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립
1. 개요
김성립(金誠立, 1562 - 1592)은 중기 조선의 관료로 임진왜란의 의병장, 그리고 '''허난설헌의 남편이다.'''
2. 상세
자는 여견(汝見) 혹은 여현(汝賢), 호는 서당(西堂),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11세손이다. 참고로 김성립의 집안은 6대 연속으로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27세까지 매번 낙방을 하다가 아내 허난설헌이 27살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문과 말석인 병과로 종9품에 급제하였다. 이후 홍세찬(洪世贊)의 딸과 재혼한다.
아버지는 며느리의 손위처남인 허봉과 친구 사이였던 김첨(金瞻)이고, 어머니는 27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이조 판서(정2품)를 지낸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다. 참고로 송기수는 이황과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큰 외삼촌인 송응개(宋應漑)는 아내의 손위처남인 허봉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나이가 21살 때인 1583년에 송응개와 허봉은 이이를 탄핵했다가 함께 갑산으로 유배 되었다. 아들이 없어서 남동생 김정립(金正立)의 아들인 김진(金振)을 입양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전하다가 전사했기 때문에 끝까지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무덤에는 첫 번째 아내인 허난설헌이 아닌 두 번째 아내인 홍씨와 함께 묻혀 있다. 첫 아내인 허난설헌에게 무심하여 삶을 고되게 만들었다고 알려져 후세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가 가정에 무심했던 것은 사실이나, 흔히 말하는 허난설헌의 재능을 질투해서 소박 놓았다는 이야기는 허난설헌 동생 허균의 입으로만 전하고 있으며 허균이 김성립을 좋지 않게 보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외간여자 만나러 나가 돌아오지 않는 김성립에 대한 난설헌의 한탄을 담은 허난설헌의 규원가도 허균이 자기 첩이 쓴 걸 누이의 작품으로 날조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