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델 모나코
1. 개요
[image]
마리오 델 모나코의 젊은 시절
[image]
마리오 델 모나코의 나이든 모습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다.
[image]
50~60년대는 오페라의 황금기로서 마리아 칼라스와도 같이 공연했다
둘은 서로를 굉장히 높이 평가했으나 마리아 칼라스는 파트너로서 프랑코 코렐리를 더 선호하긴 했다.
[image]
델 모나코와 그의 아내... 마리오 델 모나코는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다.
군대간 사이에 극장들을 찾아가 자신의 남편에게 오디션을 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정도로 남편의 커리어에 지극정성으로 영향을 끼쳤다
[image]
기록에 따르면 그가 오텔로를 217번을 공연했다는 기록도 있고 427번 공연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어느쪽이던 오텔로를 가장 잘부르고 오텔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성악가였음은 틀림없다.
안그래도 카리스마적인 모습과 뛰어난 성량, 어두운 목소리등 오텔로와 찰떡인 성악가였는데
하도 많이 부르다 보니 세월이 지나갈수록 곡해석력은 더해져만 갔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드라마틱 테너.
1915년 7월 27일(플로렌스 출생) ~ 1982년 10월 16일
2. 상세
별명이 '황금의 트럼펫'인데 너무 오버하는 별명이 아닌가 해서 실제로 들어보면 사람이 대사를 뱉으면서 천둥과 번개를 소환하는 트럼펫연주를 목으로 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그의 인기는 일본에서도 대단하여 일본에 몇차례 방문하였다
61년도에 그의 성량과 실력은 완전히 정점에 이른 시기인데
그가 부른 오 솔레 미오를 한번 감상해 보자 고음 부분에서
지진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나폴리 사람이였고
그에 대한 영향인지 나폴리 칸쵸네에 대한 애정은 상당했다.
성량과 파워가 독보적인데 젊었을 때의 체중은 고작 61kg. 오텔로 같은 격정적이고 파워풀하며 카리스마있는 역할에 특화된 그의 잘생긴 외모와 목소리는 수많은 바그너리안들이 그가 독일어에 능통하거나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불세출의 바그너 명앨범 등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며 탄식한다.
실제로 그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였으나 계약문제로 몇몇 아리아만 녹음을 남길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모나코는 바그너 오페라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항상 독일어 원어로 불렀다.
독어에 비해 영어, 프랑스어는 능통한 편. 61~69년 뉴욕의 메트로폴리안 오페라에서 공연하였고
미국에 오랫동안 체류한 영향으로 이탈리아 엑센트가 있긴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영어로는 노래를 거의 전혀 부르지 않았으나 Edith Piaf의 불어로 된 곡은 몇번 부른적이 있다.
처음에 성악을 배울때는 바리톤인줄 알았으나 배우면 배울수록 낼 수 있는 음이 점점 올라가서 테너라는걸 깨닫게 된 케이스이다.
실제로 그가 바리톤으로 녹음하고 출연한 영상이 있다. 그에게 발성을 가르친 멜료끼와의 인연은 각별한데 멜료끼는 그 당시 이름난 발성교사로 고음에서 후두를 내리고 공기를 더 공급하여 고음을 강하게 내는 창법의 선구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델모나코는 타고난 성대가 아주 강했고 원래 호흡이 좋앗는지 복식호흡등으로 더 강해졋는지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식호흡으로 그랜드피아노를 밀어낼 정도로 복압이 강했다고 한다.
그가 부른 recitar vesti la giubba
처음 부터 끝까지 아주 강력하게 부른다... 괜히 남자의 테너란 말이 붙는것이 아니다.
고음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해 몸을 펼쳐 최대한 숨을 마시고
호흡을 횡격막으로 고정시킴과 동시에 바로 어깨를 제자리에 놓고
턱과 성대를 가깝게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상태에서 뿜어내는 고음은 수천석 사람이 가득찬 전 극장의 모든 사람이 비싼 좌석이든 싼 좌석이든
어디든지간에 같은 크기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이며 모든 성악가의 꿈의 경지다.
75년도에 부른 recitar vesti la giubba
그는 75년도에 은퇴했으므로 은퇴할 당시의 파워와 실력이다.
그가 맡은 노르마의 폴리오네역 그의 아이덴티티인 고음에서도 쫀쫀하게 붙는
성대접지력이 돋보인다.
중간에 성악선생님을 한 번 바꾼 적이 있는데 체구가 작은데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바뀐 선생은 마리오를 레게로 테너로 키우려고 했고 몇달이 지나자 목소리가 작아진걸 느낀 그는 원래 선생인 멜료끼에게로 돌아갔으나 당연히 거절당했다. 거듭된 요청과 사죄를 통해서 다시 멜료끼에게 배울 수 있었다.
63년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한쪽이 8조각이 나는 부상을 입고 다신 걸을 수 없다는 얘기도 듣고 노래실력에도 타격이 있었으나 몇 년간의 피나는 재활과 노력으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사고 난 당시에도 하이C를 불러보고 소리가 나오는 것을 확인 후 기절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
현대의 기타 다른 성악가들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악가들의 모든 편견을 없애버리는데 발성으로는 목소리를 일부러 두껍게 내려고 하는 자연스럽지않은 딕션이나 자세라든지 어딘가 막힌듯한 발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껍고 가볍고 천둥처럼 내리꽂는 성량과 고음을 느낄 수 있으며 외모로는 성악가들은 다 덩치가 있고 뚱뚱한 편이라는 편견을 전혀 느낄수 없을만큼 날렵하고 마르키시오 뺨치는 수준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연기적인 면에서도 성악가들은 노래가 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기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편견을 박살내버리는 드라마틱 테너에 어울리는 눈빛과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
그가 듣는 유일한 단점은 소리를 항상 강하게만 낸다. 항상 고함 치는 것 아니냐 정도? 하지만 다른 테너들이 같은 아리아를 부를 때 피똥싸며 고음을 짜내도 델 모나코처럼 강하게 못부르는 건 아무래도 실력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델 모나코는 마이크없는 공연장에서 노래를 하면 공연장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고...
델 모나코 이후로 드라마틱 테너로 분류되는 테너들은 유튜브에서 비교당하며 하루종일 까이는게 일상적인 현상...
델모나코가 살아있을 당시엔 그가 출연한 오텔로를 보고 듣고 한 성악가들이 오텔로 앨범이나 출연을 거절할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프랑코 코렐리가 그러했다.
유명한 웨스턴 스파게티의 곡중 하나인 Ghost Riders in the Sky를 이탈리아 버전으로 부른 모습..
델 모나코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실제 어린아이와 같은 면이나
음악을 듣고 매우 감동받는 모습이나 음악을 정말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천진난만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일반적인 테너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엔 지우세페 디 스테파뇨, 프랑코 코렐리와 함께 테너 3대장으로 군림했는데 그 중 델 모나코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인식만큼 라이벌같은 관계는 아니였고 서로 간간히 안부를 묻거나 디 스테파뇨나 코렐리가 델 모나코에게 발성에 관하여 물어봤다고 하며 델 모나코는 친절히 아는 범위에서 다 알려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