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1. 개관
북한 동부에 있는 도. 서쪽은 평안남도와 자강도, 동쪽은 함경북도, 북쪽은 량강도와 접한다.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3,066,013명이며, 주요 도시는 함흥시, 신포시, 단천시 등. 중공업 도시들이 대부분이다. 참고로 항구도시이자 경원선의 종착지로 유명한 원산시는 지금은 강원도에 소속.
2. 지리
지형은 북고남저형이며, 북부의 태반은 개마고원이 차지하고 있다. 함경산맥과 낭림산맥, 마천령산맥이 통과하는 지역은 산세가 매우 험하지만 개마고원은 고원이다보니 산세가 그리 험하진 않다. 보통 한국에선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라고 하면 한라산(1,950m)을 흔히 떠올리는데, 이 곳에는 해발고도가 2,000m를 훌쩍 넘기는 산들이 수두룩하다. 개마고원의 평균 높이가 무려 1,300m를 넘는데, 속리산이나 치악산 높이보다 높은 드넓은 평지 위에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해 보자. [1] 남쪽의 동해안은 지형이 단조로워 분단 이전에는 피서지로 유명했었다.
3. 연혁
옥저의 영역이었고 3세기 고구려에 의해 점령되었다. 신라 진흥왕이 북진하여 지배하며 이곳에 황초령비(진흥왕 순수비)를 설치한다. 이후 신라, 발해 사이 무주지로 방치되었다. 고려 때는 북쪽은 여진족의 영역이고 남쪽은 동계가 있었다. 조선세종대왕대에 4군 6진으로 함길도(함경도)함경북도 지역과 함께 함경도를 이루었고, 1894년 남북도를 나눠 함경남도가 처음 설치되었다.
1954년 10월에 함경남도 개마고원 일대의 혜산시 및 운흥군 등 10군을 분할되어 량강도로 분도하였다.
4. 특성
광복 당시 공산주의 세력이 강한 곳 중 하나였다.
험난한 지형을 이용한 대형 수력발전소가 많다. 남북통일 이후 이곳의 사정이 안정되면 강원도를 제치고 한국의 관광 메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마고원에 넓은 타이가(냉대림)가 펼쳐져 있어 이것이 굉장한 관광 요소가 될 듯. 분단 전에는 전국 제일의 피서지이자 휴양지였다고 한다.
이 곳의 군민성(郡民性)을 나타내는 말이 있는데, 함흥시 사람들은 얄개(아주 사나움), 홍원군(또는 이원)사람들은 참새(말이 많음), 북청군 사람들은 덤베(아주 급한 성격), 정평군 사람들은 짜드러기(거머리처럼 들러붙고 질김)라고 하는 식이다. 좋게 말하면 투지가 넘치고 활기넘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하위 행정구역
6.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광복 시점의 저 크고 아름다운 장진군과 풍산군의 넓이를 보라(...) 해방 당시 장진군과 풍산군은 '''전국에서 3번째, 4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군이었다.[2]
7. 관련문서
[1] 백암(白岩) 같은 곳은 해발 1,500m 위치에 취락이 있다.[2] 참고로 해방 당시 가장 넓은 크기를 가지고 있던 군은 북쪽에 있는 함경북도 무산군. 무려 충청북도 전체 면적과 맞먹는 어마무시한 면적을 자랑한다. 두 번째는 평안북도 강계군.[3] 북부 보천면이 이동[4] 대진면과 보천면 남부가 이동. 보천면의 중심지가 남부에 있었기 때문에 보천군이란 지명은 이 군이 가져가게 된 것.[5] 운흥면과 봉두면이 이동. 헌데 정작 운흥군의 중심지는 봉두면에 있다.[6] 서부 삼서면, 자서면, 신파면이 이동. 원래 신파군이었으나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다. 김정숙은 '''김일성의 부인(김정일의 어머니).'''[7] 원래는 후창군이었으나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다. 김형직은 '''김일성의 아버지'''.[8] 일부 지역이 운흥군, 삼수군, 풍서군으로 떨어져나가면서 면적이 줄어든 것.[9] 다 떼주고 면 3개 반 정도만 남았는데도 면적이 이 정도다...[10] 고작 면 두 개를 떼어서 새로 신설한 게 전부이건만 면적이 이 정도다. 동북부의 동하면만 이동.[11] 이쪽은 면 3개가 떨어져나간 것.[12] 풍서면 북부와 웅이면, 그리고 갑산군 산남면 일부를 합쳐서 신설한 면. 헌데 정작 풍서면의 중심지는 김형권군으로 넘어갔다.[13] 풍서면 남부와 안산면, 안수면을 합친 것.[14] 동부 천남면이 이동[15] 서부 삼장면의 절반이 이동. 헌데 이게 삼지연군 면적의 절반이다...[16] 삼장면의 나머지 절반과 삼사면의 북부 1/5 정도가 이동. 맨손으로 해적을 때려잡았다는 북한의 그 대홍단호는 여기에서 따온 것.[17] '''삼사면 나머지가 이 정도 크기다.'''[18] 북서부 수하면만 옮겨갔다.[19] 8개 면이 남았다.[20] 서북부의 동상면이 이동. 참고로 동상면이 동하면보다 남쪽에 있다.[21] 5개 면이 남았다.[22] 남서부 2개 면이 이동[23] 북부 5개 면이 이동[24] 동부에 약간의 면적을 얻은 것 빼면 거의 경계선이나 면적이 변한 게 없다.[25] 북부 6개의 면이 이동[26] 동부 2개의 면이 이동[27] 구 함주군과 현 함주군은 지역만 놓고 보면 거의 다른 군이나 다름없다. 구 함주군의 서남부 소수 면만 남아 있었기 때문. 현 함주군의 대부분 면적은 정평군에서 가져온 것.[28] 동남부 퇴조면이 이동. 이 퇴조면을 락원으로 개칭했다.[29] 서남부 삼호면이 이동[30] 백지도는 2003년 기준으로 작성된 지도인데, 흥남시가 다시 함흥시 흥남구역으로 편입된 것은 2005년의 일이기 때문에 번호가 붙어 있다.[31] 북부 2개의 면이 이동. 헌데 이게 함주군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32] 북부 3개의 면이 이동. 유명한 요덕 정치범수용소가 여기에 있다.[33] 구 영흥군의 중심지가 여기에 있었다.[34] 여기저기 취한 면적이 있어서 면적이 오히려 늘어난 케이스. 이 중 동쪽의 250㎢만 현재 고원군으로 남아 있고 서쪽의 788㎢는 수동구로 분리된 상태.[35] 북부 3개의 면이 이동[36] 남부 1개의 면이 이동[37] 남부의 면 경계선의 변화는 없다.[38] 남부 2개의 면이 이동[39] 최남단의 면 1개가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