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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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킹완구에서 제작해 미국으로 수출된 제품.(가장 대중적인 제품이다)
1. 소개
2. 상세
3. 카피품
4. 오리지널과 최신품의 구별법
5. 생산업체
5.1. 정품
5.2. 카피품
6. 제작방법
7. 그 외
8. 관련 문서


1. 소개


1970~1980년대를 살았던 세대라면 한번쯤은 봤을 정도로 당시 초대박 히트를 쳤던 인형. 현재까지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자주 쓰여 유명하다.[1] 못난이삼형제 인형과 그 외 훌라 인형 등을 통틀어 못난이 인형이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보통 못난이 삼형제를 말한다.

2. 상세


1968년 경 일본의 완구제조업체 Iwai사는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개발, 도쿄 본사공장에서 제작하다가 한국 업체인 다이아몬드완구공업에 하청을 주었다. 이 때부터 한국에서 못난이 인형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1973년 쯤 일본 Iwai사와의 계약만료 및 본사의 생산중지로 Iwai사 측이 두고 간 원형들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제작해 팔은 게 대박이 난 것이다.[2][3]

비슷한 시기에 킹완구공업은 수출 전문 업체였지만 수출주문이 들어오지 않자[4]자본을 합작한 일본완구업계 관계자들이 가져온 샘플제품을 카피해 내수용으로 판매했는데, 그 중 못난이삼형제 인형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발 직후인 1968년에서 1970년 사이에 처음 판매가 되었다.
1972년부터 미국 Imperial 사에서 대만과 홍콩에 하청을 주어 만든 제품이 미국 내에서 반응이 괜찮자 1974년부터는 한국 킹완구공업과도 계약을 하여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1978년 공장 폐쇄를 할 때까지 수출했다.
한편 다이아몬드완구의 경우 1980년대 들어 주문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중반, 외국 양배추인형과 같은 다양한 완구가 나오기 시작하자 결국 생산이 중단되고 만다. 이런 생산량의 감소에는 이미 못난이인형이 많은 가정에 자리잡아 시장의 수요가 줄어든 탓도 있다.
한편 타 영세업체에서는 80년대 중반까지 간간이 만들다가 생산이 중지되었다.
1995년, 베이비킹(킹 완구)에 찾아와 못난이인형을 1970년대 배경의 전시회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3000세트를 복각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때 한정생산한 것을 계기로 디자인을 다양화한 못난이인형들이 재생산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 후 덕인기업과 몇몇 중국 업체가 만들기는 했으나 이후 대부분의 못난이인형은 베이비킹에서 제작하고 있다.
1970년대 일본 Iwai사도 엄청난 양을 수출했고 대만,홍콩에서도 많이 수출했지만 일본 Iwai사는 신제품을 개발하느라 생산을 멈추었고 대만,홍콩은 해외 바이어들과 계약이 끝나 생산이 멈추었다.

꽤나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많은 제조사가 만든 만큼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기로는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것부터 저금통으로 쓸 만큼 큰 것까지 만들었다. 시대별·색상·헤어스타일·제조사까지 보면 100여가지는 넘을 것이다.
이 인형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큰 히트를 친 이유는 못난이 인형이 당시 한국 완구시장에 거의 처음으로 등장한 플라스틱 인형이였다는 점과,[5] 특이한 표정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했다는 점 때문에 대중들의 눈길을 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광고에 단골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작은사이즈 한 세트에 90원에서 250원 정도의 싼 가격[6] 때문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소문을 들은 학생이나 신혼부부가 부담없이 살 수 있었던 점도 있다.
한편 원 제작국이자 단기간에 많은 양을 제작한 일본에서는 수많은 장식용 인형과 전통인형에 밀려 한국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다른 장식용 인형들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레트로 완구 매니아가 아니면 한 때 이런 인형이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그래도 2010년대 후반에도 다시 파는 곳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걸 보면 아직 인기를 잃은 건 아닌 모양.

