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파

 



'''참파 왕국'''
'''Chăm Pa'''
[image]
국기
'''존속기간'''
192년 ~ 1832년
'''정치체제'''
도시국가 연맹, 군주제
'''민족'''
참족
'''언어'''
참어, 산스크리트어, 고대 말레이어
'''종교'''
토속신앙, 힌두교, 대승 불교, 수니파 이슬람
'''국가원수'''

'''주요 국왕'''
건국자 구련
전성기 제봉아
말대 반라차수
성립 이전
후한
멸망 이후
응우옌 왕조에 흡수
1. 개요
2. 역사
2.1. 시작
2.2. 마지막 부흥기
2.3. 몰락
2.4. 몰락의 이유
2.5. 참족
3. 역대 참파 국왕
3.1. 주요 국왕
3.2. 전체 계보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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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기 192년부터 1832년까지 무려 1600여년 동안 지금의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참족의 나라이자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숙적'''.[1]
현재는 베트남에 흡수되어서 존재하지 않고, 동남아시아 역사에 별로 관심 없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역 내 강자인 미얀마, 태국, 베트남이 대두되기 전부터 동남아 지역의 강자였다. 현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 시절에도 일진일퇴를 주고 받던 국가이다. 앙코르와트에 부조된 바나나잎 모자를 쓴 적들이 바로 이들이다.[2]
현대에는 베트남에 병합되었지만 천 년이 넘도록 중국과 더불어 베트남의 최대 원수였던 참파를 세운 참족들은 베트남인과 인종적으로 다른 말레이계 민족이다. 이들은 원래 오늘날 보르네오 일대에서 거주했다가, 2천 년 전에 현 베트남 중남부로 이동해왔으며, 한자 문화권이었던 베트남과 달리 힌두교를 받아들인 전형적인 인도 문화권 민족이었기 때문에 베트남과 참파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컸다. 이후에 두 나라 모두 대승불교를 주로 믿게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베트남은 유교, 도교 vs 참파는 힌두교, 이슬람[3]으로 달랐다. 14세기 초에 자야신하바르만 3세는 대월국 영종 황제의 여동생인 현진공주(玄珍公主)를 왕비로 맞았으나 그가 1년 만에 죽자 현진공주는 사티(순장)을 피해 대월국으로 망명한 일도 있었다.
베트남의 역사는 '''북부에 있던 베트남이 남부의 참파를 밀어붙이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종 참파가 베트남을 관광시키고 수도까지 턴 적도 있었지만[4] 전체적으로는 베트남이 참파보다 우세를 점했다. 참파는 14세기 말부터 서서히 베트남에게 밀리더니 18세기에는 베트남이 참파의 근거지인 현 베트남 남부까지 들어오면서 베트남의 종속국이 되어 버렸으며, 결국 베트남에 정복당하고 베트남의 소수민족이 되었다.


2. 역사



참파의 역사.

2.1. 시작


참파는 베트남인들과는 다른 민족인 말레이계 참인들의 나라였다. 이 말레이인들은 2세기 초반부터 후한령 베트남 남부로 쳐들어와 한나라 관리들을 죽이곤 했다. 그러다가 192년에 중국 관리 출신인 구련[5]이 한나라령 베트남 남단인 교주 일남군[6]에 '임읍(林邑, Lâm Ấp)'을 세웠으며, 이후 '환왕(環王)', '점성(占城)'. '참파(占波:점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중국 문화권에 속했지만, 캄보디아로부터 불교, 힌두교, 인도 문화를 도입하면서,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인도문화권이 되었다.
베트남은 화교가 주민의 대부분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7], 한자를 사용하고 유교, 불교, 도교를 받아들이는 등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 문화권에 속한다. 그래서 베트남과 참파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매우 달랐다. 때문에 북부에 자리잡은 베트남과 대립했으며, 자주 전쟁을 벌였다.
잘 나갈 때는 옆에 있는 캄보디아를 수시로 털었으며, 중국 해남도 일대까지 원정 나가기도 했다. 일시적으로 베트남을 몰아붙이던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밀렸으며, 몽골쿠빌라이 칸베트남 원정에 나설 때 남북 양쪽으로 진공하면서 참파를 점령하였기 때문에 비록 베트남이 몽골을 격퇴시켰어도 참파의 피해가 막심했다. 그 후 참파는 몇 세기에 걸쳐서 서서히 남쪽으로 밀려났다.

