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1881)
이후 김호는 통의부(統義府) 결사천마대장(決死天摩隊長) 마진호(馬鎭浩)와 연락해 조선의 대관(大官) 암살을 목적으로 5월 중순 박기량(朴期良),나상천(羅相天),신학준(辛鶴俊) 외 6, 7명의 부하를 밀파하기도 했다. 1924년 중국 길림성에서 전만통일발기회(全滿統一發起會)에 광정단 대표로 참석해 남북만주 지역에 산재한 단체의 통합에 노력하였으며, 정의부(正義府)의 재정분과위원(財政分科委員)으로 1926년까지 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정의부 산하에서 만주지역 농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결성하고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김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