3. 카피품


국내의 경우 출시 때부터 인기가 높았던 탓에 완구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카피품(짝퉁)이 등장했다. 카피품은 품질이 좋지 않아도 정품의 인기에 힘입어 잘 팔렸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위험이 적어 몇 년사이에 카피품 업체만 10개가 넘게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한편 한일자본합작을 한 킹완구와 일본에 납품한 경험이 있는 다이아몬드완구는 일본 완구업계와 자주 접촉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저작권이란 개념이 있으나 마나했고 미키 마우스 같은 유명 캐릭터가 아닌 이상 로얄티 같은건 없었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카피품이 일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국내 카피품업체는 왁스원형을 따로 만들지 않고 플라스틱 사출품을 이용해 금형을 만들었다.당시 킹 완구에 찾아와 대머리에 도색을 안 한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중에 금형제작을 위해 가져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몇 업체는 그대로 베껴만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원형을 다시 조각하거나 조금씩 변형하기도 했으며 다른 인형의 머리를 끼워넣어 팔기도 했다.
대.중.소 사이즈별로 모두 카피품이 있으며 같은 카피품이어도 제작사에 따라 품질이 다르다. 어떤 제작사는 킹완구,다이아몬드 제품처럼 잘 만들었지만 머리심는 기술이 없어 아예 가발을 만들어 붙인 곳도 있었다. 아주 조잡한 제품들은 1970년대 후반 석유파동 이후 제작을 멈추었고 좀 그럴싸해 보이는 제품은 1980년대 중반까지 제작되었다.
문제는 카피품 때문에 국내 원 제작사격인 킹 완구, 다이아몬드완구가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이 회사들은 좋은 품질로 만들었는데 카피업체는 품질관리 없이 대충 만들어도 잘 팔리니 정품업체의 피해가 컸다. 게다가 카피품은 싸게 팔려 197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 것은 값싼 카피품이었다. 그 때문에 내수 위주인 다이아몬드완구는 못난이인형의 유행에 비해 큰 돈은 벌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현재 남아있는 건 품질이 좋은 다이아몬드제품이 많다.
이러한 카피품은 독자적인 한국 완구개발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있지만 대다수 영세업체가 싸구려 원료를 사용해 품질저하[7] 및 유해성 논란이 생겼다. 정부에서 유해완구를 적발하기 시작했지만, 단속이 어려워 별 효과는 없었다.
카피업체는 원래 영세한 완구업체였다가 못난이 인형이 히트를 치니 제작한 곳과 처음부터 못난이 인형을 만들려고 세운 업체가 있다. 후자의 경우 킹 완구나 다이아몬드 완구와 같은 큰 회사의 직원이 기술을 배우고 난 뒤 퇴직 후 운영했으며, 대부분의 업체는 땅값이 쌌던 서울 변두리(교문리·인천 부평구 등)나 동대문,서대문 일대의 달동네,지하실 혹은 시골 언덕배기의 천막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직원이라 해도 10명 내외의 가족 구성원끼리 하거나 동네주민끼리 하였다.
대부분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화재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제조과정에 항상 열이 필요하여 불을 많이 쓰는데다 가연성 소재인 플라스틱을 쌓아두고 있으니 화재가 나기 딱 좋다.)
카피품 중 좀 괜찮은 제품들은 전국의 문방구나 선물가게에서 팔렸고, 질이 많이 떨어지는 제품은 노점상에서 팔거나 선물가게에서 유리상자에 넣어 팔기도 했다. 카피품이 해외에서 종종 발견이 되는데, 외국인(특히 주한미군)이 사가거나 외국 바이어들이 이미 많은 바이어가 몰려있는 킹 완구나 다이아몬드완구 제품은 거래가 힘드니 다른 업체 제품으로 소량거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덕인기업이라는 업체도 1999년 경 못난이인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초반에는 여러 디자인과 크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사이즈의 제품은 베이비킹 복각품을 복제해서 만들어 크기는 조금 작아졌으며, B.K(베이비킹) 각인을 지우고 DUCK IN 각인을 새긴 흔적이 있다. 물론 기본사이즈 제품 중 원형을 다시 제작한 제품도 있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진 못했다.