2.2. 마지막 부흥기


참파의 마지막 부흥기는 포 비나수오르, 베트남어로는 일명 쩨봉응아(制蓬峨, 제봉아)가 참파의 국왕으로 있었던 때였다. 그는 1360년 즉위하자마자 베트남에 사절을 파견하여 베트남이 빼앗아간 옛 영토의 반환을 요구했고, 1361년~1390년에 걸쳐서 3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당시 베트남의 쩐 왕조를 공격하여 베트남을 크게 몰아붙였다. 특히 1371년에는 당시 왕도였던 탕롱 성(지금의 하노이에 위치함)을 불태워 버리는 등 엄청난 패기를 발산한다. 1377년에는 당시 친정에 나서 참파를 공격하였던 쩐 왕조의 황제 예종(睿宗)을 전사시킨 뒤, 또 다시 탕롱을 털었고, 그 이듬 해에도 또 탕롱을 털었다. 포 비나수오르 왕의 재위기간 중에 베트남의 수도 탕롱은 세 번에 걸쳐 약탈당했고, 현재의 베트남 중부 지역까지 내려왔던 베트남의 영토는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에서 갓 벗어났을 무렵 정도까지 북쪽으로 밀려나 수축될 정도였으니 포 비나수오르 왕은 그야말로 참파 왕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포 비나수오르의 활약은 쩐 왕조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고, 외척인 호꾸이리(호계리)가 대두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참파의 부흥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부까지 뒤흔들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의 설화에는 포 비나수오르를 아주 악독한 마계의 대마왕(…)급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록 베트남 중심주의적인 묘사이나 그만큼 그의 활동이 베트남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 된다.
그러나 1390년 베트남과의 전투에서 포 비나수오르가 전사한 뒤,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잃어버린 참파의 기세는 급속도로 수그러들게 된다.

2.3. 몰락


결정적으로 참파는 1471년 마하사잔 왕이 당시 베트남 남부 국경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으나 그 역풍은 대단했다. 화가 난 베트남 후 레 왕조성종(聖宗)이 친히 군사 25만을 이끌고 수도 비자야 성으로 쳐들어가 당시 참파의 왕이었던 마하사잔(베트남어로는 '반 라쩨트안')을 생포하면서 베트남의 속국이 되었고, 다시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다.
이후 참파의 영토는 베트남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분열된다. 18세기 후반에 판두랑가[8]지역으로 완전히 밀려 버리면서, 그 이후로는 베트남 치하의 종속국으로 형식상으로만 유지되었다. 베트남은 외왕내제 체제였는데, 내부적으로 황제를 자칭하려면 지배하는 번국(藩國)이 필요했기 때문. 베트남의 황제들은 역사적으로 주변 라오스나 캄보디아, 참파를 정벌하고 그 지역에 친베트남계 왕을 옹립시켜 형식상 나라(번국藩國)로 인정하고 베트남 국왕 자신은 황제 노릇을 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판두랑가 지역의 참파는 마침내 1832년 응우옌 왕조가 합병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소멸되었다.

