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진

 


성명
김계진(金季鎭)
이명
김승철(金承哲)
본관
예안 김씨
생몰
1907년 1월 24일 ~ 2000년 8월 5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천군 진혈면 수도동
(현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1]
사망지
경상북도 영주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계진은 1907년 1월 24일 경상북도 영천군 진혈면 수도동(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3월 영주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평은지부(平恩支部) 위원장, 신간회 영주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그는 송위길(宋渭吉)·이상을(李相乙) 등과 함께 격문배포계획에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2년 12월, 김계진은 영주에서 안상윤(安相潤)을 비롯하여 김종진·김명진(金命鎭) 등과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赤色農民組合再建鬪爭委員會)를 조직했다. 투쟁위원회에는 적색농민조합·반제동맹·독서회 등을 두었는데, 김계진은 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이들은 독서회를 개최하여 청소년에게 의식교육을 하고 조합원을 포섭하였으며, 메이데이, 러시아혁명기념일 등의 축하기념식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펼쳤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주시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0년 8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김계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예안 김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종진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