그러나 덕인기업에서는 2011년 이후 못난이삼형제인형의 디자인 권리 및 상표권을 한 수집가에게 넘기며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 재고품을 판매했다. 2014년 경 베이비킹(B.K) 각인이 있고 피부색이 연주황색인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나
2012년 경부터 단발머리 못난이인형이 제주도 일대에서 유통되고 있는데, 단발머리에 목과 몸통이 붙어있는 것과 분리되는 것이 있다. 목이 붙어있는 건 로테이션 성형으로 제작되었으며, 국적·제조사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제작한 뒤 보따리장수들이 야매로 조금씩 가져와 파는 듯하다. 못난이인형 특유의 거친 느낌이 나지 않아 좀 조잡해보이기도 하고 단발머리가 그닥 어울리지는 않는다. 목에 스프링이 있어 버블헤드로 나온 것도 있는데 역시 중국에서 만든 카피품이다.
또 다른 것으로는 다이소 등에서 파는 마블인형이 있는데, 아마 베이비킹 복각품을 가지고 원형을 만들어 중국에서 OEM으로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카피품 제조사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많은 제조사가 있었고 같은 제조사라도 퀄리티가 일정하지 않아 정확하지 않다.
  • 업체1
머리카락을 가발로 만들어 붙였고, 한쪽으로 몸통이 쏠렸거나 눌린 것이 많으며, 붓으로 칠한 도색 역시 조잡하다. 나중에 품질이 좀 좋아지긴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으며 카피품 중에서도 가장 조잡한 축에 속한다. 중·대형 사이즈는 만들지 않은듯 하다.(1970년대 초반 '님에게' 초콜릿 잡지광고에 나온 인형이다)
  • 업체2
머리카락을 가발로 만들어 붙였고, 도색은 에어스프레이로 했다. 업체1과 비슷하긴 하지만 좀 더 모양이 정교하며,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심어 팔기도 했으나 역시 오래가진 못한 듯하다. 중·대형 사이즈는 만들지 않은듯 하다. 주로 유리박스에 담겨 선물의 집 같은 곳에서 판매했다.
서대문 달동네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업체3
붉은빛의 피부색상이 특징이며, 작은 사이즈의 경우 머리카락을 한 줄만 심어 뒤로 묶었다. 플라스틱 질과 머리카락 원사 질이 좋이 않아 현재 그닥 많이 남아있지 않다. 확실하지 않으나 90년대 중국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 업체4
겉보기에는 정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리본 모양과 옷 주름부분, 얼굴이 약간 다르다. 중·대형 사이즈는 제작했는지 불분명하다. 한성사 제품으로 추정.
  • 업체5
업체4의 제품을 카피해 만들어서 모양은 같지만 약간 작고 품질도 더 조잡하다. 가장 큰 차이는 이 업체 제품은 머리카락을 한줄로 심어 뒤로 묶은 스타일로 나왔다.
  • 업체6
못난이 몸통에 다른 인형머리를 끼운인형과 못난이 삼형제를 만들던 업체인데, 1980년대 중반까지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원형을 새로 조각해 일반적인 소형 사이즈보다 큰 편이다. 중,대형사이즈는 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인천 송도쪽에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Made in china 라는 표기가 적힌 제품이 있는것으로 보아 중국제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인형머리를 끼운인형은 잘 팔리지 않았는지 대부분 유원지 딱총 사격장의 표적으로 쓰이다 90년대 후반 대량으로 폐기처분되었다.
  • 업체7
다른 카피업체들에 비해 많이 만들고 수출도 대량으로 했는데, 어떤것은 킹완구 제품과 거의 비슷한 품질이지만 또 다른 것은 모양이 뭉개져 조잡해 보이는 것도 있다. 금형을 여러번 복제하다보니 모양이 변형된듯 하다. Made in Korea라고 각인이 대부분 되어있고 도색이 번지거나 지워진 경우가 많다. 작은 사이즈로만 만들었으며, 공장이 교문리 쪽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 업체8