2.4. 몰락의 이유


사실 참파가 베트남에 인구는 밀릴 지 몰라도 풍부한 쌀 생산량과 비옥한 중부지대를 점유하고 있었고 무역으로 인한 재화도 풍부했기에 베트남과 전쟁하는 데 있어서 동등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수 천년 동안 중국 왕조들을 상대로 전쟁을 해오던 터라 군인들의 전투경험이 풍부하였다. 또한 베트남은 중국의 유학[9]과 중앙집권체제[10]를 도입한 베트남의 응집력이 참파보다 뛰어나 빠른시간 내에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여 참파의 공격에 대응하고 오히려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반면 참파는 16세기 중엽까지 다른 말레이 반도의 이슬람 국가들처럼 도시국가들의 연맹체제를 유지하였던지라 도시국가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큰 도시의 왕이 참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11][12] 이러한 연맹체제의 특성 상 군사소집 속도가 중앙집권화된 나라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각 도시들에서 군사들을 징발해야 했고 또 소집에 응하지 않는 도시들도 있었으니 전쟁수행이 여러모로 불편했다. 결국 참파는 베트남의 대규모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5. 참족


참인들은 베트남에게 서서히 밀려 버리자 캄보디아나 말레이 반도, 태국으로 가서 이슬람이나 불교로 개종하거나 베트남에 남거나 했다. 물론 한때 참파의 왕이 무슬림이었으니 베트남에도 이슬람을 믿는 참인들이 꽤 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얼마 되지 않는 무슬림들은 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그 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베트남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15세기부터는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현재 참인들의 다수가 이슬람을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의 참족은 이슬람을 주로 믿고 베트남의 참족들은 힌두교를 주로 믿는다. 참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인 경위는 이렇다. 참인들은 계속되는 베트남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바다건너 말레이반도에 위치한 조호르 술탄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왕도 있었고 자위문자도 가져오기도 했다. 허나 이 동맹이 도움은 안 됐다. 왜냐하면 이때 조호르 술탄국은 말레이 해협 건너편에 위치한 수마트라섬에있는 아체술탄국하고 전쟁중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 내에서 참파의 후예인 참 족의 인구는 베트남인들에게 동화되거나, 쫓겨나서 현재 약 40만 명 정도만 남아있다. 이외에 캄보디아-베트남 국경지대에도 많이 거주 중. 참족은 베트남보다 캄보디아에 더 많이 산다.

3. 역대 참파 국왕


참파 왕국은 대체적으로 13세기 말 분열되기 전까지 총 15개의 왕조가 나뉘어졌다고 조지 마스페로(Georges Maspero)가 주장했다. 이하 계보는 참파의 역사에 대한 선구적 연구자로 유명한 조지 마스페로의 주장을 근거로 씀.
참고로 참파의 초기 국왕들은 중국 문화권을 영향을 받아 중국식 이름을 사용했으나, 중후기에는 인도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산스크리트식, 이슬람식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참파의 중후기 국왕의 중국식 이름은 베트남 조정 측에서 한자를 이용하여 베트남어로 음차한 이름이다.

3.1. 주요 국왕


'''왕조'''
'''대수'''
'''산스크리트식 이름'''
'''중국식 이름'''
'''재위 기간'''
제1왕조
1
스리 마라
(Sri Mara)
쿠 리엔
(Khu Liên
區連)
/구련
192 ~ ?
.
.
.
제12왕조 전기
59
자야 인드라바르만 4세
(Jaya Indravarman IV)
추아나(鄒亞娜)
1167년 ~ 1190년
크메르의 통치시기
제12왕조 후기
60
자야 파라메스바라바르만 2세
(Jaya Paramesvaravarman II)
?
1220년 ~ 1252년
.
.
.
63
자야 신하바르만 3세
(Jayasimhavarman III)
체 만
(Chế Mân
制旻)
/제민
1288(?) ~ 1307년
64
자야 신하바르만 4세
(Jayasimhavarman IV)
체 치
(Chế Chi
制旻)
/제지
1307년 ~ 1312년
.
.
.
제13왕조
68
포 비나수오르
(Po Binasuor)
쩨 봉 응아
(Chế Bồng Nga
制蓬峩)
/제봉아
1360년 ~ 1390년
.
.
.
제15왕조
75
마하 사잔
(Maha Sajan)
반 라 체 트안
(Bàn La Trà Toàn
槃羅茶全)
/반라차전
1460년 ~ 1471년
76
마하 사자이
(Maha Sajai)
반 라 짜 주엣
(Bàn La Trà Duyệt
槃羅茶悅)
/반라차열
1471년 ~ 1474년

