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1916)
석방 후 다시 모임을 갖고, 재차 독립운동의 전개를 결의하고, 군사교련 반대 등을 협의하였다. 6월경,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단 모임을 해체하고 비밀리에 개인 중심의 연락을 통해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김세환은 전체 책임자의 임무를 맡아 조직의 기초를 다졌다. 1935년 2월경, 비밀결사 전교오르그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교 오르그부, 학급오르그부 등을 두고 교장의 생도처벌 반대, 수업료 인하를 요구, 수업료 체납자 정학 반대, 교련(敎鍊) 절대반대 등을 선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김세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