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두삼
金斗三'''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3년 3월 3일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영남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
<color=#fff> '''사망'''
1919년 8월 21일
목포 형무소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두삼은 1893년 3월 3일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영남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소 법정사의 승려 김연일 등과 교류했다. 김연일은 1918년 봄 강창규, 방동화(房東華) 등의 승려를 중심으로 항일비밀결사를 결성한 다음 신도들을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했다. 1918년 10월에 이르러서는 김두삼을 비롯한 김두삼를 비롯한 30여 명의 신도들이 법정사를 근거지로 동지적 유대를 이루는 가운데, 조직적 결집을 이룰 수 있었다.
1918년 10월 5일, 그는 동지들과 함께 김연일을 불무황제(佛務皇帝)로 옹위하고 도대장(都大將) 이하 군직(軍職) 체제로 조직을 편성한 뒤, 제주도 내의 일본인 관리의 처단과 일인의 도외(島外)로의 구축을 행동 방침으로 정하여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행동에 앞서 각 면(面)의 이장(里長)에게 격문을 배포하여 동참할 것을 권유하여 군민 4백여 명이 가세하는 가운데 행동을 개시하였다. 이에 김두삼 등은 일경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전선(電線)을 절단하여 각 주재소(駐在所)를 고립시킨 다음 중문(中文) 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주재소에 감금되었던 13명의 구금자들을 석방하고, 식민수탈의 전위 역할을 맡았던 일본 상인(商人)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곧이어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이틀만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때 체포되어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1919년 8월 21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두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