3.2. 전체 계보


'''왕조'''
'''대수'''
'''산스크리트식 이름'''
'''중국식 이름'''
'''재위 기간'''
제1왕조[13]
1
스리 마라
(Sri Mara)
구련(區連)
,<쿠리엔(Khu Liên)>,[14]
192년 ~ ?
.
.
.
,<2, 3대 미상>,
4

범웅(范熊)
,<팜흥(Phạm Hùng)>,
269년 ~ 284년
5

범일(范逸)
,<팜주앗(Phạm Duật)>,
284년 ~ 336년
제2왕조
6

범문(范文)
,<팜반(Phạm Văn)>,
336년 ~ 349년
7

범불(范佛)
,<팜팟(Phạm Phật)>,
349년 ~ 377년?
8
바하드라바르만 1세
(Bhadravarman I)
범호달(范胡達)
,<팜호닷(Phạm Hồ Đạt)>,
399년? ~ 413년?
9
간가라자
(Gangaraja)
범적진(范敵眞)
,<팜딕쫀(Phạm Địch Chớn)>,
? ~ ?
10
마노라타바르만
(Manorathavarman)

? ~ ?
11

범적문(范敵文)
,<팜딕반(Phạm Địch Văn)>,
? ~ 420년
제3왕조
12

범양매(范陽邁)
범양매 1세(范陽邁一世)
,<팜즈엉마이 1세(Phạm Dương Mại I)>,
420년 ~ 431년
13

범돌(范咄)
,<팜솟(Phạm Xót)>,
범양매 2세(范陽邁二世)
,<팜즈엉마이 2세(Phạm Dương Mại II)>,
431년 ~ 446년
14

범신성(范神成)
,<판탄타인(Phạm Thần Thành)>,
446년 ~ ?
15

범당근순(范當根順[15])
,<팜당깡투안(Phạm Đang Căng Thuần)>,
? ~ 492년
16

범제농(范諸農)
,<팜쭈농(Phạm Chư Nông)>,
492년 ~ 498년
17

범문관(范文款)
,<팜반딴(Phạm Văn Tẩn)>,
498년 ~ ?
18
데바바르만
(Devavarman)
범천개(范天凱)
,<팜티엔코이(Phạm Thiên Khởi)>,
? ~ ?
19
비크란타바르만 1세
(Vijayavarman I)
범필취발마(范弼毳跋摩)
,<팜밧또이밧마(Phạm Bật Tôi Bật Ma)>,
? ~ ?
제4왕조
20
루드라바르만 1세
(Rudravarman I)
고식승개(高式勝鎧)
고식률타라발마(高式律陁羅跋摩)
,<까오툭루앗다라밧마(Cao Thức Luật Đà La Bật Ma)>,
고수률타라발마(高戍律陀羅跋摩)
,<까오투루앗다라밧마(Cao Thú Luật Đà La Bật Ma)>,
율타라발마(律陀羅跋摩)
,<루앗다라밧마(Luật Đa La Bật Ma)>,
?-?
21
삼부바르만
(Cambhuvarman)
범범지(范梵志)
,<팜판찌(Phạm Phạn Chi)>,
? ~ 629년
22
간하르파다르마
(Kanharpadharma)
범두려(范頭黎)
,<팜다우레(Phạm Đầu Lê)>,
629년 ~ ?
23
바하사드하르마
(Bhasadharma)
범진룡(范鎭龍)
,<팜쩐롱(Phạm Trấn Long)>,
640년? ~ 645년
24
바드레스바라바르만
(Bhadresvaravarman)
바라문(婆羅門)
,<바라몬(Bà La Môn)>,
645년 ~ ?
25
이사나바르만[16]
(Isanavarman)

