에 쇠못을 빼꼭하게 박은 거북선에는 상륙 자체가 불가능하여 통하지 않았고, 거기다가 근접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화력[4]으로 적함을 격침시켰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는 말 그대로 해상 요새 수준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나대용이 거북선의 제작자라 하지만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야사에만 등장하는데 야사에 거북선 제작에 관여한 사람 수만 20이 넘는다. 배한성의 고전열전에선 나대용 설을 채택했는지 이 사람이랑 동생이 어느날 이순신 앞에 설계도를 가져와서 브리핑한다. 다른 야사에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도인이었던 송구봉이 임란을 예견하고 거북선의 설계도를 만들어두었다가 이순신에게 주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는 전라 좌수군 방답진에 소속된 방답 귀선, 전라 좌수영 본영에 소속된 영귀선, 통제영 창설 이후 건조된 통제영 귀선의 3척이 있었다. 하지만 원균칠천량 해전 당시 모두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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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현재 국내 웹상에서 위 사진의 거북선#선교사가 찍은 실제 거북선 사진이라며 돌고 있으나, 사실은 이승만 정부 당시 만들어진 모형이다. 1956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전통 선박 모형 전시회에 기증한 물건이다.

1.1. 개발


한국에선 마치 이순신하면 철갑선인 거북선을 제작했다는 식의 통념이 있으나, 사실 조선 수군의 주력은 판옥선이고 이순신도 거북선을 개발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조선 수군은 건국 후부터 왜구 등에 대항하여 계속된 투자와 신형함과 전술 개발을 해왔는데 이걸 다 무시하는 소리다. 조선 초기의 주력함인 대선에서 성종 때의 맹선으로 그리고 명종 시기에 와서 전선(戰船, 판옥선의 공식 함명)이 주력함으로 등장하는데 이 모든 사실을 무시하고 태종 때의 거북선과 임진왜란 시기의 거북선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항해시대의 프리깃과 현용 프리깃을 같은 배라 하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엄격한 법 체계를 가지고 있던 조선 왕조에서 기존 규정에 없는 새로운 군함을 만든다는 것은 지휘관의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며, 그 결단을 이순신 장군이 내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거북선은 고려 시대에 개발되었던 군함 과선(戈船, 배에 창칼을 박아 적의 침입을 막음)과 여말선초의 검선(劍船)을 참고한 듯하다. 그 후 묻혀 있던 것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킨 것이다. 태종실록에도 '거북선'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의 것과는 이름은 같지만 세부 구조도 같을지에 대해서는 설계가 전해지지 않아 알 길이 없다.[5]
태종실록 30권(태종 15년) 좌대언 탁신이 올린 상소에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어 적을 방어해내기 위한 방호 장비는 갖춘 것 같다.

1.2. 편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1척에는 약 120여명이 승선했는데, 이는 전시 병력 부족으로 인해 최소한으로 승선했던 숫자로 보인다. 전후 숙종 대의 기록에 따르면 정상적인 편제라면 약 150여명이 승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부선장만 추가하면 오늘날의 중령급 함장이 지휘하는 함과 편제가 일치한다.
영관
선장(귀선 돌격장) 1명 ✳✳
위관
좌·우 포도장 각 1명 ◊◊◊
장령 6명 ◊
부사관
선직 2명 《
무상 2명 《
타공 2명 《《《
요수 2명[6] 《《
정수 2명[7] 《《
화포장 8명 《《

화포수 24명
사부 14명
노군 90여명

1.3.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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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시대 총통의 모형.# 거북선도 이런 총통들을 사용하였다.
조선의 주력 화포였던 총통을 주로 장비하고 있던걸로 보이나,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천자총통은 임란을 거치면서 조선 수군 전반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걸로 추측된다. 난중일기에도 초기에는 천자포에 관한 기록이 보이다, 뒤로 갈수록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과 왜선이 워낙 약해서(...)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점차 사라졌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의 거북선 황자총통 발사 장면(gif).
[1] 그러나 국산 목재를 사용했다는 주장과 달리 실은 수입 목재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결국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져 제조사 대표가 징역 4년을 살게 되었다. 여담으로 비슷하게 생긴 거북선의 침수 사고까지 터졌다.[2] 지금은 통영에 있다.[3] 지금은 한빛탑 근처의 엑스포 과학 공원 내 수영장에서 볼 수 있다.[4] 이에 대해선 이설이 있는데, 당시 선박의 대포 가용수 등을 고려해 대포만으로 교전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힘들고, 따라서 근접전을 전술의 일부로 포함시켰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선 '포로 헤집어 놓은 후 들이받는 전술'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개정판에선 다른 학설을 수용하여 수정한 모양.[5]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기록은 실록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다[6] 돛 담당[7] 닻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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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완전한 형태가 남아있지 않아서 앞에 달려있는 거북이 머리(용머리)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많다. 입에 총포가 달려있는 총포문이었다는 설이 있고, 대포문이었다는 설도 있으며 불을 뿜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8]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독가스를 뿜는 화학전 분사기라고 방영하기까지 했다. 독가스 분사구까지는 아니지만, 적의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용머리 안에서 유황 등을 태워 마치 용이 입에서 연기를 뿜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설로 다른 배를 부딪쳐서 파괴하는 충각설도 있지만 학술적 근거는 없으며 고 김재근 선생의 저서 <한국의 배>에 기초해 보면 전라 좌수영 귀선의 용머리 외에 선체 하부에 설치한 귀면의 용도에 관한 설과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총포문이나 대포문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존하는 거북선은 1980년대에 복원되어 다시 만들어진 복제품들이다.

1.4. 언제까지 운용 되었나?


정확히 언제까지 운영했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알수가 없다. 1795년에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그림이 남아있으나 이것이 이순신 사후 200여년이 지난후 그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당대에도 운영했는지는 알수가 없는 자료다.
다만 조선 후기에는 거북선이 운영 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박영효갑신정변을 실패한 이후인 1888년에 고종에게 보낸 상소문인 건백서에 “삼면이 바다인 조선엔 반드시 해군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남기며 거북선과 관련된 글을 기록했는데 “예전엔 거북선 같은 함선이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한 것을 볼수 있다. 그러나 이 상소문이 올라오기 불과 16년 전에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에서는 거북선이 보이는것으로 보아서 1872년에서 1888년 사이에 거북선이 사라진 것으로 유추할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수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故) 통제사(統制使) 이순신은 수군의 명장이었습니다.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기이했고 병사를 부리는 데 법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은 그 법을 끝내 익혀서 새롭게 만들지 못했고, 배를 손질하여 더욱 정밀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그 병법과 함선이 함께 없어졌으니 애석한 일입니다

박영효. 1888년에 올린 상소문 중.


1.5. 후계자, 해골선과 창선.


이후 거북선의 후계함으로 매의 형태를 한 해골선(海鶻船)[9]이란 배가 개발된 기록이 있으나 그 모양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다. 2007년 해골선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발굴되어 그 귀여운 외모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후 이 그림이 진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학계의 연구가 이쪽으로 쏠리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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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후계선인 창선은 1606년 나대용이 만든 것으로, 판옥선이나 거북선하고는 다른 배로 배에 창검을 빽빽하게 꽂아놓은 쾌속선이라는 것이 실록에 나오나, 여타의 자료는 없다.

2. 한국에서의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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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종가에서 보관 중인 귀선도.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히며, 간혹 애국심이나 민족 자긍심 등을 고취하는 상징물로도 쓰인다. 비유하자면 영국에서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거북선이 유명세를 떨치게 만든 이순신 함대에서 거북선은 주력함이 아니었으며 현재 알려진 만큼 함대 내에서의 전략적 중요도도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거북선의 건조는 극소수만 이루어졌고, 이를 칠천량에서 다 잃고 난 다음 명량 해전 이후 건조할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단 1대도 거북선을 건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순신 입장에서는 칠천량 해전에서 큰 손상을 입은 수군을 시급히 재건해야 하는 입장에서 건조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거북선을 후순위로 미루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왜냐면 정말로 거북선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면 19세기 고종 시절까지도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현역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MIT(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 내 해양전시관의 역사관에 "인류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로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한때 경상남도에서는 임진왜란 때 침몰했을 거북선을 찾기 위해 수중 탐사 중이라고 했으나,[10] 현재 중단되었다.
지금은 안 쓰이는 지폐인 500원짜리 지폐와 5원짜리 동전에도 거북선이 도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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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지폐에는 정주영 회장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울산 조선소 건설을 위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만든 역사가 있다'면서 이 지폐를 내밀며 설득해 차관을 받아왔다고 한다.[11] 물론 실제로는 개발 도상국의 일개 기업가가 국가의 돈을 빌린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대한민국 정부국가 보증을 서주었기 때문에 차관을 들여올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의 대부분 부대 마크에 필수 요소다. 각 해역 함대와 해군작전사령부, 해군교육사령부 등 주력 부대, 제7기동전단, 충무공 이순신함 등 전단, 함정 마크에도 사용된다. 또 장교 정모[12]와 함정에 근무하는 승조원 뱃지에도 들어가며[13], 사관실 식기에도 전부다 거북선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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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기동전단 부대 마크
충무공 이순신함 함정 로고
해군교육사령부 부대 마크

