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간 차디코프스키
1. 소개
북마케도니아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K리그 시절 등록명은 '''챠디'''.
2. 경력
2.1. 초기 경력
차디코프스키는 NK 첼레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하였으며, 이 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유망주로 떠올랐다. 당시 차디코프스키는 (북)마케도니아 국가대표에 소집됐을 정도로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2005년에 그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며 호조를 이어가는가 했지만, 제니트에서는 네 경기 출장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친정팀 첼레로 잠시 임대된 이후 제니트를 완전히 떠난 그는 NK 마리보르로 이적했고 얼마 안 가서 FK 파르티잔에 합류하는 등 본격적으로 저니맨의 행보를 시작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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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즌을 앞두고 제난 라돈치치가 떠난 인천은 그 자리를 차디코프스키의 영입을 통해서 메우고자 했다. 그는 입단 이후 바로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데뷔 골을 금방 득점하면서 라돈치치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리라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점점 기대감이나 몸값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는 유병수가 얻어낸 패널티킥을 실축하기도 했고, 거기에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성남 일화 천마를 상대로 또 실축하면서 비판은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2010 시즌을 앞두고 방출이 논의되었으나 간신히 잔류하였지만, 그의 활약상은 여전했다. 그 결과 '''챠잉여'''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해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되었고, 경기에 안 나오면 그리우면서 정작 실제로 나오면 욕받이가 되는 기이한 선수로 자리잡았다. 결국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계약이 해지되며 인천을 떠났고, 차디코프스키와 오그넨 코로만이 나가면서 빈 자리에는 두산 사비치와 사미르 베크리치가 영입되었다.
인천에서의 최종 성적은 24경기 5골.
2.3. 인천을 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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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팀 마리보르에서 잠깐 뛰다가, 이후 슬로베니아 리그로 무대를 옮겨 슬로베니아의 여러 팀을 경험했다. 이후 세르비아 리그 쪽으로 다시 오기도 했다. 2016년에는 2부리그의 FK 콜루바라로 이적했으나 팀이 강등당하면서 졸지에 3부리거 신세가 되었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콜루바라는 2018-19시즌 세르비아 3부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로 승격하며 2020년부터는 2부리거이다.
3. 국가대표
2004년에 처음으로 소집되었으며, 총 8경기를 소화하였다. 제니트에서의 실패와 함께 국가대표에서도 거리가 멀어진 모양새.
4.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이 상당히 좋고 이를 통해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골 결정력이 부족했고 다소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먹튀로 끝나고 말았다. 부진이 이어진 결과 자신감도 굉장히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5. 여담
- 등록명으로 '카디'나 '쟈디'도 고려되었으나 발음을 고려해 '챠디'가 되었다고 한다.
- 얼마나 애증이 심했는지 팀을 떠나고도 몇 년동안 간간히 언급될 정도였다. 사실 묘하게 애정이 가는 점이 있기는 하다...
[[분류:NK 올림피야 류블랴나/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