단단한 경질 플라스틱으로 제작하였는데, 노란 머리카락을 반곱슬로 심었다. 소형·중형보다는 대형 저금통 사이즈가 더 많이 보이는 편인데, 원료 배합을 대충 했는지 피부가 붉은빛이 나거나 반대로 허여멀건한 것도 보인다. 그래도 도색은 깔끔하게 해서인지 꽤 많이 팔렸다.
  • 업체9
1980년대까지 만들었으며, 업체5와 같은 회사일수도 있다. 중형·대형 사이즈의 못난이인형 몸통에 다른 인형 머리를 조립해 만들었다.
  • 업체10
1983~1984년경 아주 조그만한 못난이인형을 만든 업체인데, 현재 남아있는 제품이 거의 없어 다른 회사에 비해 알려진 것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하지 않음.
  • 업체11
약간 작으며 말랑말랑한 재질로 만들었고 화난인형의 눈 부분이 파란색으로 처리한게 특징. 주로 문방구에서 팔렸다.
  • 업체12
선명한 피부색, 빨간 볼터치,카피품치고는 매우 깔끔하고 선명한 도색이 특징이다. 생산량이 적었는지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대형 인형도 만들었지만 대체로 보이는 것은 중형 크기의 웃는 인형이다.
  • 업체13
주로 대형 저금통 못난이인형이 많이 보이는데, 다른 회사제품에 비해 몸통이 부풀어 있다. 원료를 싸구려로 썼는지 금이 가있거나 변색이 되있는 등 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로 주로 발견된다. 70년대 후반에 생산된 인형은 플라스틱 질도 괜찮고 칠도 깔끔하게 해서 나왔지만 많이 만들진 못한 모양이다.
  • 업체14
업체 3이나 밑의 은찬사 제품처럼 붉은 피부색과 약간 눌린 몸통이 특징인데, 이 업체도 원료를 싸구려로 썼는지 어딘가 금이 가있거나 깨져버린 상태로 주로 발견된다.거의 대부분 중형사이즈의 웃는 인형이 발견된다.
  • 업체15
은찬사 제품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더 작고 말랑한 재질로 만들었고. 치마 레이스와 리본을 붓칠하고 에어스프레이로 나머지 부분을 칠했는데 제대로 칠해지지 않은 곳이 많다. 문방구에서 주로 팔렸다.
  • 업체16
은찬사 제품과 비슷하지만, 좀 더 작다. 업체 15제품과 다른점이 있다면 피부색이 좀 더 진한 갈색이고 단단한 재질로 만들었다. 몸통이 눌린것이 자주 보인다.
업체 13과 같은 회사일수도 있다.
  • 업체17
기본적인 앉아있는 포즈뿐만 아니라 서있는 포즈의 다른 인형의 몸통을 조합하고 인디언 옷을 입힌 인형도 있다.
금발머리카락에 산발, 그리고 선명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칠해진 표정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많이 조잡한데, 그리 많이 팔리지 못한 모양이다.
  • 정림산업
1980년대까지 생산한 후발업체. 주황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에 등에 한자로 정림이라 적혀있는 것이 특징. 웃는 표정만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카피품 중에서는 그나마 질이 좋았다.
기타를 메고있는 인형 이외에도 양복과 원피스를 입은 인형도 있다.
  • 신성완구
1980년대까지 생산한 후발업체. 정림산업과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었는데, 3가지 표정 모두 만들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역시 카피품 중에서는 질이 좋은 편이었다. 현재 발견되는건 대부분 미개봉 상태이다.
  • 대동완구
가끔 흰색이거나 밝은 피부색에 하늘색 머리카락 등 알록달록한 색상조합으로 만든 것이 있는데 대부분 이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다. 까무잡잡잡한 다른 회사제품과 달리 비교적 밝은 색상으로 많이 시판하였다 초기 생산제품이나 다이아몬드 하청제품, 일부 자체생산 제품은 까무잡잡한 피부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다이아몬드완구와 하청관계였던 탓인지 품질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 은찬사
대부분 붉은빛이 도는 피부에 노란 산발머리를 하고 있는것이 특징. 일부 제품은 흰 피부색으로도 제작되었다. 에어건으로 도색한 점을 빼면 초기 다이아몬드 제품과 매우 비슷하다.
비닐봉지에 넣어 팔았는데, 꽤나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제조했다.


