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

 


Đà Lạt.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있는 도시이다. 베트남 도시이름들 중 유일하게 라틴어가 어원인 도시이다. Đà Lạt이라는 말은 "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이에게는 신선함을" 이라는 라틴어를 줄여서 프랑스사람들이 달라트 (Dalat)라고 부른것이 달랏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인근엔중부고원지대에서 유명한 쭈옹신 국립공원이 있다. 베트남 럼동 성의 성도로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17세기에는 원래 참족등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지만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휴양도시를 건립하자는 계획이 착수되었고 이곳은 약 15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날씨가 덥고 습한 베트남에선 최고의 피서지이다. 그 결과 프랑스 식민정부가 관광도시로 만들기위해 더욱 예산을 투자하면서 1916년 프랑스 식민정부의 후에법원에서 달랏 시 수립을 선포하며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베트남전쟁 때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있어 이곳을 뺏기는 순간 남베트남수도인 사이공과 미군과 한국군 등 연합군 기지가 몰려있는 동부해안지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남베트남군은 이곳을 철저히 방어해냈다. 때문에 구정공세 당시에도 공산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도시를 지켜냈으며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는 와중에도 공산군이 이곳으로 진주한적이 없다. 이곳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도시분위기는 구정공세가 있었던 1968년을 제외한 전쟁 종전 직전까지 평화로웠으며 사이공 함락소식이 들려오자 그제서야 남베트남이 망한줄 알았다고 한다.
원래 해안도시인 판랑탑짬[1] 과 달랏을 연결해주는 산악철도가 존재했지만 1968년 베트남전쟁으로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구간만 복원되어 운행중이다.
강원도 춘천시와 자매결연 도시이다.


[1] 참파의 후반기 수도였다. 참파말로 판두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