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구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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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양측의 전력
3.1. 영국 해군
3.2. 프랑스 해군
4. 전투 경과
5. 결과


1. 개요


7년 전쟁 시기인 1759년 8월 18일 포르투갈 남쪽의 라구스 앞바다에서 영국 함대와 프랑스 함대가 격돌한 전투. 영국 함대의 승리로 끝난 이 전투는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던 프랑스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2. 배경


1759년,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영국군이 프랑스 해안 도시 및 항구들을 약탈한 것에 보복하고 프로이센에게 재정 지원을 해주고 있는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영국 침공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리슐리외 공작 에마뉘엘 아르망이 지휘하는 17,000명이 동원되어 브리타뉴의 반느에 집결했고, 이들을 아일랜드로 호송하기 위해 장 프랑수아 드 라 크루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동원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계획은 얼마 안가 영국 스파이에게 발각되었고, 영국 해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툴룽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 함대를 궤멸시키기로 결정했다.
5월 중순, 지중해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에드워드 보스카웬 제독 휘하의 영국 함대가 툴롱 항구를 봉쇄했다. 그 후 2달 가까이 항구를 봉쇄한 보스카웬은 7월 초에 함대 수리와 식량 조달을 위해 지브롤터로 가야 했다. 적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툴롱을 빠져나오기로 결심한 크루 제독은 툴롱에서 출항해 브레스트로 가서 콩테 드 콩플랑 백작이 이끌고 있는 함대와 합류하려 했다. 7월 17일 크루 제독의 함대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가는 걸 지브롤터에서 목격한 보스카웬 제독은 즉시 전 함대를 소집하여 그들을 추격했다. 이때 프랑스 함대는 8월 17일 밤에서 18일 새벽까지 5척의 전열함과 3척의 프리깃이 길을 잃고 헤메다 카디즈로 피신하는 바람에 전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8월 18일 아침, 양측은 라구스 앞바다에서 마주친다. 이리하여 영국 침공 계획을 실행하려는 프랑스 해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 해군 간의 격전이 임박했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 해군


- 나무르: 대포 90문. 매튜 버클 대위 지휘. 보스카웬 제독은 이 배에 탑승했다.
- 프린스: 대포 90문. 조지프 페이튼 대위 지휘. 부사령관 토머스 브로드릭 제독은 이 배에 탑승했다.
- 뉴어크: 대포 80문. 윌리엄 홀버른 대위 지휘.
- 워스플리트: 대포 74문. 존 벤틀리 대위 지휘.
- 컬로덴: 대포 74문. 스미스 캘리스 대위 지휘.
- 콘커러: 대포 68문. 윌리엄 로이드 대위 지휘.
- 스윕수어: 대포 70문. 토머스 스탠호프 대위 지휘.
- 에드가: 대포 60문. 프랜시스 윌리엄 드레이크 대위 지휘.
- 세인트 앨번스: 대포 60문. 에드워드 버논 대위 지휘.
- 인트레피드: 대포 64문. 에드워드 프라튼 대위 지휘.
- 아메리카: 대포 60문. 제임스 키케 대위 지휘.
- 프린세스 루이사: 대포 60문. 로버트 할랜드 대위 지휘.
- 저지: 대포 60문. 로버트 존 바커 대위 지휘.
- 거너시: 대포 50문. 마이클 커니 중위 지휘.
- 포틀랜드: 대포 50문. 저비스 메이플스든 대위 지휘.
  • 프리깃함: 10척
- 엠부케이드: 대포 40문. 리처드 그윈 대위 지휘.
- 레인보우: 대포 40문. 크리스토퍼 바셋 대위 지휘.
- 섀넌: 대포 28문. 찰스 메도우 대위 지휘.
- 엑티브: 대포 28문. 허버트 소워 대위 지휘.
- 테티스: 대포 44문. 존 무트레이 대위 지휘.
- 리메: 대포 28문. 제임스 베이커 대위 지휘.
- 지브롤터: 대포 20문. 윌리엄 멕레버티 대위 지휘.
- 글래스고: 대포 20문. 앤드루 윌킨슨 대위 지휘.
- 쉬어니스: 대포 24문. 존 클라크 대위 지휘.
- 타르스 프라이즈: 대포 24문. 토머스 바일리 대위 지휘.
  • 범선 2척
- 페이버릿: 대포 14문. 티모스 에드워즈 대위 지휘.
- 그라몬트: 대포 18문. 필리프 에플렉 대위 지휘.
  • 화선 2척
- 에트나: 대포 8문. 리처드 비커튼 대위 지휘.
- 살라만데르: 대포 8문. 존 레버슨 가워 대위 지휘.

3.2. 프랑스 해군


  • 사령관: 장 프랑수아 드 라 크루 제독
  • 전열함 7척(원래 12척이었으나 5척은 전날 밤 카디즈로 피신해 라구스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 Océan: 대포 80문. 장 프랑수아 드 라 크루 제독이 이 배에 탑승했다.
- Redoutable: 대포 74문.
- Centaure: 대포 74문.
- Téméraire: 대포 74문.
- Modeste: 대포 64문.
- Souverain: 대포 74문.
- Guerrier: 대포 74문.
  • 프리깃 3척(본래 6척이었지만 3척은 전날 밤 카디즈로 피신해 라구스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 Chimère: 대포 36문.
- Minerve: 대포 24문.
- Gracieuse: 대포 24문.

