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1. 개요
2. 국장
3. 지배국가
3.1. 엘람(기원전 2700년 ~ 기원전 539년, 2161년간)
3.2. 메디아(기원전 678년 ~ 기원전 549년, 130년간)
3.3.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50 ~ 기원후 651년, 1201년간)
3.3.1. 아케메네스 왕조
3.3.2. 그리스 영향 하
3.3.3. 수복 후: 아르사케스, 사산조 페르시아
3.4. 이슬람 제국(632년 ~ 1231년, 600년간)
3.4.1. 정통 칼리파 시대
3.4.2. 아바스 왕조
3.4.3. 셀주크 왕조
3.4.4. 호라즘 왕조
3.4.5. 아으 코윤루(1378 ~ 1501, 124년간)
3.5. 대이란국(1501 ~ 1796, 296년간)
3.5.1. 사파비 왕조(1501 ~ 1736, 236년간)
3.5.2. 아프샤르 왕조(1736 ~ 1796, 61년간)
3.5.3. 잔드 왕조(1750 ~ 1794, 45년간)
3.6. 이란 숭고국(1794 ~ 1925, 132년간)
3.7. 이란 제국(1925 ~ 1979, 55년간)
3.8. 이란 이슬람 공화국(1980 ~ )
4. 국가명: 페르시아 & 이란
5. 인종: 페르시아인 & 이란어군
5.1. 이라니언
5.2. 페르시안
5.3. 이란계 종족
6. 위상
7. 둘러보기


1. 개요


페르시아어로는 '''پارس''' (Pārs). 단, 이는 "페르시아" 자체를 학문적으로 지칭하는 것에 한하고 그 외에는 '''فارس''' (Fārs)라고 더 많이 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아랍어에 [p\] 발음이 없어 [f\]로 발음해 아랍어로 فارس 라고 쓰던 것을 페르시아어에서 역수입한 표현이 '''فارس''' (Fārs)이다 (예: زبان '''فارسی''', zabān-e '''Fārsi'''; 페르시아어)
페르시아는 이란에 대한 역사적 호칭이다. 간혹 팔라비 왕조를 페르시아 역사상 마지막 국가라고 칭하는 경우도 보이는데 '''확실하게 틀렸다.''' 페르시아라고 불렸을 때도 정작 자기들 스스로는 이란이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냥 페르시아의 역사 = 이란의 역사이다. 1935년 3월 21일 팔라비 왕조의 레자 샤가 국호의 외국어 명칭을 공식적으로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꾸었다.
한자어로는 "파사(波斯)"라고 쓰인다.

2.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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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란) 역사상 마지막 왕조팔라비 왕조의 황실 문장.
팔라비 왕조의 왕관, 을 든 사자태양(شیر و خورشید‎), 다마반드 산[1], 시무르그, 조로아스터교의 상징물인 파라하바르(فروهر), 시아파이맘 알리의 칼로 알려진 줄파카르 등 페르시아/이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다 들어가 있다.

3. 지배국가



3.1. 엘람(기원전 2700년 ~ 기원전 539년, 2161년간)


  • 기원전 2700년 ~ 기원전 539년: 엘람의 영토, 엘람신앙을 믿음

3.2. 메디아(기원전 678년 ~ 기원전 549년, 130년간)



3.3.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50 ~ 기원후 651년, 1201년간)



3.3.1. 아케메네스 왕조


  •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 조로아스터교를 믿음,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2]

3.3.2. 그리스 영향 하


  • 기원전 329년 ~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 그리스인의 영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3]
  •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2년: 헬레니즘 제국의 영토, 그리스인의 영토
  • 기원전 312년 ~ 기원전 63년: 셀레우코스 제국의 영토, 그리스인의 영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음

3.3.3. 수복 후: 아르사케스, 사산조 페르시아



3.4. 이슬람 제국(632년 ~ 1231년, 600년간)



3.4.1. 정통 칼리파 시대



3.4.2. 아바스 왕조



3.4.3. 셀주크 왕조



3.4.4. 호라즘 왕조



3.4.5. 아으 코윤루(1378 ~ 1501, 124년간)



3.5. 대이란국(1501 ~ 1796, 296년간)



3.5.1. 사파비 왕조(1501 ~ 1736, 236년간)



3.5.2. 아프샤르 왕조(1736 ~ 1796, 61년간)



3.5.3. 잔드 왕조(1750 ~ 1794, 45년간)



