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프 알리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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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طفعلى خان زند‎''' '''''Lotf Ali Khan'''''
1769–1794
1. 개요
2. 생애


1. 개요


페르시아 잔드 왕조의 마지막 군주.
꽃미남에 예의범절, 화려한 검술까지 겸비했지만, 아버지 대의 악연과 그 외모로 인해 온갖 치욕과 고통을 받고 죽어야 했다.
기록 속 묘사에 따르면,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군주였고 용기가 있고 인내심이 강해 부하들이 잘 따랐다고 한다. 또한 검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뛰어난 지휘관이기도 했다.
로트프 알리의 아버지 자파르 칸은 강한 무력을 지닌 인물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조부인 사디크 칸을 살해한 알리 모라트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용맹스러운 인물로서 카자르 왕조의 아가 모하메드(1742~1797)와 수십 차례 격돌하여 승리하였으나 재위 4년 만에 독살당하고 만다.

2. 생애


아버지의 죽음 후, 치열한 왕위 계승전 끝에 로트프 알리가 1789년 20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즉위 후 카자르 왕조와 전쟁을 벌였지만 카자르 왕조에 크게 패하고 수도인 시라즈에서 농성하였다. 그러나 재상인 하지 에브라힘이 카자르 왕조와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버린다.
로트프 알리는 간신히 케르만으로 도망쳤으나, 아가 모하메드의 카자르 군대가 추격하여 6개월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케르만까지 함락되고 포로가 되었다. 야사에 의하면 체력이 다해 사로잡히기 전에 14명의 병사를 상대로 혼자서 2시간 동안 싸웠다고 하며, 영국의 작가 하퍼드 존스브리지스(Sir Harford Jones-Brydges)에 따르면 "페르시아 역사상 마지막으로 예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던 인물" 이었다고 한다.
로트프 알리 칸은 사로잡힌 뒤, 눈이 뽑히고 테헤란으로 끌려가 고문당한 끝에 몇 달 뒤 25살의 나이로 아가 모함마드 칸의 명으로 질식사당했다. 로트프 알리 칸의 어린 아들은 왕조를 잇지 못하도록 거세되었고, 왕비 또한 강간당하고 공주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로트프 알리 칸이 고문을 당한 정황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고문당했는지는 카자르 시대의 공신력 있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카자르 왕조 국왕들은 로트프 알리 칸의 불명예스러운 말년과 죽음을 부끄러워하여 이를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로트프 알리 칸의 고문에 대해 추측하였는데, 극단적으로는 그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거세당했다는 주장까지도 있다.
케르만 시민들 중 2만여 명의 성인 남성이 눈알을 뽑힌 후 살해되었고 그 눈알 덩이가 전시되었으며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가 되었다.
왠지 국내에서는 카자르 왕조의 시조 '아가 모하메드'가 잔드 왕조의 시조인 카림칸 잔드(1705~1779)에게 거세당했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가 퍼져있는데, 아가 모하메드를 거세한 건 나디르 샤의 조카인 아딜 샤이며, 카림 칸 잔드는 아가 모하메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핫산과의 세력 다툼 끝에 모하메드 핫산을 죽이고, 아가 모하메드를 궁정에 데려와 그 정치적 능력을 인정해 조언가로 중용한 인물이다.
로트프 알리 칸의 죽음으로 44년간 유지된 잔드 왕조는 멸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