4. 오리지널과 최신품의 구별법


한국산 오리지널은 '''KOREA, MADE IN KOREA, IWAI INDUSTRIAL Co.Ltd 197x korea''' 등이 스티커나 각인, 스탬프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산인데 무표기인 경우 보통 영세업체에서 만든 제품이지만 간혹 정품인데 스티커가 떨어져나가 무표기가 된 경우나[8] 애초에 바이어 요구로 각인을 안한 경우도 있다. 반대로 영세업체 제품이 표기가 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정품을 그대로 복사하여 표기도 그대로 새겨진 것이다.
한국산 최신품은 '''B.K, Baby King, Duck in'''으로 표기되어 있다. 소형(기본형 제품) 최신품은 오리지널 제품을 복제해서 만든 것이라 모양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중 대형 최신품은 원형 자체를 새로 만든 것이므로 오리지널과 확실히 모양이 다르다.
아주 가끔 생김새는 덕인기업 제품이지만 아무 표기가 없고 붓으로 색칠한 제품도 있는데, 덕인기업 초창기 제품이다. 반면 베이비킹에서 초창기에 복각한 제품은 현재 나오는 것보다 약간 작고 색이 선명하게 칠해져있고 머리카락이 적게 심어져 있다.
일본제의 경우, 최신품이 없어 오리지널일 가능성이 높으며, 대부분 JAPA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만·홍콩에서 만든 제품의 경우 대체로 오리지널이나 일부는 최근에 복각해서 만든 것이다
. 2010년경 부터 중국에서 목에 스프링이 있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못난이인형이기는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는 아니다.
비슷한 인형인 하와이 인형까지 포함시키면 오리지널과 최신품을 구별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물론 페인팅, 상태, 헤어스타일 등으로도 알 수 있으나 직접 보지 않으면 역시 구별하기 힘들다. 근현대사 물건을 파는 골동품상이나, 수집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그나마 정확하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복각품을 오리지널로 속여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으니 조심해야한다.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리지널과 재현품의 구별 방법이 나왔는데, 오류가 있다. 오리지널은 고무가 삭아 말랑하다고 했으나 이는 제작시 가소제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9]
또한 위에서 서술하듯 오리지널 중 KOREA 표기가 없는것도 상당수다. 방송에 나온 4개의 인형은 초창기 다이아몬드완구 제품이나 은찬사 제품으로 보인다.

5. 생산업체



5.1. 정품


대표이사: 이와이 히데오
1943년 설립해 지금도 운영 중이나 못난이 인형의 생산은 1973년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다. 현재 못난이삼형제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함께 생산됐던 루버돌이 복각되어 판매되고 있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 다이아몬드완구에 하청을 주었고, 1974년부터 다른 한국업체에 하청을 주었다.
1978년 이전 대표: 박청림, 1978년~현재 대표: 강의섭
1960년대 중후반 미아리일대에서 경면실업,밀림공업이라는 업체로 영세하게 시작했으나 1972년 일본 완구업계 관계자가 자본을 합작, 회사명을 킹완구공업으로 바꾸고 가리봉동 수출공단에 입주하며 회사 규모를 키웠다. 주요 제품은 못난이계열의 마스코트 인형이나 디즈니 하청제품, 해외 캐릭터완구였으며 수출품 위주로 생산하였다.
당시 제일제당의 아이미 캐릭터인형도 여기서 만들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PVC완구업체중 하나였고 공장 규모도 건물 하나를 거의 대부분 사용할 정도로 큰 편이었다.
제품 질도 우수해 광고를 하지 않아도 해외 바이어가 알아서 찾아와 계약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1978년 박청림 대표가 갑작스럽게 이민을 가게 되어 회사를 몰래 매각하고 공장을 폐쇄하려 했으나 이를 들켜 당시 전무였던 강의섭 현 대표가 회사를 인수, 가리봉동 공장을 처분한 뒤 1978년부터 4년간 하청을 줘서 생산하다 1982년 경기도 부천에 공장을 다시 세워 신화 트레이딩으로 기업명을 바꾸어 1990년대 중반까지 사용하였다.
그 후 생산시설을 대폭 줄였으며, 기업명칭이 신화 트레이딩에서 베이비킹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와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국내 완구제조업이 무너지며 영업을 중지하려고도 했으나 못난이인형 재생산 요청이 들어와 그 이후 못난이인형을 생산.[10]하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19년 기준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못난이 인형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이다.
  • 다이아몬드완구공업
대표: 송정규
내수 위주로 운영하던 업체로,1960년대 후반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구의동과 경기도 광주에 공장이 있었으며 주요 제품은 못난이계열의 마스코트인형과 봉제인형 플라스틱 부품이었다.
처음에는 영세하게 시작했으나 일본 Iwai 사의 하청을 받으며 기술력을 쌓았다.1970년대 중반에는 금형과 제작설비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킹완구공업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컸던 PVC완구제조업체였다.
그러나 1972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머리카락 심는 미싱 20대와 제품들을 태우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 기존 영세업체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내수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낮아졌다. 한편 유럽,미국 수출은 바이어들이 신화트레이딩에 집중되고 일본 하청물량도 감소하자 결국 다이아몬드완구는 경영난으로 80년대 중반 폐업했다.
한편 송정규 대표는 기존공장을 매각하고 마장동 근처에 작은 완구공장을 차렸지만 얼마 안 있어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구의동에 공장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 무궁화공업사
대표: 임상권, 임철왕
1970년대 당시 부산시 중구 부평동 2가 70에 위치했었고 나중에 회사명이 송림공업사, (주)송림으로 바뀌었다. 주요 제품은 마스코트 인형, 양철 장난감, 기타 완구류였다.
1970년대에 마스코트 토이, 무궁화 인형 등의 상표로 제작·판매하였다. 위 두 업체와 달리 양철 장난감 생산도 병행했고 크고 작은 완구업체가 많았던 부산에서 가장 큰 업체였다. 못난이삼형제의 생산은 불확실하고 하와이인형이나 대형 마론인형을 생산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생산 및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5.2. 카피품