3.6. 이란 숭고국(1794 ~ 1925, 132년간)



3.7. 이란 제국(1925 ~ 1979, 55년간)



3.8. 이란 이슬람 공화국(1980 ~ )



4. 국가명: 페르시아 & 이란


우선 "페르시아"의 어원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이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남서부의 땅을 파르사(Pārsa)라고 했는데, 이 파르사 출신의 키루스 2세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파르사를 그리스인들이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스(Perses),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한편 "이란"의 어원은 초기 인도유럽어족의 "아리아"다. 히틀러가 미치도록 좋아하던 아리아인과 통한다. 이것이 아베스타를 거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비시툰 명문이나 낙시에 로스탐의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리아(ārya, ariya)라 하던 것이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Pahlavi)어로 에란(ērān)이 되었고, 이후 오늘날의 "이란"이 되었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 쪽이었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ērānshar)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 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 아리아인(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함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šahan šah ērān ud ānērān", 즉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4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팔라비 샤가 국호를 이란으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전에도 이란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를 페르시아보다는 이란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국호를 바꿨다는 것은 외국에게 자기 나라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4]
물론 페르시아라는 표현 역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우선 현재 이란의 공용어를 페르시아어(퍼르씨, fārsi)라고 부르며 아제리, 투르크멘, 쿠르드, 루르, 발루치, 아랍 등 이란 국내 소수민족/외국인들과 구분되는 주류 민족을 "페르시아인"이라고 부른다. 현 이란 인구 8천만 명 중 "페르시아인"으로 구분되는 숫자는 대략 5천만 명 정도이다. 또 고대에 Pārs라고 불렸던 지역은 지금도 Fārs이고, 인도 지역에 사는 조로아스터교도들도 Parsi라고 부른다. 이란계 제국의 대표격인 아케메네스 왕조와 사산 왕조가[5] 둘 다 파르스 지역에서 발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5. 인종: 페르시아인 & 이란어군


현대 영어권에서는 국명이 이란으로 바뀌기 이전 페르시아의 역사를 다룰 때 Persians와 Iranians를 따로 쓰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5.1. 이라니언


Iranians는 어군 단위, 즉 인도유럽어족 아래 인도이란어파 아래 이란어군 언어 사용 인구를 가리킨다. 물론 "페르시아인"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가며, 이들을 한 데 묶어 "이란계 종족"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 튀르크계 인종들을 다룰 때 현대 터키 공화국의 국민이나 언어는 "Turkish"로, 튀르크계 종족 전체를 가리킬 때는 "Turkic"으로 써서 구분하는 것처럼 이란계 종족들을 다룰 때도 현대의 이란인들은 "Iranian"으로, 이란계 종족 전체를 가리킬 때는 "Iranic"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 그리 널리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5.2. 페르시안


한편 Persians는 그중에서도 아케메네스 왕조의 고대 페르시아어부터 사산 왕조 때의 팔라비어, 그리고 팔라비어에서 계승된 현대 페르시아어(New Persian)를 쓰는, '''이란 본토 주민들'''을 가리킬 때 쓴다. 상술한 바대로 현대 이란 국가의 주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5.3. 이란계 종족


'이란계 종족'에는 페르시아인 외에 쿠르드족, 파슈툰족, 오세트족, 발루치족, 루르족, 소그드인의 후예 타지크인, 사리콜인, 와키인 등이 있다.
한편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도 페르시아계 종족들이 오랜기간에 걸쳐 주거해왔지만 이들은 튀르크인들과 혼혈되면서 튀르크계 언어를 쓰게 되었다. 물론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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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란계 종족(이란계 언어 사용자)들의 분포도. 현대 페르시아어(약 8~9천만 명)[6], 파슈토어(약 4~5천만 명), 쿠르드어(약 2~3천만 명), 발루치어(약 700만~800만 명), 루르어(약 600만 명) 등이 있다. 그 외의 다른 색깔이나 글씨들은 소수 언어나 지방 사투리들을 가리킨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인 다리어(Dari)와 타지키스탄의 공용어인 타지크어(Tajiki)는 현대에 들어 인공적으로 이란의 페르시아어와 분리된 언어이므로 사실상 같은 언어로 취급된다. 이들을 전부 합치면 대략 2억에 가까운 거대한 민족 집단이 탄생한다. 페르시아계 국가들(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을 통틀어서 서중아시아로 부르기도 한다.

