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야 사건

 

'''池田屋事件'''
1. 개요
2. 상세


1. 개요



NHK 대하드라마에서 재현된 이케다야 사건[1]
이케다야 사건은 1864년 7월 8일, 조슈 번도사 번존황양이 지사(志士)들이 아이즈 번다이묘이자 교토수호직[2]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고메이 덴노하기로 납치하려는 모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막부신선조에게 즉결 처분 및 체포된 사건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메이지 유신을 1년 늦춘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2. 상세


시모노세키 전쟁과 8.18 정변으로 조슈는 사실상 교토에서의 실권을 모두 잃어버린다. 게다가 고메이 덴노와 아이즈, 사쓰마가 막부와 타협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자, 도막파였던 조슈는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당시 교토에서 조슈, 사쓰마, 아이즈, 게다가 막부까지 낭인들을 고용하여 반대 파벌을 죽이고 다녔는데,[3] 그 중에서 조슈 번의 낭인들은 주로 산조 키야마치(三条木屋)의 이케다야(池田)라는 여인숙에서 만나 회의를 하였다.
그러던 와중, 6월에 신선조의 부장이었던 히지카타 토시조는 조슈 번의 지사 후루타카 슌타로를 체포한다. 토시조는 잔혹한 고문 끝에 후루타카로부터 조슈 번의 지사들이 이치카이소 정권 요인[4]들을 암살하고, '''교토에 불을 질러''' 혼란을 야기시킨 후, 그 사이에 아이즈 번의 다이묘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덴노를 하기로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5] [6]
국장 곤도 이사미는 이를 듣고 바로 신선조를 출동시켰고, 7월 8일 밤 10시, 신센구미가 조슈 번의 지사들이 모여있던 여인숙인 이케다야를 급습한다. 신선조는 이 과정에서 대원 1명을 잃고[7] 토도 헤이스케가 부상당했으며, 조슈 번은 7명이 죽고 24명이 체포된다. 이 때 많은 지사들을 잃은 조슈는 또 다시 교토에서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다. 당시 기도 다카요시는 옆의 쓰시마 후추 번저에 있어서 체포는 면하고, 금문의 변 때는 추격을 따돌리며 어소 경비를 맡은 번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의 여인숙이었던 이케다야는 수족관[8], KFC, 파칭코 등을 거쳐 2009년 부터는 교토의 신선조 테마로 꾸며진 이자카야가 되었다.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1번대 대장인 오키타 소지가 여기서 각혈하고 시한부선고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참여 신선조 명단과 관련자 명단은 이 사이트 참고.
[1] 당시 이케다야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고 한다.[2] 교토의 치안 및 경비를 담당하는 직위. 오늘날로 따지면 수도경비사령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3] 막부의 신선조가 대표적인 예.[4] 교토 수호직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금리어수위총독(교토 어소와 오사카만을 방어하는 직책) '''도쿠가와 요시노부''', 교토소사대(교토 치안 담당)이자 구와나 번 번주 '''마쓰다이라 사다아키''', 황족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5] 그러나 일각에서는 히지카타가 조슈 번의 지사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 자백을 조작했다는 설이 있다. 납치를 모의했다는 내용이 막부 측의 기록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때 자백을 한 후루타카가 얼마 안 있어 일어나는 금문의 변 때 죽게 되면서 진실을 확인할 방법마저 사라진다.[6] 목조건물이 밀집한 당시 일본의 특성상 아무리 소방설비와 인력을 갖추어도 잠깐의 화재로 도시가 전소될 위험이 있었던지라 방화죄는 미수조차도 극형으로 다스릴정도로 인식이 안좋았다. 요즘으로 치자면 테러행위와 같은 것이었기에 진위여부를 떠나 이 일로 한동안 유신지사들의 인식이 상당히 안좋아졌고, 신센구미는 테러로부터 도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해져 막부로부터 확실한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된다.[7] 사망한 대원은 오쿠자와 에이스케. 사건 당시 곤도 이사미 부대 소속이었다.[8] 유일하게 원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수족관 폐업 후에 건물 자체는 철거하고 다시 지었다. 현지에 있는 비석은 수족관 관계자가 세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