3. 일본과 중국에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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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히데요시' 일본에선 이런 이미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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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그린 또 다른 그림.
실제로 에도 막부 시대에 거북선을 복카이센沐海潛(=목해선)이란 괴물 배로 부르면서 이것을 가토 기요마사가 퇴치한다는 내용의 연극[14] 또한 성행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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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뛰어난 활약을 본 일본군은 거북선과 비슷하게 상부 구조를 덮은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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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 메구라부네도 참고.
또한 직접적으로 거북선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문헌에 응선(鷹船)이라는 배 역시 이 거북선을 닮았다.링크 이 배는 임란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인 <회본태합기>에 조선 거북선으로 등장한다. 사족으로 <회본태합기>에 등장하는 조선 수군의 배는 다 중국 병서에 실린 중국 배의 모습이다. 전쟁이 끝난 후 에도 막부 시대에 나온 책인지라 일본인 삽화가가 조선 수군의 배를 실제로 보지 못해서 참고 자료로 본 책이 중국 병서였기 때문.
또한 이충무공전서에서는 명나라 화옥이 쓴 해방의(海防議)에 "조선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건 퇴조 때이건 마음대로 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4. 구체적인 구조에 대한 연구



4.1. 철갑선인가?


거북선이 철갑선인가에 대해서는, 한국 주류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역사는 제법 오래돼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최초의 철갑선이면 자랑스럽겠지만 철갑선이 아닌 걸 맞다고 할 수 없다"라고 기술하였다. 민족 정기를 고취하기 위한 의도적인 주장이었는지, 아니면 그게 진의였는지는 몰라도. 이에 대한 신채호의 근거는 아주 간단한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측 기록에 철갑이라는 게 없다.[15] 다만 현재의 국내외 학자들은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게 나오는 건 일본 측 기록인데, 이마저도 철갑을 두른 것인지 철갑을 두른 것처럼 강했다는 것인지(물론 일본에 텟코센이 있기는 했지만), 철못을 박았다는 것인지 해석이 엇갈리고, 거북선이 강해서 자기가 졌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적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명량 해전 때는 13척이 다 거북선이어서 졌다고 할 정도다.[16]
다만 위에서 보듯 당시 판옥선을 거북선처럼 개조했다는 기록에 근거해 왜군이 헷갈렸다는 주장도 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난 기록을 보면 일본에서도 철갑을 두른 배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거북선이라는 철갑선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이걸 주장한 건 유길준인데 이 역시 일본의 정한위략을 보고 그랬다는 것. 사실 실록이나 여타 기록 중에 귀선철개라 하여 거북선용 철갑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있는데, 문제는 관련 기록 중 하나는 1748년 작성된 경상 좌수사의 장계 초본에 "이른바 거북선은 누각을 만들지 않고, 판으로써 덮개를 하고 그 위에 거듭 인갑을 하였고(所謂龜船則不以爲樓以板爲蓋仍作鱗)..."하는 기록이고(출처), 다른 기록은 흥선대원군 시절 기록이다. 즉 둘다 임진왜란 당대 기록이 아니다. 그러나 거북선이 임진왜란 당대에만 존재하다 없어진 함종이 아니고 고종 대에도 남아있었으므로 후대의 기록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정약용은 정조 대에 영국 배 프로비던스 호가 부산에 표류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면서, 프로비던스 호가 "배 위에 널판지를 깔아 마치 거북선 같았다"고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철갑선 설을 부정할 여지도 있다.
생각해보면 고종 때까지도 거북선이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논란이 있는 게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철갑선 설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철갑을 씌웠다는 기록은 부족한데 그나마 철갑선 언급이 있는게 대부분 일본 쪽 기록이지만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판을 멀리서 봐서 착각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어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17]
그렇다고 안 씌웠다고 하자니 일본의 화공을 어떻게 버텼냐가 문제다. 당시 일본도 화공용 폭탄(포락옥)과 짚단을 사용한 데다, 물에 적신 거적을 겉에 덮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 말라버리면 효과가 없고, 이동 중이나 포락옥같은 폭발물에 맞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 거기다 적이 항상 쳐들어 오기 전에 사람이 다니기 힘든 거북선 등에 짚단 덮을 시간을 내준다는 보장도 없다. 철갑선 시기가 올때까지. 화공은 함선에게 치명적이였고 나무로 배를 만들던 시기에 화공을 막는다는건 불가능한 시기였다. [18] 심지어 거북선보다 훨씬 후대에 활약했던 목재 프리깃, 전열함의 시대에도 가열 포탄이 배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조기진화를 하지 못하면 배가 홀랑 타버리는건 시간문제였는데 그보다 전 시기에 활약한 거북선이 철판으로 방화력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바다위의 불쏘시개가 되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돌격선인 거북선 특성상 거리가 멀어서 포락옥을 못던질리도 없으니 말이다. 옻칠하면 나무가 화재에 좀더 강해진다곤 하지만 그야말로 비교적일 뿐 나무는 나무고 애초에 폭탄을 맞았는데 나무 쪼가리가 멀쩡하길 바라는가?
네이버 캐스트의 거북선 철갑선 설에 관한 글
이쪽은 요약하자면 "금속판으로 덮는 것이 별 문제 없이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도가 된다. 이쪽이 가장 보편적인 학설. 하지만 이순신의 입장에선 다소 불편하더라도 돌격선에게 방호력을 제공해야 할 매리트가 있었기에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4.2. 거북선의 모양에 관해


신(臣)이 일찍이 왜적이 쳐들어 올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거북선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백 척의 적선 속이라도 돌진해 들어가서 대포를 쏠 수 있게 했습니다.

- 당포파왜병장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龜船)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이번 싸움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적선 속으로 먼저 달려들어가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등 각종 총통을 쏘게 했습니다.”

