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계환은 1906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30년 무렵 함경남도 단천군 보귀면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단천삼림조합은 일제 경찰을 등에 업고 농민들에게 과중한 조합비를 부담시키고 임산물 채취를 금지시켜 농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그러던 1930년 7월, 단천군 하다면 연대리에서 삼림조합 간수가 삼림단속 중 연대리 주민 허달규를 도벌(盜伐) 혐의로 취조하려다 허달규가 집에 없자 대신 그 부인을 구타하고 감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주민 200여 명이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했다. 이후 그들은 7월 18일 단천군청으로 항의하러 가다가 일본 경찰과 대치했고, 경찰이 "해산하면 좋게 처리하겠다."고 말하자 이를 믿고 해산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날밤 주모자 20여 명을 체포하자, 이에 격분한 주민 400명은 7월 19일 단천군청으로 가서 군수와의 면담과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이 이를 위협하자 일단 해산했지만, 주민들은 하다면, 복귀면, 파도면을 중심으로 군민대회를 대최하고 삼림조합의 해체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7월 20일, 2천 명의 주민의 선두에 서서 단천군청으로 향한 김계환은 단천군청을 습격하고 단천경찰서로 가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을 군중을 향해 발포했고, 김계환은 그 자리에서 최두필, 안길현, 장종형, 이선식(李善植), 최종협(崔鐘協), 유경을, 안경룡, 김을룡(金乙龍), 김창언(金昌彦), 이원호(李元鎬), 김응철(金應喆), 김득수(金得洙), 허병률, 심정붕, 안병환과 함께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김계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