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난 라돈치치
1. 소개
몬테네그로 출신의 축구선수.
2. 클럽
2.1. 인천 유나이티드 FC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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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첫 이름을 알리게 된 때는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4년부터이다. 한국에의 편도 비행기를 끊고 대뜸 입국하여 반쯤 연습생 신분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테스트를 요청해 당시 장외룡 감독에 의해 정식으로 인천에 입단하였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를 쓴 책 "파란 공포의 외룡구단"을 보면 초반에는 감독과의 트러블도 많았다고.
첫 2004년에는 16경기 1골로 부진했으나 라돈치치의 가능성을 본 장외룡 감독이 라돈치치를 다음 해에도 안고 가기로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해서 한국 경력 2년차인 2005년에 27경기 13골 2어시로 대폭발했다.
라돈치치의 활약에 힘입어 인천은 창단 2년만에 준우승을 이뤄내었고, 힘세고 강한 공격수와 함께하는 인천의 미래는 항상 밝은 것처럼 보였으나....2006년에는 완벽하게 잉여로 변신. 31경기 2골 2어시로 인천의 부진에 큰 역할을 맡았고, 2007년에 영입된 데얀이 대폭발하며 인천의 동유럽커넥션의 정점을 찍는 동안 라돈치치는 16경기 2골로 계속 부진에 빠졌고 데얀과의 공존에도 실패하였다. 결국 J리그의 반포레 고후로 반 시즌 임대되었고, 거기서도 그냥저냥 잉여롭게 살다가 인천으로 임대복귀하게 된다.
데얀이 2008시즌을 앞두고 FC 서울로 이적하게 되자 인천팬들은 모두 멘붕에 빠졌다. 인천을 홀로 먹여살려주던 데얀은 가고, 게으르다고 악평도 듣고, 몇년간 잉여잉여거리던 라돈치치를 톱으로 세워야 한다고 하니 이번 시즌도 답이 없을 것만 같았으나.....
32경기 14골 2어시스트로 멋지게 부활했다! 라돈이 살아나자 인천은 6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만한 저력을 갖춘 팀으로 다시 살아났고, 2008시즌이 끝나게 되자 이동국에게 학을 뗀 성남 일화가 이동국 카드를 버리면서[1] 그 대체자로 라돈치치를 낙점, 결국 18억원의 이적료로 인천을 떠나 성남으로 이적하게 된다.
2.2. 성남 일화 천마 시절
2009년부터 성남에서 뛰게 된 라돈치치는 첫 시즌에는 32경기 5골 2어시로 부진한 활약을 벌여서 성남 팬들 사이에서는 또 까임권을 차근차근 적립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몰리나와 발이 맞춰지게 된 2010시즌에 31경기 13골 6어시로 또 라기옥이 터졌고, 리그와 아챔을 가리지 않는 활약은 성남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2011년 FIFA 클럽 월드컵 당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여 전반기를 통으로 날려먹었으나 후반기에 복귀해서 무난하게 10경기 3골 2어시로 잘 활약해주었는데, 시즌 후에 성남에서 라돈치치를 방출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뜬금없이 스테보가 버티고 있는 수원에서 영입을 해 버렸다!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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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수원이 뜬금없이 3년 계약으로 라돈치치를 잡았다. 그리고 즉시 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서 수원팬들은 '우리 용병 4+1명 쓸 수 있는 것임?' '데니스 때랑은 정반대 상황이구만~ 성남ㅋㅋㅋㅋㅋㅋㅋ' 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에 골넣는 공무원으로 활약한 타겟형 공격수인 스테보와 역할이 겹치는 선수이기에 스테보와의 공존 문제가 팬들에게서 많은 걱정거리가 되었다.
2012년 K리그 2라운드 경기는 라돈치치가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인천 유나이티드가 상대. 그리고 하필이면 그 경기가 인천의 새 경기장, 숭의 아레나 파크 개장경기였다. 이러한 스토리 덕분에 팬들의 수많은 관심을 받던 라돈치치는 전반에 득점을 성공시키며 인천의 잔치상을 제대로 엎어버렸고, 후반에 PK까지 성공시키며 인천 팬들을 확인사살시키는데 성공했다.
전반기동안 8골 1어시를 성공시키며 팬들로 하여금 스테보를 잊게 할 정도의 활약을 하였으나, 6월 20일에 있었던 슈퍼매치 경기 20초만에 김진규의 살인태클에 우측 무릎 내측 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었고, 결국 3개월 부상을 끊게 되었으나[2] , 예상외로 재활이 잘 되어서 빠르게 복귀하여 남은 시즌동안 4골을 더 넣으며 총 12골 5어시스트로 2012시즌 수원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13년에는 서정원 감독이 라돈치치 길들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하는 듯. 그때문인지 2013년 전반기엔 벤치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6라운드 슈퍼매치에서는 동점골을, 14라운드 전북과의 경기에서는 2골을 넣으며 팀의 5:4 승리를 이끌어 냈다.
2.4. 시미즈 에스펄스 시절
6개월 임대되어 15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2.5. 오미야 아르디자 시절
2014년 1월 18일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였다. 이적하자마자 팀 동료가 된 조영철에게 형 노릇 하려고 했다고 한다(...).