- 1592년 6월14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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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에서 복원한 거북선은 3층 구조지만 대포가 2층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 외부 형태만큼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은 바로 내부 구조다.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1층설과 2층설과 3층설, 2.5층 설이 혼재되어 있는데, 현재는 2층 설은 사실상 사장된 상태로, 최초로 제기한 것은 구한 말 선교사였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제창한 형태이다. 하지만 언더우드 학설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바로 서양식 노에 입각한 거북선 모델이기 때문에 언더우드가 제창한 구조에서는 조선식 노를 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자연히 언더우드 모델인 2층 설에서는 전투 공간과 노를 젓는 공간이 합쳐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사격을 하면 이동이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진다. 다만 조선후기에 그려진 수군조련도들의 모습을 보면 다양한 형태의 거북선들이 존재하였고, 이로 미루어보아서 1층설과 2층설, 2.5층설, 3층설 모두 맞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기된 학설이 3층설이다. 남천우 등이 제기한 이 학설은 전투 공간과 노를 젓는 공간이 겹쳐지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층을 더 올린 것인데, 이것 또한 고증에 어긋난다. 기본적으로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지붕을 올린 것이라는 기록과 차이가 발생하고, 2번째로 발생하는 문제점은 층수가 높아져서 흘수가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3층으로 증축을 해도 오히려 무게가 늘어나서 흘수 자체나 복원력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3층설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과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3층설도 문제가 있다.
때문에 위의 학설들을 절충한 2.5층설이 제기되었는데, 내부에 전투 공간을 따로 확보한 반층 정도되는 공간을 마련해 따로 전투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이 설은 임진왜란 당대의 기록인 <간재집>의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언더우드 식 2층설 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모델이 되었고, 조선식 2층 모델의 제기, 3층설의 보완과 2.5층설 자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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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구 교수팀이 추정해 그린 거북선 그림.# 임진왜란 당대의 인물인 간재 이덕홍의 책에 실린 거북선 그림에 의거한 거북선 단면 8각형설에 기초해 그린 것이다.
2015년 현재 홍순구 교수팀의 연구팀에 의해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 높이에 관한 치수 기록을 처음으로 해석해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모두 3층 구조였고, 기존의 2층의 낮은 높이에 대한 논란은 방패판의 크기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15년 8월 18일 기사 :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모두 3층 구조"
2015년 10월 15일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현존 거북선 모형은 '엉터리'… '명량'식으로 발포하면 배 뒤집혀" 홍순구 교수의 3층설 연구에서 화포 운용에 대한 내용을 추가로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거북선은 측면에서는 황자 총통과 현자 총통같은 중소 구경의 화포만을, 천자 총통, 지자 총통과 같은 중, 대형포는 함수 전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혹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3층에도 당연히 벽과 난간이 존재했던 판옥선의 특성상 그 위에 뚜껑을 올린 거북선의 지붕은 자연스럽게 바로 그 3층 벽 위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타당하다. 위에 제시된 거북선 3층설의 그림들을 토대로 생각하면 판옥선의 3층이 무슨 벽도 난간도 없는 구조가 되어 말그대로 2층의 지붕 위에 병사들이 올라타서 싸운 것이 되는데 이랬을 리는 없고 당연히 병사들의 추락 방지 및 적군의 화살, 총탄에 대한 방호 용도로 화포를 쏠 구멍만 뚫어 놓은 벽이 둘러처져 있었으니, 바로 이 위에 뚜껑을 덮은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 모로 합리적이다. 위의 거북선 3층설의 그림들에 나온 3층의 구조처럼 비스듬하게 누운 벽에 뚫린 화포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보통 판옥선처럼 수직으로 세워진 벽에 뚫린 화포 구멍을 통해 밖을 보는 것이 더 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천장 높이도 위에 제시된 형태의 거북선들보다 더 높아 탑승자들이 편리할 것이고, 또 위와 같은 거북선을 만들려면 이미 있던 3층의 벽을 다 뜯어내야 했을 문제 등의 이유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거북선을 3층으로 합리적으로 고증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는 현대의 매체들에서는 거의 다 이런 형태로 거북선을 디자인한다.
그런데 이렇게 추정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이순신은 장계를 통해 왜적들이 지붕으로 침입할 것을 우려하여 칼과 송곳을 박았다고 분명히 명시했다. 헌데 3층 높이의 판옥선에 그대로 지붕을 씌우게 되면 지붕의 높이가 높아져 왜적들이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고,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기어오르려는 시도 역시도 쉽지 않다. 실제로 판옥선의 경우 왜선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최소 칠천량 해전 이전까지는 왜군이 함부로 기어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조총과 화공의 방호를 위해 지붕을 덧씌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굳이 번거롭게 칼과 쇠못을 박아 방어수단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거북선의 작전시 주요 임무는 적들의 조총 엄호사격에 대한 1차 방어선 역할을 통한 판옥선 엄호 그리고 적 지휘선 우선 격멸을 위한 선봉 돌격이었다. 따라서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수심이 얕은 해안에서는 거북선을 운용하기도 어렵고 설령 무게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선체의 높이가 너무 높아지면 무게 중심도 덩달아 높아지므로 급선회시 선체가 뒤집힌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길 위험성이 커져 기동력에도 큰 허점을 노출할 수도 있다.[19]
이런 점들을 고려하자면 실제 거북선의 전고는 왜선과 근접했을 때 적들이 지붕으로 침투할 위험성이 높을 정도로 낮은 편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기록을 보면 ‘거북선의 크기는 판옥선만 하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는 거북선의 전장이 판옥선과 거의 같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전고가 다르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상술된 홍순구 교수의 논문과 후술할 채연석 교수의 논문 내용을 모두 참고해 보더라도 거북선의 주무장인 총통은 기동중이라면 함수의 전면이나 후면을 통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지 측면의 포혈까지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측면 포혈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측면 포혈을 통해 총통을 발사하는 때는 학익진에 편입되어 함선의 위치가 고정된 후였거나 선봉 돌격선이라는 임무 특성상 적선에게 포위당하는 위급상황일 때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상기의 근거를 종합해보자면 현재 학계에서 외면받고 있는 조선식 노를 사용한 2층설이 완전히 말이 안되는 학설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설사 3층 구조가 맞다 하더라도 3층의 용도는 함포사격보다는 화공을 위해 화살을 쏘기 위한 장소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실제로 나대용은 창선을 고안하면서 ‘거북선에서는 활을 쏘기가 불편했다’는 언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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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기업인 윤원영 씨가 2009년 7월 17일 공개한 300여년 전 거북선 고서화 속 그림
2005년 기사에 따르면 이 고서화는 뉴욕 주 롱아일랜드 소재 서진 무역 윤원영 사장이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미국인 엘리자벳 마우리 여사로부터 지난해 1월 구입했으며, 16일 뉴욕 한국 일보를 통해 공개됐다. 평양 숭실 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선교사 데이빗 마우리의 손주 며느리인 마우리 여사에 따르면 이 고서화는 1867년 일본 니가타(新潟)현 인근 나가오카 성벽을 허물 때 처음 발견된 것으로 1970년 일본 골동품 반출 협회의 허가를 받아 미국에 반입됐다. 재미 한국 고미술 연구가인 최영래 씨는 "최근 조지아 대학에 의뢰해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그림이 그려진 연대가 최고 1640년대로 추정됐다“며 “임진왜란(1592년∼1595년) 후 거북선 기지창을 직접 보고 그린 실경화로 보인다" 라고 했다. 그리고 채색 부분은 그림을 그릴때 사용했던 석채(광물성 물감)가 용머리, 방패 등 일부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일본에 건너간뒤 덧칠한듯 보인다는 정보가 있다.
최근에는 과거 거북선에 설치된 총통 복원에 참여했던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가 거북선 실물 복원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거북선 함포 배치구조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 결과를 최근 한국과학사학회지에 공개했다. 채연석 UST 교수 "거북선 19개砲 갖춰 막강화력… 전면부 대형 화포는 획기적 발상" 채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이 모두 19기 장착됐고, 노는 좌우 8개씩 총 16개가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화포를 운용하려면 거북선은 3층 구조라는 분석을 내놨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에서는 선조에게 보고한 내용 등 사료를 바탕으로 총통의 구체적 배치 위치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채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거북선은 하층을 제외한 1층과 2층 전면에 모두 4문의 대형포가 설치됐다고 한다. 용머리와 뒷면, 옆면에는 그보다 작은 소구경포가 배치됐다는 것이다.

