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범(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의병장.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원범은 1886년 1월 9일 광주군 당부면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3월 형 김원국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형이 의병재장을 할 때 자신은 선봉장이 되었다. 1907년 8월 김준과 합세해 장성 등지에서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선봉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적 40여 명을 사살했다.
1908년 전해산과 합세해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여 전해산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중군장이 되었다. 이후 정원집이 전사한 뒤에는 전해산 의병대의 선봉장이 되었고, 9월엔 전해산의 명령에 따라 부하 20명을 거느리고 영광군 황량면에 거주하던 악명 높은 밀정 변영서를 습격해 사살했다.
1908년 의병장 조경환 휘하에서 도포장을 맡아 형과 함께 전남 나주, 함평, 광주 어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1908년 12월 말 대부분의 부하들이 설을 쇠러 고향으로 돌아간 뒤 자신은 형과 함께 조경환을 보좌하며 광주 어등산에 머물렀다가 이듬해 1월 초 일본군의 기습을 받았다.
김원범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 기록에는 김원범이 어등산에서 일본군에게 기습당했을 때 조경환 등 20명과 함께 전사했다고 한다. 또다른 기록에는 어등산에서 탈출한 뒤 1909년 2월 광주 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되어 광주의 일본군 수비대에게 취조를 받다가 9월 2일에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살했다고 한다. 형 김원국은 동생이 죽은 뒤 항일 의지를 불태우며 의병 활동을 지속했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1909년 12월 5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원범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 현 광주광역시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