2.6. FK 모르나르
2015년 9월 1일, 자국 몬테네그로 리그 소속팀인 FK 모르나르로 이적했으나 2016년 1월 26일,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이후 경력이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역에서 은퇴했을 가능성도 있다.
2.7. 은퇴 후
소리소문 없이 은퇴 후 에이전트를 하고 있다. 김두현과 페이스북에서 자연스럽게 한글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리고 현재는 몬테네그로 2부리그의 FK 제제로 플라프에서 코치생활을 하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192cm/92kg의 큰 체격을 주 무기로 삼아 몸빵으로 상대 수비진을 박살내 주는 스타일이지만 타겟형으로 쓰기엔 몸싸움을 좀 싫어해서 헤딩을 꺼려하는게 단점.[3] 왼발을 주 발로 쓰며 왼발 킥력이 매우 우수하다. 인천 시절에는 헤딩 아니면 왼발에 걸리면 다행이지만 오른발에 걸리면 의족 수준이었다고 많이 까였으나 가면 갈수록 오른발 킥도 좋아지는 듯.
인천 시절에는 그냥 골대 앞에 콕 박혀서 공만 날아오면 받아먹는 보급형 샤샤(국적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게 게으르다고 까였다.)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력은 많이 성숙해졌다. 골 욕심이 많고 중앙 공격수 이외의 포지션은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4]
멘탈적인 면은 전 인천 주장이었던 임중용의 말에 의하면 라돈치치는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거만해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쓴소리를 많이 했다고.
4. 여담
- 부인의 미모가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FIFA 클럽 월드컵 3~4위전에서 무릎 십자인대를 다친 후 고향에서 재활을 하다가 만나게 되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지만 라돈치치의 옆집 꼬맹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였음에도 18살이 되자마자 결혼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라돈치치와 10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팬들 사이에서는 '도둑놈'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 기사 참조
- 오랜 한국 경험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능숙하다. 통역이 없이도 충분히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그러다보니 축덕들이 말하는 K리그 최고의 꿀보직 중 하나로 '라돈치치 통역'이 거론될 정도. 실제로 라돈치치의 인터뷰 중에 통역에게 농담으로 '가~'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이것때문에 아예 별명이 '김라돈'이다.(…)
귀화를 시도할 경우 한국어를 잘 못하는 에닝요보다 유리한 점이 아마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어 실력 덕에 다음 짤방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아~ 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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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귀화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있던 시기에 J리그로 반 시즌간 임대를 떠나는 바람에 귀화 조건 중 하나인 '연속으로 5년 이상 한국에 머무를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대한축구협회의 요청 등이 있을 경우 특별귀화라는 형태로 귀화를 이룰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수원 팬들은 라돈치치의 한국 귀화를 기원하여 밑의 그림의 플랭카드까지 만들어 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또 일본에 임대가서 현역인 상태로 귀화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라돈치치가 한국에 애정이 있기에 은퇴하고도 프로야구 두산의 맷 랜들처럼 한국에 눌러 살 가능성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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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돈치치의 별명 중 하나인 엉덩치치는 이 사진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상대 수비수가 라돈치치의 하의를 잡아서 파울이 선언되었는데, 라돈치치가 심판에게 '이렇게 벗겨질 정도로 잡았는데 왜 경고를 안 주느냐'고 따지는 장면. 하지만 전후사정을 모른 채 보면 영락없이 섹도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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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소속팀을 애교있게 디스하는 경우가 많다. 성남 시절에는 '인천? 야구팀 아니에요?' 드립을 쳐서 인터뷰장을 뒤집어놨고, 수원 시절에는 '성남의 약점은 내가 이적한 것' 이라는 발언과 함께 '성남은 좋은 야구팀' 드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과의 경기에서 경기 후 인천 팬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모습 등을 보면 일종의 유머로 전 소속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전 소속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 명대사(?)로는 "허리 아파~". 인천 유나이티드의 2005 시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서 나온 대사로, 훈련을 위해 선수들이 골대를 들어 옮기는데 라돈치치는 손가락만 대충 갖다대는 시늉만 했다. 촬영팀이 "라돈은 안 들어요?"하고 물어보자 핑계랍시고 댄 게 저 말. 이를 본 주장 임중용이 성질이 뻗쳐서 날린 대사인 "아 랴돈! 투게더, 똑같이 해 새끼야!"도 명대사.
5. 관련 문서
[1] 23경기(10교체) 2골 2어시. 한 시즌을 맡긴 국가대표 공격수라고 하기에는 처참한 성적표였다.[2] 라돈치치의 부상 이후 수원은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드러내며 신나게 DTD를 시전했다.[3] 그런데 2007시즌 인천이나 2012시즌 수원에서 하는 걸 보면 헤딩도 꽤 열심히 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시절 초기에 박힌 게으른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4] 라돈치치와 스테보의 공존을 위하 윤성효 감독의 선택은 4-4-2일때는 라돈-테보 투톱을 쓰거나, 4-3-3일때는 라돈치치 원톱에 스테보를 윙포워드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