4.2.1. 그 외


* 김세랑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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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간된 국산 모형 전문 잡지인 <취미가>[20]의 제호 중에 역사 전통 기획 시리즈로 이순신 장군 흉상과 거북선 특집('1995년 12월호)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후일 전자책으로 별도 발매).
거북선의 경우 필진인 김세랑이 알고 지내던 거북선 연구가에게 사사한 지식으로 '지금 알려진 거북선은 중국과 일본의 동시대 함선을 비교하여 만들어진 모습으로, 조선 시대 판옥선 제작 기술과 전법을 고려하면 지금과는 한참 더 모양이 달라진다' 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다. 제작 동기는, 우연히 한참 예전에 절판된 거북선 프라 모델을 입수한 것을 계기로 자신이 배운 지식을 최대한 적용하여 거의 새로 만들다 시피 개조한 외형이었는데, 당시의 설명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부분이 많은 형태였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의 용머리 화포 설에 따른 발사 장면(gif).
[8] KBS의 <역사스페셜>에서 거북선 머리가 출납식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9] 죽은 사람의 뼈를 의미하는 해골(骸骨)이 아니라, '바다매'를 뜻한다.[10] 하지만 거북선의 하판은 판옥선과 동일하기 때문에 선체를 찾아도 거북선에서 발견한 것이 확실할지가 의문이다. 상부 구조에 철판을 덮었다면 그걸 찾아야 할 듯.[11] 다른 버전에서는 해외 화물선 건조를 수주하기 위해 정주영 회장이 외국에 나갔는데, 당시 한국이 제대로 된 현대식 조선소조차도 없음을 이유로 들며 입찰도 못 해보고 거부당하자 정주영 회장은 "한국 정부에서 곧 전폭적인 지원을 해 현대식 조선소를 지을 테니 그 화물선은 우리가 수주해서 만들 수 있다. 최저가로 만들어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며 거북선을 예로 들어 한국이 조선업 좀 해본 민족이라는 것을 어필하며 입찰해냈다고도 한다.[12] 앵카에 거북선. 부사관 정모는 앵카에 무궁화[13] 장교는 금색 뱃지, 부사관은 은색 뱃지. 잠수함 승조원은 같은 색상에 돌고래 모양이다.[14] 물론, 역사 속에서는 가토와 거북선이 서로 만난 적이 없다.[15] 이게 가장 큰 근거라서 많이 언급되지만, 다른 문제는 철의 보급 문제. 당시 조정은 이런 금속 자원에 대한 보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식량이야 자체 조달이 가능해도 아무리 이순신이라지만 맨땅에서 철을 뽑아낼 순 없으니... 다만 거북선에 쓸 만한 양의 철이 부족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이순신이 부족하다고 한 철은 쇠(Fe)가 아니라 쇠붙이(금속 전반), 그 중에서도 구리(Cu)고 그 근거로 해당 장계에서 말하는 '철'의 용도로 총통 제조를 들고 있다.링크 사실 이순신에게 있어 재료 확보보다는 가공시 드는 비용 문제가 더 컸다고 보인다. 링크는 한국의 군사사 전문가 중 하나인 신재호 님 블로그.[16] 실제 명량 해전에서는 그 직전에 일어난 기록적인 패전 때문에 이순신 휘하 함대에 거북선이 없었다.[17] 거북선에 철갑을 씌웠다는 일본 기록을 그대로 믿으려면, 거북선 외에도 조선 군함 상당수가 철갑으로 배 곳곳을 덮었다는 기록도 믿어야 한다. 이러면 논란이 더 커진다.[18]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것으로 "배는 물 위에 있으니까 화재에 비교적 안전하지 않나? 불 붙으면 금방 바닷물로 끄면 그만인걸." 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배, 특히 목재선의 시기에 화재는 적의 포탄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였다. 당시 포탄이야 그냥 쇠구슬이라 큰 타격은 못줬지만 화재는 바다의 뜨거운 태양빛에 목재는 바싹바싹 말라붙기 마련이고 불쏘시개가 되기 쉬운 뱃밥, 방수재, 심지어 포를 쏘기 위한 화약까지 널부러져있는 배에 불이 붙으면 그냥 끝이였다[19] 물론 조선의 판옥선과 거북선은 평저선이기 때문에 첨저선이 대다수였던 왜선보다는 선회기동 시 안정성이 훨씬 높기는 했다.[20] 모형잡지 취미가네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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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북선 머리의 경우 당시 일본 함선들의 지휘부가 있는 누각이 높이 있는 것을 감안, 지휘부를 직사로 공격할 수 있는 대포를 탑재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가정하고 있다. 때문에 거북이 머리의 사이즈가 상당히 크며, 실제로 거북선이 수십, 수백척씩 사용되고도 후세에 이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거북이 머리 대형화와 함선 높이로 인해 함선 균형의 불안정'을 이야기하고도 있다. 사실, 지금 알려진 거북선의 거북이 머리는 사이즈가 너무 작아 그 용도를 억지로 끼워맞추려면 '적에게 심리적 위압감'이나 '연막 살포용'으로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21]
2. 함수 아래쪽의 도깨비 문양은 위치가 애매하여 그 자리에 도깨비 문양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가지 가능한 추론은 이게 사실 충각의 일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유사시 적함을 들이받는 전술은 전세계적으로 근대까지도 사용되었는데, 현재의 거북선 모양대로라면 그대로 들이받을 시 함체가 충격을 받는 형태이며, 도깨비 문양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홀수선 근처라 충각으로 들이받으면 적함에 물이 들어가기 쉬운 위치라는 점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커야 하기 때문에, 아예 충각으로 설정하고 대형화하고 돌출시켜 놨다. 참고로 충무공 전서의 통제영 귀선에는 귀면이 없다. 전라 좌수영 귀선에 도깨비 문양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북선의 모습은 이 전라 좌수영 귀선을 모델로 한 것.
3. 돛의 경우 근거리 전투시에는 총탄이나 화살에 맞아 구멍이 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투시에 눕힐 수 있도록 설계한 뒤에 100% 노를 저어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접을 수 있게 설계.
4. 거북선의 철갑선 이야기에도 의문을 제시하고는 있다. 일반 철일 경우 바다에서 녹이 슬어 사용할 수 없다는 점과, 못 등으로 고정 시켰을 경우 나무 사이가 벌어지거나 빠져 파손 가능성이 높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적함의 적병이 뛰어들어와 함상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아예 원천 봉쇄하기 위해 최소한 지붕은 있었음이 분명하고, 거기에 적병이 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칼이나 창을 박았다는 기록이 있어 여기에 도색을 했으면 철갑으로 오해하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철갑선 이야기도 무시할 수는 없어 일단 나무 지붕 위에 '놋쇠'로 압정 같은 형태의 장갑판을 무수히 박은 것으로 설정했다.
단,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거북선이 돌격선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철갑이 아니면 조총의 사거리에서 그 갑주가 죄다 파괴될 것임을 이유로 들어 철갑의 타당성을 든다. 이 경우도 판형 갑주가 아닌 비늘형 갑주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구한 말 시기 재래 무기 정리시 기록이나 조선 왕조 실록에 귀선철개라는 기록이 있어, 철장갑 설도 힘을 얻은 상황. 사실 조선 시대 성문에서는 얇은 방화용 겸 방어력 증가용 쇠조각들을 겉에 씌운 사례가 흔하다. 이 경우 녹은 도료를 칠해 방지. 실제로 방화를 막기 위해 철을 씌운 조선 시대 성문들도 철판 겉에 도료가 칠해져 있다.
5. 현재의 알려진 거북선 형태는 누각 높이가 너무 낮아 기록에 남아있는 무수한 총안구와 대포 발사구와 노의 숫자가 설명이 안 된다. 게다가 전투원들의 전투 공간을 아예 예상 못 했기에, 대략 3단 갑판 형태로 포마다 승무원과 총통이 배치되어 외부를 조준하고 맨 밑층엔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으며, 서로의 작업 공간에 문제가 없도록 설계를 해봤다. 이렇게 됐을 때는 결과적으로 높이가 상당히 높아 1번의 거북이 머리와 더불어 상당히 언밸런스 하게 생긴 탓에, 전투에서의 효율성을 위해 함선 균형을 희생했을 가능성에 더욱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에 남천우가 주장한 3층설과 관련해서 일본에서 실험해본 결과 높이가 올라가도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에 자연히 복원력과 흘수는 정상 수준으로 내려간다. 단 남천우 교수의 3층 설은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거북선의 구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22]
결과적으로 완성된 거북선 형태는 훨씬 전투적이고 강렬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외형 자체가 좀 예쁘지가 않아 주류로서 인정받긴 힘들다는 것을 제작자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설명에서 납득할 만한 부분들이 꽤나 많아 음모론까진 아니더라도, 이 부분은 좀더 연구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자금이나 연구 지원 등이 있었으면 하는 부분.
단, 김세랑의 학설도 최근 밝혀진 여러가지 사료에 의하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세랑은 거북선의 노를 그리스 갤리선처럼 수평에 가깝게 설치된 것으로 주장했으나, 이는 한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시기에 만들어진 언더우드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정설에 따르면 거북선의 원형인 판옥선을 비롯한 대형 한국 전통 선박의 노는 거의 예외없이 수직으로 물에 담그는 형태이므로 거북선의 노도 수직 노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다행히 이 오류는 2005년 취미가의 후속 잡지 NEO에 김세랑이 연재한 판옥선 제작 시에는 수직으로 담그는 조선식 노로 수정되었다.
또한 거북선은 원양 항해 성능이 떨어지는 평저선이 아니라 첨저선과 평저선의 하이브리드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아직까진 학술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며, 오히려 현재는 중국에서 외양용 한선인 봉래고선의 발굴과 정크선 중 한선과 유사한 평저선인 사선 연구의 발달로[23] 평저선도 원양 항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이 우세하다.[24]
* 한호림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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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림 디자이너가 출판한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 (유튜브) 주간조선 기사
영어단어 학습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한호림이 기존의 학술연구 및 수치계산, 자신의 해군 수병 복무 경험 등을 동원하여 내놓은 거북선 도안. 1층에 앉아서 노를 젓고 2층에서 포를 쏘며 3층에는 십자로가 있으며 장대와 활을 쏘는 사수등이 있는 3층구조를 제시하고 눕힐 수 있는 돛대, 권양기를 설치한 닻과 닻을 보호하는 뿔, 풍구를 단 용머리등 여러 학술 결과등을 종합하여 기존의 안보다 더 설득력있고 디테일한 도안을 제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한호림의 주장도 위의 김세랑의 주장처럼 거북선의 노가 한선 특유의 수직 노가 아니라 서양 갤리선 노처럼 수평으로 놓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오류가 상당히 있다. 한호림의 주장은 수직으로 놓고 서서 젓는 조선 전통 노는 고속을 낼 수 없어 비전투 선박에서나 쓸 노이지 고속이 필요한 전투용 선박에서는 못쓸 노라고 주장한다.
* 기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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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선체 함수의 귀면상은 충각이 아닌 능파성[25]을 높여 속도를 올리기 위한 돌출물이라는 이론도 존재한다. 이 경우 충각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지나치게 돌출될 필요가 없고, 판옥선과 거북선을 비롯한 모든 조선 수군의 전선은 서양 배처럼 배를 지지하는 용골이 충격을 받아주는 구조가 아니다.[26] 용골이 없고 저판 전체와 장쇠가 용골을 대신하는 구조라서 적함과의 충돌시의 충격을 그대로 선체의 구조강도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고려 시대 과선이 평저선이면서 쇠뿔을 달고 충각 공격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시간적 차이가 큰데다 과선의 쇠뿔에 대한 상세한 내부 구조도 불명이라 거북선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리고 거북선 3층설의 경우 이미 거북선과 판옥선 자체가 평저선치고는 무게 중심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거기서 전고가 더 올라갈 경우 항해 성능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일부 거북선 / 판옥선 복원품은 안전성의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다만 이는 복원시 충분한 사전 연구가 부족했고, 조선 시대 배에 밸러스트를 적재했던 것을 고증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건조된 거북선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목재 건조와 신설계, 그에 따른 여러가지 꽃피고 싹틔우는 애로 사항 때문에 실제로는 판옥선에 뚜껑만 덮은 판옥선 개장형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판옥선과 큰 구조적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4번 각주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다. 단 이런 주장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의 기록을 보면 수치와 포문수의 차이가 있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이 문제는 같은 판옥선이라도 크기와 포문수가 제각각이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시간대나 지역별 차이, 혹은 재료 수급 등등의 이유로 판옥선은 규격화되지 않은 여러가지 형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3. 서양의 연구