4. 전투 경과


오전 7시, 영국군 선봉 함대는 항해 도중에 서쪽 방향에서 프랑스 함대를 목격했다. 당시 크루 제독은 그의 뒤에 오는 배들을 전날 밤에 실종되었던 배들이라고 착각했으나 얼마 안가 영국 함대라는 걸 알게 되자 크게 당황했다. 오전 9시, 보스카웬 제독은 전 함대에게 더 많은 돛을 달라고 명령했다. 그 후 그들은 동풍을 타고 적을 빠른 속도로 추격한 반면 프랑스 함대는 약한 바람만 타고 있어서 금세 따라잡혔다. 이윽고 오후 1시 25분,보스카웬 제독은 전 함대에 적을 포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오후 1시 30분, 프랑스 함대는 선두에서 쫓아오고 있는 영국 함선들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이때 보스카웬 제독은 적의 동태를 살펴보고는 그들이 바람이 불어오는대로 도주할 작정이라는 걸 눈치채고 선두 함대가 적의 전방 함대를 밀어붙여서 뒤에 따라오는 함대들이 도착할 때까지 적을 붙들어두기를 희망했다. 이에 그는 아메리카호와 거너시호에게 더 많은 돛을 달라고 명령했다. 오후 2시 30분, 컬로덴호가 적의 후방함인 Centaure호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아메리카, 포틀랜드, 거너시, 워리어호가 뒤따라 포격했다.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의 후방 근처에 도달했을 때 바람은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들은 프랑스 함대의 풍하측을 공격했는데, 이는 그들이 항구로 도주하려는 걸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크루 제독은 이에 맞서 보스카웬 제독이 타고 있는 나무르 호를 발견하고 이 배를 공격하기 위해 휘하 함대를 최대한 끌어올려 일종의 초승달 모양을 만들었다. 이 초승달 모양의 진형은 프랑스 함대 전체를 선두와 중앙에 배치해 서로 힘을 합쳐 적 함대에게 효과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영국 선두 함대는 적의 이러한 진형을 경계해 적의 대열에 뛰어들기를 주저해 뒤로 물러섰고, 포틀랜드 호는 그 와중에 앞돛대의 가운데 돛대를 상실했다.
오후 4시, 나무르 호에 탑승한 보스카웬 제독은 자신을 잡으려 드는 프랑스 함대와 교전했다. 보스카웬 제독은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스윕수어호에게 적의 전열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후 나무르 호는 4시 30분부터 Océan 호와 바짝 붙었고, 두 함선은 서로에게 포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포격전을 벌이던 나무르 호는 30분이 지난 오후 5시경에 미즌마스트와 중앙돛 활대들을 상실하고 항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크루 제독은 이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전 함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Centaure 호는 너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나포되었다.
한편 보스카웬 제독은 항해가 불가능한 나무르 호에서 뉴어크 호로갈아탄 뒤 그 배에 자신의 깃발을 게양하고 전 함대에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8월 18일부터 19일까지의 밤 동안, 보스카웬 제독은 추격을 계속했고 오전 9시에 자신의 기함을 무력화시켰던 Océan 호를 따라잡고 인트레피트, 아메리카 호를 보내 이 배를 격침시켰다. 그후 오전 동안 휴식을 취한 영국 함대는 8월 19일 정오에 프랑스 함선 3척을 발견했다. 영국 함대는 이들을 맹렬히 추격했고 워스플리트 호가 Téméraire 를 제압했고 Modeste 호도 뒤따라 포획되었으며 Redoutable 호는 화염에 휩싸인 채 좌초되었다. 다른 2척의 함선 Souverain 호와 Guerrier 호는 경로를 바꿔 서쪽으로 멀리 달아나 가까스로 적군의 추적을 뿌리쳤다. 이리하여 라구스 해전은 막을 내렸다.

5. 결과


라구스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의 손실은 막심했다. 전열함 2척이 완파되고 3척이 나포되었으며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천 명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또한 크루 제독은 치명상을 입고 포르투갈 해안가로 피신한 뒤 얼마 안가 사망했다. 그리고 카디스로 도망친 5척의 전열함과 3척의 프리깃은 곧 부제독 터머스 브로드릭 제독 휘하 함대에 의해 봉쇄되었다. 반면 영국군의 손실은 나무르 호가 항해 불능 판정을 받아 수리를 받은 것 외에 56명의 전사자와 196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정도에 그쳤다. 이렇게 프랑스 해군은 큰 타격을 입었고 영국 침공 계획도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영국은 브레스트에 주둔한 프랑스 함대가 존재하는 한 적이 침공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해군에 이들마저 격멸하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11월 20일, 영국 함대는 키브롱 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와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