? ~ ?
26
비크란타바르만 1세
(Vikrantavarman I)
제갈지(諸葛地)
,<쭈깟디아(Chư Cát Địa)>,[17]
653년 ~ 679년?
27
비크란타바르만 2세
(Vikrantavarman II)
건다달마(建多達摩)
,<끼엔다테마(Kiến Đa Thế Ma)>,
686년 ~ 713년
28
루드라바르만 2세
(Rudravarman II)
노타라(盧陀羅)
,<로다라(Lô Đà La)>,
713년 ~ 757년
제5왕조
29
프리티비인드라바르만
(Prithivindravarman)

757년 ~ ?
30
세트야바르만
(Satyavarman)

774년 ~ 784년
31
인드라바르만 1세
(Indravarman I)

787년 ~ 801년
32
하리바르만 1세
(Harivarman I)

803년 ~ 817년
33
비크란타바르만 3세
(Vikrantavarman III)

854년 전후
제6왕조
34
인드라바르만 2세
(Indravarman II)

875년 전후
35
자야 신하바르만 1세
(Jaya Sinhavarman I)

898년 전후
제7왕조
36
하라바르만 1세
(Bhadravarman II)

? ~ ?
37
인드라바르만 3세
(Indravarman III)
인덕만(因德漫)
,<난둑만(Nhân Đức Man)>,
석리인덕만(釋利因德曼)
,<사자난둑만(Xà Da Nhân Đức Man)>,
910년 ~ 960년
38
자야 인드라바르만 1세
(Jaya Indravarman I)
석리인타반(釋利因陁盤)
,<사자난지반(Xà Da Nhân Di Bàn)>,
960년 ~ 972년
39
파라메스바라바르만 1세
(Parameshvaravarman I)
파미세갈인다(波美稅褐印茶)
,<바미투에핫안짜(Ba Mỹ Thuế Hạt Ấn Trà)>,
비미세(篦眉稅)
,<베미투에(Bế Mi Thuế)>, [18]
972년 ~ 982년
40
인드라바르만 4세
(Indravarman IV)
시리타반오일환(施利陀盤呉日歓)
,<티로이다반응오녓호안(Thi Lợi Đà Bàn Ngô Nhựt Hoan)>,
982년 ~ 986년
41

유계종(劉繼宗)
,<루께똥(Lưu Kế Tông)>,[19]
986년 ~ 988년
제8왕조
42
인드라바르만 5세
(Indravarman V)
양타배(楊陀排)
빙왕라(冰王羅)
,<방브엉라(Băng Vương La)>,[20]
989년 ~ 997년
43
얀 푸 쿠 비자야
(Yan Pu Ku Vijaya)
양보구비다실리(楊普俱毘茶室離)
양보구비다일시리(楊普俱毗茶逸施離)
998년 ~ 1007년
44
하리바르만 2세
(Harivarman II)
시리하리비마저(施離霞離鼻麻底)
시묵배마접(尸嘿排摩惵)
,<티낙바이마지엡(Thi Nặc Bài Ma Diệp>,
1010년 ~ 1030년
45
비크란타바르만 4세
(Vikrantavarman IV)
양보고시리란덕(陽補孤施離皮蘭德)
피란덕가발마첩(皮蘭德加拔麻疊)
가발마첩(加拔麻疊)
1030년 ~ 1041년
46
자야 신하바르만 2세
(Jaya Sinhavarman II)
형복시리치성하불(刑卜施離值星霞弗)
작두(乍斗, 乍兜)
,<사다우(Sạ Đẩu)>,[21]
1041년 ~ 1044년
제9왕조
47
자야 파라메스바라바르만 1세
(Jaya Paramesvaravarman I)
옹니(雍尼)
,<엉니(Ứng Ni)>,[22]
1044년 ~ 1060년
48
바하드라바르만 2세
(Bhadravarman II)
양복시리율타반마제파
(楊卜尸利律陀般摩提婆)
1061년
49
루드라바르만 3세
(Rudravarman III)
시리률다반마상양보(施里律茶槃麻常楊溥)
제구(第矩[23], 制矩[24])
,<쩨꾸(Chế Củ)>,
1061년 ~ 1074년
제10왕조
50
하리바르만 3세
(Harivarman III)