한편, 외국에서도 멋있게 보이는지 묘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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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한 학자는 거북선의 모양을 위와 같이 추정하고 있다.[27] 용머리에서 포를 쏘려면 이런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이에인 딕키 외 4명이 쓴 <해전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것으로 비전문가의 예측일 뿐이다. 엄연히 거북선 그림이 국내 사료에 남아 있는데 이런 당치도 않은 추정을 하는 것은 고증 오류에 불과하다. 덕분에 이 책은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국 독자들에게 고증 오류로 까이는 중.
저자는 이런 거북선 복원도를 내세우면서 기존의 한국 복원은 불확실한 그림 자료에만 의지했다고 주장하나, 전라 좌수영 / 통제영 귀선도가 실린 이충무공전서는 정조의 명령으로 편찬되었고 유득공의 엄격한 검수까지 거친 엄연한 관찬 서적이고[28], 이것 외에도 거북선을 묘사한 삽화 자료들 자체는 은근히 많다.[29] 전후 사정을 고려해보면 이들이 민화풍 수군 조련도만 보고 멋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면 실록에도 이순신 당시 거북선은 도면이 전혀 남아있지않으며 이순신 당시 거북선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나온다.
네이버 캐스트의 거북선 구조 관련 글[30]
사족으로, 거북선이 서양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는 거북선이 이렇게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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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스트랄함이 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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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위치한 미 해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거북선 모형.@ 아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한국 거북선의 초기 형태는 늘씬한 게 이 모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 연구소 산하의 소식지인 USNI News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함은 어느 배냐라는 설문 조사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큰 전공을 세운 미 해군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꺾고 2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배가 설문 조사 대상인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미군의 프리깃 함 USS 컨스티튜션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순위이다. 영문 기사번역본 참조.

5. 모형•완구•피규어



5.1. 옥스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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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완구에서 2004년에 불멸의 이순신이 인기를 끌자 "임진왜란 시리즈"라는 상품명을 통해 거북선 블럭을 출시했고 많은 인기를 끌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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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인 2014년 명량이 흥행하여 또 한번 이순신열풍이 불자 "장군 이순신 시리즈"라는 상품명으로 다시 거북선 블럭과 판옥선 블럭을 만들어 대박을 치게된다. 후자인 장군 이순신 시리즈 제품속 거북선은 용머리와 선체 상판이 황금같은 골드색으로 되어있고 깃발도 기의 용그림을 그림자처리만 한 전작과 달리 화려하게 바뀌어 상당히 디럭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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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명량 후속으로 한산이 제작된다하고 또 다시 충무공 이순신이 각광받는 때가 오자 "영웅 이순신 시리즈"라는 상품명으로 로컬라이징되어 재출시 되었다. 2014년의 장군 이순신 시리즈 때 거북선과 외형은 전체적으로 같지만 컬러매치는 바뀌었다. 2004년 임진왜란 시리즈의 거북선처럼 용머리 컬러는 갈색으로, 선체 상판의 컬러는 강철느낌이 나는 실버색으로 바뀌어 나왔다.[32] 그리고 깃발은 황룡이 그려진 황룡기에서 청룡이 그려진 청룡기로 바뀌어져 나왔다.[33]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지 않을 수 없듯 매번 출시될 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항상 동시대 조선수군의 강력한 전투함이었던 판옥선과 함께 출시되었다.

5.2. 영공방


목재 조립식 모형 전문 업체인 영공방에서 고급형인 1/65 스케일, 일반형인 1/100 스케일, 아동용 간이형인 주니어 거북선 3종이 발매되어 있으며, 1/65와 1/100 타입은 금속 부품을 많이 사용하여 완성시에 굉장히 멋지다.[34] [35]
고급형인 1/65 스케일과 일반형인 1/100 스케일 거북선의 모형.[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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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간이형 거북선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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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작물



6.1. 소설



6.1.1. 강철의 열제


판타지 소설 강철의 열제에서도 등장. 자이언트 크랩 껍질이 엄청 단단하면서도 배에 올려놔도 뒤집히지 않는 가벼운 물체라는 걸 안 제라르와 장보고가 고안했다. 실제 우리가 아는 거북선과 약간 다르긴 하지만[37] 역할과 모양은 거의 일치한다. 그 뒤 벌어진 신성 제국, 제국 연합과의 해전에서 무시무시하게 활약하며 터틀 드래곤[38]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그 뒤 이 사실을 안 고진천에 의해 육상용 거북선도 개발돼 최후의 전투에서 초반 고윈이 탑승하며 계웅삼이 이걸 타고 적진을 돌파하는 등 활약을 이어간다.

6.1.2. 아카온:에버초츤


영미권 소설에도 등장한다. 작중 아카온에게 원한을 가진 캐세이 황제가 아카온의 함대를 토벌하기 위해 대함대를 보냈다. 아카온은 자신이 가진 수많은 괴수를 풀어 압도했지만 캐세이의 함선 중 '꿰뚫을 수 없는 거북선'(impregnable turtleships)이 괴수부대를 뚫고 그대로 아카온의 진형을 돌파해 유리한 전황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양측 모두 피해가 심해 무승부로 끝났고 아카온은 이 함대를 지휘한 제독을 보고 싶었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캐세이는 중화 문명을 모티브로 한 제국이지만 거북선이 등장한 것은 워해머 판타지가 동양에 무지한 서구권 작품이다보니 이것저것 섞어만든 듯하다.

6.2. 영화



6.2.1. 난중일기


장일호 감독의 1977년작 영화에서 등장한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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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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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도 등장한다. 개봉 전 제작현장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거북선 건조 장면과 정박 장면이 보인다. 이분이 작성한 기록에 따라 13척의 판옥선 중 1척을 거북선으로 개조하여 돌격선으로 쓸 작전이었지만,[39] 배설이 군사가 살 방법을 찾았다며 거북선을 불태우고 자기는 작은 배로 탈영한다.
불타서 용머리가 떨어지는 거북선과 산발을 한 채 실성해 절규하는 최민식의 연기가 일품. 이 때문에 이순신은 대장선으로 선두에 서서 싸워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도망치던 배설은 분노한 안위의 활에 맞아서 부상을 입었다는 점. 이후 최후반부에 조선수군의 기력상승 이벤트(?)가 벌어진 후 왜선들을 '갈아버리는' 대장선이 거북선으로 보이는 연출이 나오고, 에필로그의 한산도 대첩 장면에서 거북선의 전투 개시 장면이 잠깐 등장하긴 한다.

