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밀
杜密
(? ~ 168년)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주보(周甫). 팔준(八俊)의 한 사람. 영천 양성 사람.
평소 이응과 명성과 행동에서 비슷해 당시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이두라 부르면서 이고[1] , 두교[2] 의 재래라고 여겼으며, 호광의 벽소로 대군태수가 되었다가 태산태수, 북해상을 역임했고 환관의 자녀 중에서 현령, 현장을 하는 자들을 단속했다.
북해상 때 춘계순시에 나서다가 고밀에서 향색부로 있던 정현이 특이한 그릇임을 알아보고 불러 군의 직책을 맡겼으며, 정현을 파견해 학습하도록 했고 정현은 훗날 큰 유학자가 되었다.
후에 두밀이 관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고 태수, 현령을 만날 때마다 부탁하는 것이 많았으며, 태수인 왕욱이 두밀과 같은 군 출신 유승에 대해 공경들이 대부분 그를 추천해 천거했다고 두밀을 자극하자 두밀은 유승이 상빈의 예우를 받지만, 선량한 사람에 대한 추천이나 악한 사람에 대한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면서 국가의 죄인이라 했다.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고 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면 규탄한다면서 부군(왕욱)에게 알맞게 상벌을 적용해 명성이 먼 지역까지 떨치게 했다면서 아름다운 것을 묻는다면 만 분의 일 정도가 아니겠냐고 했으며, 왕욱은 이 대답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두밀에게 승복해 그를 대우하는 것이 돈독하면서 후했다.
환제 때 상서령, 하남윤, 태복 등을 지내고 166년 제1차 당고의 금이 일어나면서 영천군으로 돌아가며, 이후 복귀해서 태복이 되었다가 168년에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나면서 자살했다.
[1] 李固. 후한 시기의 대신으로 당시 권신이자 간신인 양기의 종사중랑으로 시작해 태위까지 올라 정사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양기가 여러 차례 황제를 옹립하는 일을 반대하다가 여오후 유지(환제)를 옹립하는 일로 대립하다가 양기의 무고로 살해당했다.[2] 杜喬, 효렴으로 천거되어 사도 양진 휘하에서 시작해 태위까지 올랐으며, 당시 권신이자 간신인 양기가 금으로 장식한 뱀 장식을 달라고 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양기가 공경들에게 자신의 딸의 장례식에 참여하라고 하는 것을 거부했다. 여오후 유지(환제)를 옹립하는 일로 대립하다가 양기의 무고로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