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미 케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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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에도 시대의 인물. 신센구미의 초기 멤버로 '산난 케이스케'라고도 불린다.
북진일도류의 면허개전을 취득했으며 곤도 이사미가 에도의 천연이심류 시위관을 운영했을 때부터 함께 활동했다. 출신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센다이현 검술 교관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실제로 문학과 군학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다 전한다.
2. 생애
1863년 교토에서 신센구미가 결성된 후 초대 국장 세리자와 카모가 숙청되고 곤도 이사미가 새 우두머리가 되자, 히지카타 토시조와 함께 부장에 임명되고, 다시 참모가 되어 직함상 곤도 다음 가는 자리에 있었다. 1~3번대 대장인 오키타 소지, 나가쿠라 신파치, 사이토 하지메보다 연배가 더 높고 북진일도류의 면허개전을 취득할 정도인 검술 실력 역시 이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출중하기에 인선된 듯. 다만 세리자와 카모 살해에는 직접 가담했지만 이케다야 사건 당시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주둔소를 지켰다.
1865년 신센구미 탈출을 감행했다가 붙잡혀 3월 20일 할복. 신센구미를 떠난 이유는 불명확하나 조직 내 질서를 지키는 데 잔혹할 정도로 집착한 히지카타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렸다는 설, 막부파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는 설 등이 유력하게 꼽힌다. 픽션에서는 존황양이파인 야마나미가, 당초 세리자와 카모 등 존황양이파를 주축으로 결성된 신센구미가 존황양이파를 처단하는 등 점차 사상적으로 변질되고 또한 같은 양이파인 조슈 번의 지사들을 연이어 사냥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는 설을 주로 채택.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신센구미 항목을 참조.
비록 탈주하여 할복한 야마나미이나 신센구미를 있게 한 그의 업적을 부정할 순 없었기 때문인지 신센구미에서는 야마나미의 기일만은 빼놓지 않고 성묘를 하였다 전해진다.
3. 창작물
검술에서나 조직내 위치나 상당한 실력자였을 것으로 보이나 신센구미가 전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초입에 퇴장했고 그 말로 역시 추포된 후 할복이라는 형태라 그런지 신센구미 혹은 막말을 다루는 창작물에서도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비중이 매우 희박하다. 대표적으로 한국내 신센구미의 인지도를 올리는데 공헌하기도 한 바람의 검심에서도 작가 코멘트에나 한 번 정도 등장할 뿐 작중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없었으며 때문인지 리그베다 위키에도 여타 신센구미 주요 인물에 비해 상당히 늦게 별도 문서가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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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NHK 시대극 신센구미!에서는 상당히 높은 비중으로 등장. 사카이 마사토가 맡아 호연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도주와 할복에만 에피소드 두 화가 할당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야마나미 케이스케(신센구미!)를 참고.
여러 신센구미를 다루는 매체에선 보통 히지카타 토시조와 불화 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게 묘사하고 있으나 히지카타가 도요타마[1] 라는 필명으로 쓴 하이쿠 집에 '물의 북쪽, 산의 남쪽과 봄의 달'[2] 이라는 시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 시는 山과 南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야마나미(山南)를 떠올리며 쓴 시라는 해석이 있으며 히지카타가 정말 야마나미를 싫어했다면 개인적으로 쓴 이 시에 그를 봄의 달(春の月)에 비유하는 구절을 쓰진 않았을 것이며 실은 둘은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을까라는 설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Fate 시리즈에도 등장했다. 자세한 것은 야마나미 케이스케(Fate 시리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