6.2.3. 귀선


임진왜란 1592를 연출한 김한솔 PD의 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당포 해전에서 거북선 돌격장으로 출전한 이언량이 주인공이며, 주연 배우로는 김남길이 논의중이다. #

6.3. 드라마



6.3.1. 조선왕조 오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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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편에서 당연히 등장. 아예 드라마 오프닝 장면이 거북선의 항해 장면이며, 일본 특촬 영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해전 장면은 대형 수조에서 모형을 이용하여 촬영했다.
제작 시기가 1980년대라는 한계 때문에 거북선의 디자인이 언더우드 학설처럼 서양식 수평노 +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6.3.2. 불멸의 이순신


태종 때의 거북선에 대한 옛 자료 + 나대용의 아이디어로 건조되지만 지붕의 철갑이 무거워져 진수식에서 선회 도중 침몰하는 대 참사가 일어난다.[40] 그 후 철갑의 무게를 줄이고 재건조해 성공적으로 띄웠으며 사천 해전에서의 첫 데뷔에선 결전 병기급으로 나오고, 한산 대첩에서는 당시 같은 방송국의 역사스페셜에서 보여줬던대로 포격 후 돌격선의 역할로 등장한다. 다만 이순신의 파직 이후 대타로 부임한 훌륭하신 원균이 말아처먹은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침몰하고 만다.[41] 또한 불멸의 이순신에는 거북선이 조금 앞선 시기의 역사스페셜의 3층선 고증과 달리 2층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오며, 다만 입에서 대포를 쏠 뿐이다.
링크. 처음 등장에는 입에서 연기만 뿜다, 1분 7초와 2분 12초 ~ 13초에 용두에서 대포를 쏜다.

6.3.3. 징비록


10화에서 드디어 존재가 언급됐다. 귀선이라 부르던 불멸의 이순신과 달리 여기서는 거북선이라 부른다. 하지만 스킵된 사천 해전이야 그렇다 쳐도.. 한산도 대첩에서는 그 모습이 코빼기도 안보였다. 그러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뜬금없이 나왔는데 하필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불멸의 이순신의 칠천량 해전 장면을 우려먹기한 장면에서 나왔다.. 더불어 거북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다 격침당해 노량 해전은커녕 정유재란 내내 1척도 존재하지 않았다.[42] 역사 왜곡을 통해 출연한 것이라 사실상 징비록에서의 순수 출연은 없는 셈이다.

6.3.4. 임진왜란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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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는 이순신을 다룬 1화, 2화에서 등장하며, 영화 명량의 CG팀이 참여한 결과로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거북선 등장 때 무슨 공룡 울음 소리같은 효과음이 나오는 것이 명량 거북선 장면과 흡사하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주인공 중 한명으로 소개되어 시청자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작중에서의 묘사를 보면 일단 철갑선은 아닌 것으로 묘사. 3층설을 따라 판옥선처럼 1층의 노갑판, 2층의 포갑판 위에 3층으로 지붕을 덮고, 함체를 단단한 통짜 소나무로 만들고 지붕에 녹슨 창검을 잔뜩 꽂은 것으로 묘사, 철갑선이 아닌 것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3층설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top-heavy로 인한 복원력 문제는 피해갈 수 있었으나, 2화 한산도 해전 편에서는 적함에 근접하여 전투를 수행하다가 조총 탄환에 관통되어 함장인 귀선 돌격장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의 승조원이 피격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영화 명량에서 잠깐 묘사된 것처럼 용머리 내부에 현자 총통이 내장되어 있고 적선을 충파할 때는 선체 내부로 용머리가 수납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6.3.5. 고우 ~공주들의 전국~


2011년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인 <고우-공주들의 전국> 26화에 잠깐 스쳐 지나간다. 물론 실제 거북선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조선에 출전한 하시바 히데카츠가 조선 수군에 대한 대책을 부하들과 논의하면서 전라 좌수영 거북선 그림을 보고 "이것이 조선의 군선인가? 이런 배는 본 적이 없다"라며 놀란다. 그런데 뒤에 부하가 "조선 수군 따위가 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그 거북선 그림을 밟아버린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조선 수군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히데카츠는 출전을 명령하다가 병으로 쓰러져서 나가 싸웠는지의 묘사는 확실히 안 나오지만 지휘관이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이내 죽으면서 유야무야 된 듯 하다.

6.4. 만화



6.4.1. 효게모노


효게모노에선 오다 노부나가 사망 전에 명과 조선의 강력함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거북선 여러 척이 몰려나오는 거북선 함대가 나온다.

6.4.2. 원피스


원피스에서는 거북선 5대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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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애니메이션



6.5.1.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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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작 변강문 감독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해전을 중심으로 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난중일기에서는 임진왜란 직전 왜국에서 거북선을 파괴하기위해 밀정으로 보낸 정예 닌자들에게 폭파되는 비운을 겪는다.[43] 옥포해전이 끝난 후 거북선을 다시 힘겹게 새로 제작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묘사되며 한산도대첩부터 연달아 혼자서 일본수군의 일개여단을 격파하고 무쌍을 찍을 정도로 사기적인 전투력을 보여준다. 다만 원균이 이순신이 키워놓은 조선수군함대를 전부 말아먹은 칠천량해전에서는 등장하지도 않고 칠천량해전 이후 명량해전과 이순신이 전사하는 노량해전에까지 거북선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고증 오류.[44]

6.5.2. 초롱이의 옛날여행 이순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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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온 변강문 감독의 난중일기와 비슷한 시기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다룬 한국의 위인전 애니메이션 초롱이의 옛날여행 이순신편에서도 소수만으로 수십척의 일본군 함대를 박살낼만큼 막강한 위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순신이 모함당해 통제사에서 파직당하고 그 후임으로 원균이 통제사에 임명된 후, 칠천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키워놓은 조선수군함대가 전멸당할 때 어리석은 원균 때문에 거북선도 침몰당하는 모습을 잘 재현해주었다. 그러나 칠천량해전 이후부터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노량해전까지 연달아 거북선이 등장하는 고증오류는 위의 난중일기와 같다.

6.5.3.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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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함 거북선의 디자인. 일본 애니메이션 하록 선장아르카디아 호와 판박이다.
1979년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에서는 우주 전함화 된 거북선이 나온다. 초기 장면에서 태권브이가 해체되어 거북선의 부품이 된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출격 초기에 태양의 인력권에 끌려들어가자 "섭씨 일만도는 견딜 수 있어!" 하더니 태양을 걍 돌파해버리며.[45] 극 후반에 거북선이 위기에 처하자, 선장 역할을 맡은 주인공 훈이이순신 장군에게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나오고, 갑자기 영감을 받은 훈이가 거북선의 허상을 여러개 만들어서 학익진을 시전한다.
그러나 그 후에 더 많은 적이 나타나자, 훈이는 "죽기를 바라고 싸우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요, 살기를 바라고 싸우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크루들을 독려하지만 역부족, 적의 포격으로 선체가 크게 흔들리는데.. 이게 뭥미? 천장에 숨겨져 있던 '비밀 문서'가 뚝 떨어지고, 그 비밀 문서를 읽은 '박사님'은 훈이와 영희를 격납고로 보낸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레버 하나 당기고 버튼 하나 누르니 태권브이의 부품이 사출되면서 우주 공간에서 결합~! (이 대목에서 극장은 난리가 났다. 가히 2002년 월드컵 황선홍의 첫번째 골 수준.) 식스 센스급 반전을 보여주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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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처음부터 태권브이 있는 것 알려주고 출격 시켰으면 아무 고생도 안했겠지만 거북선 이전에 탈레스 별로 갔던 지구의 우주선들을 박살낸 우주 마왕 일당의 해킹으로 애들만 탄 상태에서 거북선이 자동 발진해버렸고, 지구와의 통신 장비마저 먹통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이전에 당한 우주선의 유일한 생존자로 합류한 박사가 숨겨진 두루마리를 읽은 것이다.

6.5.4. 배트맨 닌자


애니메이션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 일본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배트맨 닌자에서 배트맨이 타고 다니는 배가 거북선과 거의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용두를 배트 가면으로 바꾸고 갑판 지붕이 가시나 창칼이 없는 평평한 형태이다. 그리고 총통 구멍이 배트 문양으로 되어 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왜 거북선을 모티브로 한 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작품 자체가 거대 합체 로봇에다 거대 배트맨까지 등장하는 등 대놓고 병맛 와패니즈에 빠져서 막 나가는 작품이라 보다보면 그냥 정신만 아득해지고 고증 오류 따지기가 매우 곤란할 지경이다. 그냥 와패니즈 제작진들이 뭔가 아시아스러우면서 유명한 건 다 갖다붙힌 걸로 보인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감독과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들이 일본인들이다.

6.5.5. UN-GO


UN-GO 극장판인 인가론에 거북선이 등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UN-GO 거북선 논란 사건 문서로.

6.5.6.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에서는 이 거북선의 머리, 등껍질과 흡사한 적 메카인 센트 마그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거북선과 달리 머리가 3개다.

