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겐 군인과 요새건축자 소비에트 공화국
1. 개요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 반군은 에스토니아 임시정부를 강제로 해체시키고, 12월 17일에 나르겐 지방 노동자 및 군인 대사 협의회가 소집되어, 전쟁, 내무, 노동, 재정, 보건 위원회를 포함한 지역 인민 위원회를 선포 하였다.
스테판 페트리첸코는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으며, 이 위원회는 "헌법적인 측면에서 나르겐은 소련 독립 공화국으로 설계되었다" 라고 선언하고, 이를 나르겐 군인과 요새건축자 소비에트 공화국 이라고 명명했다.
의회는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수도는 남부에 있는 마을 오버나르겐이 지정됬으며, 국가는 인터내셔널가로 정했다. 나르겐 공화국의 국기는 특이하게 흑기였는데, 후에 무정부 신디칼리즘의 상징인 적기와 동시에 쓰이게 되었다. 자체 화폐 발행 기관도 있었지만,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나르겐 공화국도 에스토니아 본토에 있는 에스토니아 코뮌정부에게서 포로를 이송하여, 영토 일부를 요새화하고, 철도를 정리하고, 눈을 나르고, 모래를 파내기 위한용도로 쓰였다.
2. 독일제국과의 전쟁과 멸망
새로 구성된 에스토니아 임시정부는 독일군에 지원을 호소했다 그리고 1918년 2월 26일, 독일군이 섬을점령한 후, 발트해 함대는 인구의 대부분을 대피시켜 헬싱키를 거쳐 크론슈타트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소련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남은 몇 안 되는사람들이 항구 막사에 갇혀 사살되거나, 군용 건물들에서 감금되어 폭사했다.
하지만, 그 장소들 중 일부는 폭발물에 연결된 전선을 끊은 지역 산림 경비원에 의해 구조되었다.
일주일후, 볼셰비키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발틱스를 독일 제국에 양도했다.
스테판 페트리첸코는 1921년 볼셰비키에 대항한 크론슈타트 봉기의 지도자로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핀란드로 도망쳤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1919년 2월, 이곳에서 40명의 볼셰비키 전쟁포로들을 처형했고, 1차대전 종전후, 에스토니아 임시 정부에게 나르겐의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에스토니아 공화국은 나르겐을 해군 기지로 사용했다.1934년, 450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 살았고, 그 중 291명은 에스토니아인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에스토니아 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에스토니아 공화국군은 1930년대 내내 철도를 군사적 목적으로 계속 사용했었으나, 소련의 발트3국 병합으로 소련이 이 철도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