1074년 ~ 1080년
51
자야 인드라바르만 2세
(Jaya Indravarman II)
제마나(制麻那)
,<쩨마나(Chế Ma Na)>,[25]
1080년
52
파라마브호디사트바
(Paramabhodhisatva)

1080년 ~ 1086년
53
자야 인드라바르만 2세
(Jaya Indravarman II)[26]
제마나(制麻那)
,<쩨마나(Chế Ma Na)>,
1186년 ~ 1110년
54
하리바르만 4세
(Harivarman IV)
양복마첩
(楊卜麻疊)
1114년 ~ 1139년
제11왕조
55
자야 인드라바르만 3세
(Jaya Indravarman III)

1139년 ~ 1145년
제12왕조
전기
56
루드라바르만 4세
(Rudravarman IV)

1145년
57
자야 하리바르만 1세
(Jaya Harivarman I)
추시란파(鄒時蘭巴)
제피라필(制皮囉筆)
,<쩨비라붓(Chế Bì La Bút)>,[27]
1147년 ~ 1160년
58
자야 하리바르만 2세
(Jaya Harivarman II)

1162년 ~ 1167년
59
자야 인드라바르만 4세
(Jaya Indravarman IV)
추아나
(鄒亞娜)
1167년 ~ 1190년
크메르의 통치시기
제12왕조
후기
60
자야 파라메스바라바르만 2세
(Jaya Paramesvaravarman II)

1220년 ~ 1252년
61
자야 인드라바르만 5세
(Jaya Indravarman VI)

1252년 ~ 1265년
62
인드라바르만 6세
(Indravarman IV)