6.5.7. 레카



6.6. 게임



6.6.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6.6.2. 대항해시대 온라인


대항해시대 온라인상의 거북선
거북선
특수 건조
중형 거북선
일반 건조
장갑 거북선
캐쉬 아이템
강습형 장갑 거북선
캐쉬 아이템
강화형 장갑 거북선
캐쉬 아이템
개량 거북선
캐쉬 아이템
명품 중형 거북선
캐쉬 아이템
돌격형 장갑 거북선
캐쉬 아이템
제례식 장갑 거북선
캐쉬 아이템
2015년 12월 현재 총 9종의 거북선[47]이 있다. 당연히 전투함이며, 매뉴얼상으론 장갑 거북선도 조선에서 건조가 가능하지만, 재료의 미구현으로 현재는 캐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다만, 거북선은 특수 건조, 중형거북선은 직구입으로 구입가능하다.
거북선 계열의 선박들은 오직 포격전을 위한 배이며, 백병전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로 갑판전도 물론 불가능. 화력이나 장갑, 내구도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어서 유저 해적의 토벌 혹은 군렙에 있어 백병 스킬이 없거나 약하고, 또한 백병전을 원치 않는 유저들이 사용한다. 하지만 PvP에서도 백병 불가는 포격 토벌 군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본서버에서는 밸런스 상의 이유로 거북선의 백병 회피 확률을 70%로 낮추고 거북선류를 건조할 수 없게 막아버렸다.
요즘은 유저가 거북선을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부관에게 부관 선박으로 요구 레벨이 낮은 명품 거북선이나 개량 거북선을 주고, 그 거북선이 백병이 안되니 수탈당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이용해서 캐시로 관통력을 강화한 대포를 달아서 전투 중 화력 지원용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엄청난 캐쉬질로 본인은 랩제가 높은 거북선, 부관은 랩제가 낮은 거북선을 태워 더블 거북선을 몰고 다니는 유저도 볼 수 있다고.
한국섭 유저들은 보통 편하게 거북이라고 부르며, 캐쉬 거북선들은 단어 앞글자를 하나씩 따 와서 줄여 부른다. '돌'격형 '장'갑 '거'북선이면 '돌장거' 이런 식이다.
대항해시대에 등장하는 거북선 중 하나의 모습. 외관상의 고증은 나쁘지 않다.

6.6.3. 임진록2 & 임진록2+ 조선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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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 2
임진록 2+[48]
제작진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는 영웅에 이순신이 있다면 유닛에는 거북선이 있다. 임진록 시리즈 대대로 최상의 체력 + 공격력 + 연사력 + 가격[49]을 지닌 해상 유닛으로 스펙 놓고 보면 준완전체 유닛이다. 임진록 1 시기에는 일본 공격선과 조선 순찰선이 2발만 쏘는 것과 달리 아예 3발씩 쏘고, 임진록 2/2+에서는 느린 탄속으로 인해 무빙으로 완벽히 농락이 가능한 명나라군의 사선과, 척 보기에도 난잡하게 여러개의 탄을 산탄마냥 발사해대는 왜군의 누각선과는 달리 빠른 탄속에 여러발의 포를 정확하게 날리는 위엄 돋는 능력을 보여주신다. 초기 버전에서는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패치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최종 보스 이미지로 리뉴얼되었다.
이순신 등용을 업그레이드 해야 거북선 생산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 건물이나 일꾼을 빼앗아봤자 이순신 등용 업그레이드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거북선 업그레이드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명의 경우엔 기술 훔치기로 기술은 훔쳐올 수 있지만 생산 건물이 없으므로 생산을 할수가 없다. 즉, 조선이 아니면 절대로 생산이 불가능하다. 이건 임진록2 시절부터 나왔던 이야기지만 조선의 반격에서도 안 고쳐졌으며, 여러번의 패치에도 끝내 바뀌지 않았다. 의도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현혹술로 빼앗아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근데 그럴 일이 생기긴 할까? 임진록 영웅전쟁 때는 깃발병으로 조선군 조선소를 점령하고, 테크트리만 충족시키면 생산이 가능했다.[50]

6.6.4. 군주 온라인


조선술을 익히면 만들 수 있는 선박. 해상 던전인 문무 대왕릉에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거북선은 최상티어는 아니지만 위에서 2위급의 배다. 최상급 배는 통신사선, 거북선 다음 배는 판옥선이다.

6.6.5. 충무공전


충무공전1 / 2에도 등장. 충무공전2의 경우 일반 거북선과 강화형인 철갑선이 따로 존재한다. 일반 거북선은 안택선보다 좀 더 센 정도지만 철갑선은 정말 강하다. 해상전이 안 벌어져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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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강화형인 철갑선, 아래가 일반 거북선. 충무공전2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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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전1 브리핑/영상에서의 거북선의 모습. 위 사진에서 가운데 배는 판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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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게임에서의 모습.
게임 상 성능은 그럭저럭한 편. 하지만 충무공전1의 판옥선의 특성상 탑승한 유닛들이 전투가 가능해, 거북선보다 판옥선에 포수 여럿을 태우고 판옥선만 움직이면 화력더 더 좋고 자동으로 무빙샷이 되어 더 낫다.[51]

6.6.6. 문명 시리즈


문명 5 한국 문명의 캐러밸 대체 유닛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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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5에서의 모습.
데미지 측면으로는 캐러밸 대체라는게 믿기지 않을정도로 전투력이 높아 당대 유닛은 물론 물량만 충분하다면 산업시대 유닛인 철갑선과도 겨뤄볼만큼 강하나 대양 항해가 불가능 하다는 게 단점. 게다가 오리지널때와 달리 해상유닛도 근거리와 원거리 병종으로 나뉘어지고 캐러밸 대체인 거북선도 근접유닛으로 분류되면서 방어 본진 방어용이나 연안도시 공격으로 용도가 한정되어버리고 한국의 종특 때문에[52] 제대로 써먹기 전에 더 고테크인 유닛이 나오기도 하고 해전 자체가 문명 5에서 해전위주의 맵이 아닌이상 거의 무시되기 때문에 묻혔다. 사실 고테크 유닛 때문에 묻히는 감이 없지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 유닛인 주제에 산업 시대 유닛인 철갑함과 싸워도 꿀리지 않는 방어력을 보이는 유닛이기는 하다. 심지어 도전 과제 중에 거북선으로 철갑함 부수는게 있을 정도.[53] AI의 경우 해전이 거의 없다시피한 판게아여도 좋다고 뽑아대서 방어용 UU로는 쓸만하지만 방어력이 종잇장인 화차와 함께 쌓아둬서 르네상스 즈음에 AI 한국의 군사력이 괴이하게 높다면 이같은 이유일 확률이 높다. 산업시대나 현대시대 이후로 군사력이 하늘을 뚫는다면 실제로 보병과 첨단 화기들을 쌓아뒀을 확률이 높으니 심기거스르지 말자.
문명 6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위대한 제독으로 등장하는 이순신을 퇴장시키면 철갑함 유닛을 하나 얻는다.

6.6.7. 네이비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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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비필드 홈페이지
2004년에 이벤트로 등장했다. 선박 종류는 프리깃. 2016년 재등장했다.

6.6.8. 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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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이순신의 2차 전직으로 등장하는데, 게임 시스템 상 해상전 개념이 없이 육지에서만 전투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지상전 형태로 개조한 병기라는 설정의 거북차로 바뀌었다.[54] 조종석에는 거북차로 전직 전의 1차 장수였던 충무공 이순신이 앉아있으며 평타로 불을 뿜고, 스킬은 용머리 모양의 불덩어리가 목표 지점 주변을 회전하면서 공격하는 것인데 이름이 강강수월래다.
대신 성능은 별로다. 심지어 갱생의 여지인 개조를 받으면 공중 공격이 가능해지는데 이것 역시 다른 장수나 용병들에 밀려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6.6.9. 인디비지블


동료 영입이 가능한 캐릭터들 중 '바오자이'라는 이름의 여성 해적 선장의 배 '테오툴 호'가 거북선을 모티브로 했다. 선수상이 거북이 머리[55]인 점이나 배 위쪽을 감싸고 있는 철침이 달린 철판 등 확실히 거북선이 모티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오자이의 말에 따르면 '바다의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마무시한 배라고 한다.

6.6.10. 우주 거북선


삼성전자가 발매한 게임 중에는 우주 거북선을 소재로 한 슈퍼 알라딘보이용 게임도 있다. 제목도 우주 거북선이고, 작중 우주 거북선의 모습은 거북선을 개조한 것처럼 생겼다. 게다가 타이틀 화면과 스탭롤에서는 대놓고 금색 거북선이 등장한다. 사실 본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산 슈팅 게임을 베이스로 기체의 그래픽만 거북선으로 수정하여 발매한 것으로 공작왕온달 장군으로 둔갑시킨 게임과 더불어 당시 삼성 전자 측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괴작이다.

