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시마 해상자위관 의문사 사건

 



徳島自衛官変死事件
1. 개요
2. 사건 경위
3. 의문점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1999년에 발생한 의문의 변사 사건. 경찰의 석연치 않은 대응 태도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 사건 경위


1999년 12월 25일 해상자위대 제 1술과학교[1]에 근무중이던 자위관 미카사 무츠히코(三笠睦彦, 당시 33세)가 도쿠시마현의 자택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당시 미카사는 고베에서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던 여성을 만나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으며, 중간에 여성의 집에 들러 그녀를 내려준 이후 소식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실종 이틀만인 12월 27일, 도쿠시마현 아난시 교외의 강가에서 미카사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당초 도쿠시마현경에서는 투신자살로 판단하고 수사를 조기에 종결했으나, 이후 언론의 취재와 유족들의 자체 조사 등으로 여러 의문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미카사의 유족들은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재수사해달라는 요청을 현경 측에 정식으로 접수했고 이를 받아들인 현경에서는 2차례 재수사를 진행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현경은 타살 의혹이 없다고 판단, '남녀 간의 치정문제로 인한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이에 불복하여 2004년 10월 8일 도쿠시마 검찰에 심의를 청구했지만 검찰은 다음 해인 2005년 4월 20일에 불기소처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의문점


  • 미카사가 실종된 직후 도쿠시마현경은 도로에 방치된 미카사의 차량을 발견했으나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족에게 연락한 것이 초기 대응의 전부였다.
  • 미카사의 차량 루프에 흠집이 나 있었던 점에 대해 경찰 측에서는 사고 후 견인되면서 생긴 흠집이라고 설명했으나, 견인시 다소의 흠이 생기는 것은 감안할 수 있다고 쳐도 일반적인 견인차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루프에 흠집이 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렵다.
  • 미카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경찰 측에서 투신했다고 추정하는 교량으로부터 4.2m 떨어진 위치였으며, 교량 난간도 높이가 85cm로 손을 짚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난간에서 A의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미카사의 차량이 발견된 위치에서 교량까지 이르는 경로에서는 족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 당초 경찰 측에서는 미카사의 자살 원인을 "귀가 도중 사고를 일으켜서 차가 망가진 것이 화가 났기 때문"이며 "사고로 에어백이 작동되면서 대동맥 손상을 입었다"라고 했으나 이 또한 석연치 않다. 도쿠시마대학에서 실시된 부검[2] 결과에 따르면 미카사의 정확한 사인은 추락 전에 입은 원인불명의 흉부 대동맥 손상으로 추정되었는데, 애초에 사고 발생 지점이 미카사의 자택과는 정 반대 방향이었던데다 경찰 측에서 주장하는 사고 현장에서 시신 발견 장소까지의 거리는 8km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크게 손상된 차량을 장시간 운전해서 시신 발견 장소까지 도달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고, 단순히 에어백이 터졌다고 해서 흉부 대동맥이 손상될 정도로 중상을 입을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게다가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경찰 측에서 자위대 측에 자살로 판명되었다고 통보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최종 결론인 '치정문제가 연관된 자살'도, 당시 미카사와 교제 중이었던 여성이 "헤어지자는 이야기는 전혀 한 적이 없다"며 치정문제설을 일축했다.
  •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 중 미카사가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의에 원형의 압흔(壓痕)이 있는 것을 유족이 발견했다. 그러나 감식이 끝나고 유족에게 반환된 상의에는 어째서인지 압흔이 사라져 있었다. 이 때문에 증거품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이후 경찰은 당초에 압흔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발표를 번복하는 등 또 석연찮은 행보를 보였다.
  • 수사가 진행되던 당시 "흰 차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들이 흰 차를 뒤쫓아가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뭔가 소리쳤다", "차량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정차되어 있었다.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번호판을 가리듯이 흰 옷을 입은 마른 체구의 남성이 강 쪽을 보고 서 있었다"는 등의 목격자 증언이 나왔으나, 경찰은 목격 일시가 애매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증언들을 모두 묵살했다.

4. 기타


미카사의 유가족들은 현재까지도 그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여동생은 2002년 12월 《오빠는 자살한 게 아니야(お兄ちゃんは自殺じゃない)》라는 제목의 수기를 출간했다.

5. 관련 문서


[1] 전문 주특기의 교육을 담당하는 해상자위대의 훈련기관. 한국으로 치면 기계화학교나 제 3야수교 등과 비슷한 위치다. 제 1술과학교는 히로시마현 에다지마시 소재.[2] 참고로 미카사의 시신은 발견 후 즉시 부검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