6. 위상


로마 제국유럽 지역을 제일 먼저 통일했듯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이집트/메소포타미아/이란/트란스옥시아나 등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여러 문화권을 통합한 거의 '''최초의 세계 제국으로서 세계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경책에 나올 정도로. 비록 사산 왕조의 멸망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 세계의 일부로 흡수되긴 했지만,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란의 높은 수준의 문화와 각종 학문, 과학은 살아남아 이후 그리스·로마 문화와 함께 찬란한 이슬람 문화의 중추가 되었다.
행정적인 측면을 봐도 이슬람 제국 시대에는 아랍인들, 셀주크 왕조 이후부터는 튀르크인들이 군사력에 기반한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실제 정부를 운영하는 관료들은 '''절대 다수가 페르시아인들'''이었다.
이러한 풍토는 오스만 제국에서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관료를 양성하던 Mekteb-i şahane (왕립학교)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페르시아어를 배웠으며, 어린이들이 문자와 기초 학문을 배우던 종교학교에서는 코란과 함께 아랍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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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세 시대에는 현재의 이란 국경 너머 트란스옥시아나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라크, 바레인, 시리아 동부, 터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러시아 체첸잉구세티아, 다게스탄 일대까지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간주했다. 이를 현대의 이란 국가 및 국경선과 구분하기 위해 대 이란(Greater Iran)이라고 부른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란의 정체성이 확립된 사산 왕조 시대의 영역과 많이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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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란의 위상, 즉 현재의 국경선과 시아파를 국교로 정한 점 등은 주로 16세기 '''사파비 왕조를 기점으로 형성되었다'''. 원래부터 페르시아가 시아파라 착각하기 쉽지만, 시아파가 이란의 주류가 된건 17세기 사파비 왕조 이후이고, 그 이전까지 페르시아는 10-11세기의 부와이 왕조와 북부 타바리스탄의 국가들 (알라비 왕조, 바반드 왕조, 아사신 등)을 제외하곤 쭉 수니파였다. 페르시아와 시아파의 역사적인 연관관계는 그닥 없다. 게다가, 수니파 교리를 정립한 대 셀주크 제국의 명재상 니잠 알 물크는 이란인이었다!
9세기 아바스 왕조, 11세기 셀주크 제국에서 14세기 일 칸국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의 지배자들이 대개 수니파인 데다 페르시아 외에도 다른 지역들까지 지배하는 대제국들이었으므로 시아파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대 이란의 국경과 거의 비슷한 강역을 가지고 시아파를 국교로 만든 사파비 왕조가 현대 이란의 근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토로서는 아니었지만 페르시아 문화의 영역은 한 때 북인도 동부 지역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벵골 지역에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주로 벵골 술탄국시대에 페르시아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방글라데시와 인도 벵골 주는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었다. 벵골 술탄국 이전에도 고르 왕조, 델리 술탄 왕조 시대에도 문화적으로 일부 페르시아화된 투르크계 지배층들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슬람과 페르시아식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었다. 무굴 제국 역시 힌두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투르크 문화와 아랍 문화와 더불어 페르시아 문화가 강하기도 했었다. 그 외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 마그레브 지역에도 적지 않게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7. 둘러보기


'''페르시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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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دماوند. 데마반드라고도 한다. 해발 5,610m로 중동 최고봉인 동시에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화산이다. 높은 산이다 보니 페르시아 신화에서도 비중있게 등장하여 올림포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란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배틀필드 3에서도 맵으로 나온다.[2] 네이버 웹툰, '페르샤'가 이 제국의 시조인, 키루스 2세의 이야기를 다뤘었다.[3]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히스토리에'가 이 부분의 역사를 다룬다.[4] 덤으로 아예 국호에 "샤한샤"를 박아서(کشور '''شاهنشاهی''' ایران, Kešvar-e '''Šāhanšāhi'''-ye Irān, 직역하면 State of Shahanshah of Iran 정도) 왕국에서 제국 격으로 올렸다. 그래서 팔라비 가문에게 정식으로 존칭을 쓸 때에는 imperial majesty를 쓴다. 물론 정치 막장으로 해먹다 쫓겨난 지금에는 아무 의미 없다.[5] 즉 파르티아는 이란계 왕조는 맞는데 적통이라기보다는 약간 사이드 취급을 받는다.[6] 페르시아인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고, 별도의 민족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Gilakis & Mazanderanis 포함. 대략 5백만~1천 만 명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