6.6.11. 충무공 해상 대전


아산시에서 만든 온라인 전략 시뮬레이션인 충무공 해상 대전에도 등장. 여기서는 판옥선보다 한 급 아래의 전함으로 나온다. 참고로 안택선판옥선과 동급이라 더 급이 높다. 하지만 후반부 일본 군함들의 성능이 동급 조선군에 비해 밀리는지라 상대할 만 하다.

6.6.12. 도미네이션즈


전술성 병력인 이순신 장군을 투입하면 항구 쪽에 거북선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일정 공격을 할 때마다 지원 포격을 하며 이순신 장군이 사망 시 사라진다.

6.7. 광고



6.7.1. 1988년 현대전자의 광고


1988년에는 당시 현대전자 (현 SK 하이닉스)에서 역시 우주 전함 거북선을 소재로 한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노 배치가 언더우드의 낡은 학설에 따라 서양식 노 배치인 것이 아쉬운 점.[56]


6.8. 예술작품



6.8.1. 백남준 作 비정수의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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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정수의 거북선.[57] 대전 시립 미술관에 전시중이다.

7. 기타


  •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Ancient Impossible[58]에서는 거북선의 용머리엔 그리스의 불이 달려있고 입에서 독가스도 뿜는 무시무시한 결전 병기로 소개한 바 있다.
  •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4에서 지코 & 팔로알토 팀의 미션 곡 이름으로 '거북선'이 등장했다. 그냥 단순히 제목 딱지만 붙인게 아니라 노래에서도 국악 느낌의 독특한 비트가 흘러나오며, "우린 거북선 다른 배들 통통 그냥 통통 떨어져라 똥통"이란 가사도 있다. 이 노래는 공개 당시 음원 차트에서 장기간 TOP 10에 오르는 등 나름 흥행하기도 했다. 후에 팔로알토의 리믹스 버전도 그에 못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멤버가 다수 빠져나간 후 Remix 2 버전이 나왔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974년에 전매청(현 KT&G)에서 거북선 담배를 출시했다. 당시 가격은 200원으로 고급담배였으나 1980년 솔(담배)가 나온 뒤에 인기가 주춤했고, 결국 1989년 단종되었다. 영어로 GEOBUGSEON이라고 써져있는데, 간혹 주한미군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이것을 '죠벅선'이라고 읽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8. 같이보기



[21] 오늘날 널리 알려진 거북선의 모형은 정조 대에 작성된 충무공 전서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는 통제영 귀선과 전라 좌수영 귀선의 그림이 나오는데 통제영 귀선이 충무공이 만든 것과 닮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그림에는 거북이 머리가 비교적 크고 낮은 위치에 붙어있다. 이순신 장군의 종가에 보관된 기록에는 아예 거북 머리가 없는 것도 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에는 거북이 머리에서 현자 총통을 발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2] 참고로 남천우 박사는 사학과 출신이 아니라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의 물리학 박사다.[23] 원래 중국 북부 지역에서 주로 쓰였던 배지만, 중국 남부나 동남아 쪽에서도 사선 사용을 묘사한 사료들이 발견되었다.[24] 사실 따지고 보면 근세 유럽의 전열함이나 네덜란드의 원양 화물선인 플류트선도 바닥이 평평한 편이며, 현대 원양 화물선들을 보면 선수는 첨저라도 뒤로 갈수록 뱃바닥이 넓적하다.[25] 함수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능력[26] 여담으로 서양 배도 용골이 있다고 항상 꽝꽝 받고 다니던 것은 아니었다. 용골이 배를 지지해 주어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리스 / 로마의 갤리선도 조선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체가 견고해지자 점점 충각이 쇠퇴해 버렸고, 이집트의 충각 공격은 예전부터 배 자체를 부수는 게 아니라 충격으로 적선의 선원들을 떨어뜨리고 빈 배를 접수하려는 목적이 주를 이루었다.[27] 출처는 해전의 모든 것[28] 실록에서 확인 가능할 정도로 정조는 대단한 이충무공 덕후였다. 왕조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정조는 직접 "조선 천지에 이 충무공의 집안만큼은 가히 명족(名族)이라 할만하다"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을 정도다.[29] 거북선을 그린 도자기도 있고, 이순신 종가 소장 거북선 그림도 있다. 수군 조련도 역시 일반인들에게 흔하게 알려진 민화풍 외에도 전 이의병 수군 조련도처럼 세밀하게 그려진 것도 있다.[30] 대부분 민족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거의 퍼다나르다 시피 했다.[31] 판옥선 블럭도 함께 출시되었다.[32] 이쪽이 럭셔리함은 떨어져도 거북선 느낌이 더 난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33] 이는 판옥선도 마찬가지. 판옥선은 깃발이 황룡기에서 청룡기랑 바뀐것만 틀려졌을뿐 나머지는 2014년 장군 이순신 시리즈때와 전부 똑같다.[34] 아동용 간이형 주니어 거북선이 장난감이라면 1/65 스케일과 1/100 스케일은 장식품이나 모형인 셈.[35] 영공방의 판옥선도 마찬가지로 커다랗고 정교하고 멋진 모형용과 조그맣고 단순한 어린이들 완구용으로 2종 발매되었다.[36] 둘다 크기가 틀리지 외형은 똑같다.[37] 장갑이 자이언트 크랩의 껍질이며 대포가 아닌 발리스타의 일종인 유돈노를 사용한다. 그리고 선미에는 자이언트 크랩의 집게발을 달고 설치된 무기 수도 총 20문으로 14문인 실제 거북선보다 많다.[38] 이 말을 통해 언급되진 않았지만 용머리를 달았으리라 추정이 가능하다.[39] 정확히는 방어력을 살려 울돌목에서 적 함대의 돌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뒤에서 판옥선들이 포격을 퍼붓는다는 전술.[40] 당연하지만 실제론 이런 일은 없었다.[41] 지붕 철갑에 뽀죡한 침을 방어하기 위해 지붕에 널빤지를 덧대서 올라선 후 해머질로 지붕의 철갑을 파괴해서 지붕으로부터 일본군이 침투한다.[42] 필요가 없었다. 명량 해전에서 깨지고 난 일본군은 아예 이순신과 싸우려 들지 않았다.[43] 이 때문에 거북선을 다시 제작하느라 옥포해전 이후 한산도대첩 때에서야 출격시킨다.[44]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병크로 거북선은 모조리 침몰되었기에 명량해전부터는 판옥선으로만 싸워야했다. 당시에는 실제 역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여서인지 아니면 거북선이 곧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나올 때는 꼭 따라 나와야한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동시대 이순신장군을 다룬 작품인 초롱이의 옛날여행의 이순신 편에서도 칠천량해전 이후에도 연달아 거북선이 등장한다.[45] 설정상 인조 태양이기는 하다.[46] 다만 합체 장면의 효과음이 너무 싸구려티가 나서 훗날 양철로 만든 태권브이라는 농담이 나돌았다[47] 9종의 거북선 중 7종이 캐쉬선.[48] 다만 생산 탭의 아이콘은 기존의 것을 쓴다.[49] 임진록1 기준. 임진록1의 스탠드얼론 확장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리메이크작)인 영웅전쟁부터 니혼마루와 현무에게 가장 비싼 배의 자리를 내주었다.[50] 임진록1 / 영웅전쟁은 워크래프트2 같은 구식 게임들 대부분처럼 종족이 달라도 테크트리는 공유한다.[51] 실제로 이렇게 컴퓨터가 써먹는다.[52] 과학력 보너스. 웬만한 문명보다 한 단계는 앞선 기술력을 보유할수 있다.[53] 거북선 자체가 1대 1 기준으로 르네상스 유닛인 전열함이나 프리깃도 쳐바르는 괴물인지라* 방어용으로는 정신나간 효율을 보여주며 대양 항해는 안되어도 도시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약한 편은 아니니 동대륙 내 다른 문명의 해안 도시가 많다면 타이밍러쉬로 제대로 써먹을 수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방어력으론 거북선이 공성추의 바다버전으로 보일정도.[54] 당연히 실제 역사에선 그런거 존재하지 않았다. 게임 내의 창작.[55] 단, 진짜 거북선은 선수상이 용머리 모습이다.[56] 여담으로 이 당시 이런 30초 짜리 CG광고 제작비가 약 2억 정도 했다고 한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정도 될 듯. 최고 배우 출연료가 수백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그래서 현대전자나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당시 초대기업 정도만 이런 CG광고를 했다. 정말로 격세지감.[57] 일반에는 TV 거북선, 프랙탈 거북선으로 잘 알려져 있다.[58] 역사속 오버 테크놀러지를 탐구한다. 국내에서의 방영명은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