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바라 츄지
松原忠司.
1815년 ~ 1865년 10월 20일. 신센구미의 4번대 조장.
1. 개요
하리마 국의 오노 번 번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의 이력은 확실치가 않은데, 신센구미 동료들의 회고에서조차 오사카의 낭인이나 혹은 하리마 국 출신일 것이라는 추측에 그치기 때문이다. 안세이 연간에서는 번에서 탈퇴한 후, 오사카에서 세키구치류유술(関口流柔術) 도장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분큐 3년(1863년) 5월, 신센구미의 전신인 미부로시구미에 입대. 8월 18일의 정변 때 민머리에 하얀 띠를 묶고 큰 나기나타를 든, 흡사 무사시보 벤케이와 비슷한 용모를 한 채로 궁궐 남문을 수비하여 이마벤케이(今弁慶)라는 별명을 얻었다. 겐지 원년(1864년), 이케다야 사건에서 부대를 이끌고(혹은 토시조의 부대에 속하여) 전공을 세워 막부로부터 포상금 15냥을 하사받았다. 게이오 원년(1865년) 4월, 신센구미 조직 개편으로 4번대 조장 겸 유술사범이 되었다.[1] 그래서 검술보다는 유술을 선호했다. 그러나 같은 해, 어떤 이유로 인하여 할복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 여파로 평대원으로 격하하고 만다. 결국 할복했을 때 생긴 상처가 곪아서 병사하고 만다.
2. 사망
그가 할복한 이유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었는데, 그가 신센구미 둔소 근처에 자신이 죽인 낭인의 미망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던 것이 히지카타 토시조에게 알려져 엄하게 혼이 난 뒤, 간부로서의 책임감을 느껴 할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설도 있다.[2] 이 이야기는 둔소였던 야기 저택의 주인 야기 다메사부로가 시노하라 다이노신과 사이토 하지메로부터 들은 것이다. 시모자와의 간이 이를 미부 동반자살(壬生心中)로 재구성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