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긴

 

1. 개요
2. 생애

'''맘루크 왕조의 술탄 '''
10대 키트부가

11대 '''후삼 앗 딘 라긴'''

5대 앗 나시르 무함마드
الملك المنصور حسام الدين لاجين المنصورى
알 말리크 알 만수르 후삼 앗 딘 라진[1] 알 만수리
재위 1296년 12월 7일 ~ 1299년 1월 16일

1. 개요


맘루크 왕조의 제11대 술탄.

2. 생애


캅카스의 체르케스인 출신으로 본래 아이바크의 후계자인 알리의 맘루크였던 그는 쿠투즈의 찬탈 이후 칼라운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후 다마스쿠스 총독을 지내며 좋은 평판을 얻은 라긴은 바이바르스와 칼라운 시대의 주요 아미르들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칼라운의 후계자인 칼릴은 선대의 아미르들을 시기하였고 1292년 12월 2일 순쿠르 알 아쉬카르 등 6명을 자신의 참관 하에 처형하였다. 6명 중 한명이었던 라긴은 마지막 차례였는데, 형의 집행 도중 고관들의 처형에 쓰이던 활 (활 시위로 목을 조르는 방법)의 줄이 끊어져버렸고 라긴은 초죽음 상태로 쓰러졌다. 이에 이집트 총독이던 바이다르 등의 아미르들이 신의 뜻이라며 선처를 청하였고 칼릴은 어차피 새파랗게 변한 라긴이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들것에 실어 내보냈다. 하지만 술탄의 예상과 달리 건강을 회복한 라긴은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리고 그 자신도 숙청될까 두려워하던 바이다르와 함께 사냥 여행 중이던 칼릴을 기습해 시해하였다. 1년만에 복수에 성공한 것. (1293년 12월 12일)
이후 바이다르가 술탄을 칭했는데 칼릴의 근위대장이던 몽골계 맘루크 키토부카가 그를 죽이고 칼릴의 동생 앗 나시르 무함마드를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라긴은 카이로로 도주해 숨었는데 그의 재능을 높이산 키토부카는 그를 사면하고 이집트 총독으로 봉해주었다. 1294년 12월, 키토부카는 마침내 무함마드를 폐하고 술탄이 되었는데 동족인 몽골인 (가잔 칸에게 쫓겨난 오이라튼 부족)들을 대거 불러들여 친위 세력으로 삼았다. 이에 기존 맘루크들의 박탈감이 형성되었고 동시에 가뭄으로 밀값이 폭등하자 여론 역시 좋지 않았다. 때가 왔다고 느낀 라긴은 1296년 5월 26일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돌아오던 키토부카 진영을 습격해 근위대를 격파하였다. 키토부카는5명의 맘루크들과 다마스쿠스로 도주해 시타델에서 4개월간 농성하였는데 물자가 부족해지자 항복하고 라긴을 술탄으로 인정하였다. (1296년 12월 8일) 같은날 식품 가격이 인하되었고 아미르 카라 알 만수리가 이집트, 칸자크 알 만수리가 다마스쿠스의 부왕으로 봉해졌다. 사면된 키토부카는 살카드 태수가 되었다.
라긴은 모든 세금 체납금을 면제해주었고 관료들이 불법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는 또한 바이바르스 자샨키르, 망구 티무르 등의 아미르들을 옥에서 석방하고 예복을 하사하였다. 카이로의 압바스 칼리파 알 하킴 1세에게도 시타델의 연금 생활 대신 시내에 좋은 집을 주었으며 이븐 툴룬 모스크의 수리를 위해 2만 디나르 금화를 하사하였다. 그외에도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 법원에 나아가 백성들과 친절히 대화하고 라마단 금식을 한달 대신 두달 행하는 등 민심을 얻으려 노력하였다. 1297년 12월 전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를 만난 라긴은 그에게 자신은 그 부친의 맘루크였으며 그가 통치할 연령에 이를 때까지만 권좌를 지킬 뿐이라 언급하였다. 다만 점점 자신감을 얻은 라긴은 기존 약속을 깨고 망구 테무르를 이집트 부왕으로 봉하였다. 이에 아미르들이 서약을 상기시켰지만 이에 라긴은 성을 내며 반대파 아미르들을 변방으로 축출하고 카라 순쿠르를 감금하였다.
더 나아가 친구이자 그를 처음으로 술탄으로 인정했던 바이사리에 대해서도 병문안을 온 그가 망구 테마르를 후계자로 봉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자 그를 가택연금시켰다.[2] 와병 후 라긴은 점점 더 종교적인 수도 생활을 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나날을 보냈는데, 그러자 측근 망구 테무르가 술탄인양 전횡을 일삼았다. 마침내 1298년 12월 보다못한 아미르 쿠르기가 이끄는 암살단이 궁전으로 난입하여 수석 카디와 체스를 두던 라긴 앞에 나타났다. 근위대장 노가이 역시 음모자들과 한패였고, 라긴은 칼을 휘두르며 맹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살해되었다. 그 직후 킬리키아 원정에서 돌아온 아미르 벡타쉬 알 파크리가 암살자들을 처벌했는데 스스로 군인이지 정치가가 아니라며 집권하지 않았다. 따라서 15세의 앗 나시르 무함마드르 복위시키고 바흐리 맘루크의 살라흐와 부르지 맘루크의 섭정하였다. 이러한 혼란기를 노리고 일 칸국의 가잔 칸이 침공해오며 2차 홈스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1] 다만 이집트 아랍어로는 라'긴'[2] 바이사리는 망구 테무르가 그럴 자질이 없는데 라긴이 그를 이집트 총독으로 봉했다고 화를 내자 다음에 같이 저녁을 먹고 궁전을 나갈 때에 체포되어 부인과 함께 가택연금되었다. 다만 편안한 저택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