1266년 ~ 1287년
63
자야 신하바르만 3세
(Jayasimhavarman III)
제민(制旻)
,<쩨만(Chế Mân)>,[28]
1288년? ~ 1307년
64
자야 신하바르만 4세
(Jayasimhavarman IV)
제지(制至)
,<쩨찌(Chế Chi)>,
1307년 ~ 1312년
65
자야 신하바르만 5세
(Jayasimhavarman V)
제능(制能)
,<쩨낭(Chế Năng)>,
1312년 ~ 1318년
제13왕조
66
자야 아난다
(Jaya Ananda)
제아난(制阿難)
,<쩨아난(Chế A Nan)>,
1318년 ~ 1342년
67
마하 수와
(Maha Sawa)
차화포저(茶和布底)
,<짜호아보데(Trà Hòa Bố Để)>,
1342년 ~ 1360년
68
포 비나수오르
(Po Binasuor)
(Po Bhinethuor)
(Jaya R'čăm B'nga)
아답아자(阿答阿者)
,<아답아지아(A Đáp A Giả)>,
제봉아(制蓬峩)
,<쩨봉응아(Chế Bồng Nga)>,[29]
1360년 ~ 1390년
제14왕조
69
자야 신하바르만 6세
(Jaya Simhavarman VI)
각승(閣勝)
,<깍탕(Các Thắng)>,
나애(羅皚)
,<라응아이(La Ngai)>,[30]
1390년 ~ 1400년
70
자야 인드라바르만 6세
(Jaya Indravarman VI)
점파적뢰(占巴的賴)
,<찌엠바딕라이(Chiêm Ba Đích Lại)>,
파적리(巴的吏)
,<바딕라이(Ba Đích Lại)>,[31]
1400년 ~ 1441년
71
마하 비자야
(Maha Vijaya)
마하분해(麻訶賁該)
,<마카비까이(Ma Kha Bí Cai)>,
1441년 ~ 1446년
72
마하 칼리
(Maha Kali)
마하귀래(麻訶貴來)
,<마카꾸이라이(Ma Kha Quý Lai)>,
1446년 ~ 1451년
73
마하 카야
(Maha Kaya)
마하귀유(麻訶貴由)
,<마카꾸이도(Ma Kha Quý Do)>,
1451년 ~ 1458년
제15왕조
74
마하 사야
(Maha Saya)
마하반라열(摩訶槃羅悅)
,<마카반라주엣(Ma Kha Bàn La Duyệt)>,
반라차열(槃羅茶悅)
,<반라짜주엣(Bàn La Trà Duyệt)>,[32]
1458년 ~ 1460년
75
마하 사잔
Maha Sajan
반라차전(槃羅茶全)
,<반라짜또안(Bàn La Trà Toàn)>,
1460년 ~ 1471년
76
마하 사자이
(Maha Sajai)
반라차열(槃羅茶悅)
,<반라짜주엣(Bàn La Trà Duyệt)>,
반라차수(槃羅茶遂)
,<반라짜또아이(Bàn La Trà Toại)>,[33]
1471년 ~ 1474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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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 등장하는 참파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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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베트남은 참파 말고도 프랑스, 미국, 몽골, 일본, 캄보디아 등등 적수였던 여러 국가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투쟁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러나 참파는 베트남의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대립과 전쟁을 반복해온 사이였다. 오히려 베트남은 참파를 정복해가며 성장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최대의 숙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참파와 비교할 만한 숙적은 수천년간 속령으로 통치와 침공을 해온 중국이 있다.[2] 갑옷 입은 자들은 크메르 측에 고용된 중국인 용병이다.[3] 참파는 상좌부 불교가 들어온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대승불교권에 가까웠다. 사실 스리랑카와의 교류 증가나 타이족의 도래 이전에는 다른 동남아 지역도 미얀마를 제외하면 베트남처럼 대승불교가 강세였다.[4] 포 비나수오르 왕 당시 참파는 참파의 중흥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꽤나 넓은 영토를 보유했다.[5] 물론 베트남 사람이 아니고 참파인이다.[6] 오늘날의 베트남 꽝찌 성 동하.[7] 그 싱가포르조차도 말레이시아령 시절의 영향으로 말레이어가 국어이고 말레이인이 최대 소수민족이며 이슬람교가 최대 소수종교다.[8] 지금의 냐짱.[9] 유교는 충효를 강조하기 때문에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면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충성심이 강해진다.[10] 즉, 군현제를 받아들였기에 국토 전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했다. 그러므로 국가의 모든 힘을 제대로 동원할 수 있었다.[11] 중앙집권화된 신라와 연맹왕국에서 머문 가야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신라와 가야의 국력은 비슷했지만 결국 신라가 승리했다.[12] 대부분 지금의 다낭과 꽝응아이 지역에 속하는 인드라푸라와 비자야의 왕들이 돌아가면서 참파의 대표 왕 노릇을 했다.[13] 제1왕조는 대체적으로 중국에서 쓴 기록들이 많다.[14] 베트남 기록에는 구련(區憐).[15] 혹은 范當根純.[16] 여왕.[17] 제갈지는 중국인인데 당나라에서 무슨 사연(?)으로 참파에 들어와서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18] 베트남의 역사서 대월사기전서에 기록된 이름.[19] 유계종도 베트남인인데 아유타야왕조처럼 참파에서도 베트남인이 정변을 일으켜 왕이 된 것 같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참파에서 유계종이 이끄는 세력이 강해서 왕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20]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21]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22]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23] 베트남의 역사서 월사략(越史略)에 기록된 이름.[24] 베트남의 역사서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에 기록된 이름.[25]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26] 복위.[27] 베트남의 역사서 대월사기전서에 기록된 이름.[28] 제12왕조의 왕인 제민, 제지, 제능은 베트남에서 기록한 이름이다.[29]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30]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31]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32]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33] 베트남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