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원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형원은 1855년 1월 23일 강원도 고성군 서면 송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1월 26일 민용호 의병장의 부대가 고성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 8명을 포박해 민용호에게 인계하여 참수하도록 한 뒤 그 휘하에 들어갔다. 이후 유진장(留陣將)에 임명된 그는 관군에 맞섰지만 그해 6월 민용호의 읩여대가 함경도로 북상했을 때 따라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했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대한제국군이 강제해산되자, 그는 의병 활동을 재개하여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수개월간 10여 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으며, 동해 연안 어장을 침탈하던 일본인 어부들을 잡아 처단했다. 그러나 1907년 10월 20일 새벽 의병 350명을 이끌고 고성읍을 습격해 5시간동안 일본군 보병51연대 9중대 소속 분견대에게 큰 타격을 입힌 뒤 숨었다가 일본군에게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일본군은 고성읍을 가로지르는 남강의 소나무숲으로 그를 끌고 간 뒤 사살하고 집을 불태웠다.
유족과 고성 노인들의 증언 및 구전에 따르면, 일본군은 권형원의 목을 잘라 수비대 본부가 있던 고성 북쪽 장전항으로 가져간 뒤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고 한다. 이후 두개골은 일본으로 밀반출돼 한때 어느 신사(神社)에서 '강원도 권형원'의 이름으로 그의 종친(14촌)에 의해 발견됐으나 얼마 후 그 종친이 타계하면서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사후 머리 없이 고성 벌판에 매장되었다가 1936년 묘역이 송탄보통학교 운동장으로 쓰이게 되자 선산으로 이장되었는데, 이장과정을 지켜본 손자며느리 심소청의 증언에 따르면 자손들은 목이 잘린 유골에 종이로 머리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고깔을 씌워 안장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형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