  • 정림산업(파인트리)
1992년도 기준으로 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 378-18에 위치, 1990년대 중반 폐업. 당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영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마론인형을 만들다 폐업한 것으로 보이며 현재 공장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어 사용중이다.
  • 신성완구
1980년대 중반 기준으로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읍 덕소리 461-3에 위치. 1980년대 초 영업을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문을 닫은 뒤 교문리에 있던 몇몇 업체와 함께 중국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큰 이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공장이 있던 덕소종합시장 건물은 남아있으나 대부분 폐쇄되어 방치된 상태이다.[11]
  • 한성사
1970년대 중반 서울시 사당동 252-1에 위치, 1980년대 초반 쯤 폐업. 하와이계열 인형이 주 생산품목이고 못난이삼형제는 불확실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소상 가정집 지하에서 운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 자원사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교문리에 위치했었고, 1980년대 후반 폐업한 것으로 보이며, 근처에 있던 다이아몬드완구공업 제품을 카피하고 하청도 받던 곳이다. 현재 공장이 있던 자리는 빈 터만 남아있다.
  • 대동완구(대표: 정명근)
경기도 미금읍 일패리 615번지에 위치했고, 못난이계열 인형 카피품 제작업체로 다이아몬드완구의 하청업체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장건물은 남아있지만 다른 사람이 쓴지 오래됐다.
  • 삼호사
1970년대 당시 부산시 남구 용호1동 40-8에 위치, 못난이계열 인형 카피품 제작업체.
  • 은찬사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중반까지 운영,당시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덕이4리 984-1에 위치.
  • Anekona Hawaii
홍콩 기업. 현재도 운영중인지는 불분명.

  • 덕인기업
전 대표: 인흥수
1990년대 중반 공장 규모를 줄이고 있던 베이비킹에서 남아도는 설비들을 매입하여 본격적인 제조를 시작했다. 그러다 한부평동의 완구공장을 인수한 뒤 국가로부터 공장이 있던 토지를 불하받아 큰 이익을 얻게 되고 이 이익을 이용해 2000년대 초반, 인천 부평구 가좌3동에 큰 공장을 짓고 2011년까지 사용하였다. 이후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미미월드·영실업,여러 인형작가의 하청을 받거나 자체적으로 마론인형을 생산하고 있다가 최근 못난이삼형제를 다시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을 직원으로 고용했었는데, 다른 완구공장에 비해 근무환경도 좋았기 때문에 상당히 밝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못난이인형 관련 인터뷰나 방송은 다 이 업체에서 하였다.
문제는 덕인기업 측에서 자사 제품이 1970년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홍보하거나 방송에 국내 유일 못난이인형 제조공장으로 소개되는 등 방송 출연시 오류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대부분의 카피품 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 중국의 영향으로 완구산업이 무너지며 망하거나 그 이전에 석유파동이나 하청을 주던 큰 회사가 망하며 같이 망했다.
정림산업·신성완구 같은 일부 업체는 그나마 품질이 좋았고, 어느정도 시설을 갖춘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카피품 업체는 찾아갔더니 야산 한복판이 나오는 등 주소도 엉터리로 기재하고[12]제대로 된 시설도 없었으며 회사명을 비롯한 정보가 안 알려져 있다.[13]

6. 제작방법


소위 말하는 소프비 완구와 같은 원리로 제작되는데, 대부분의 PVC완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생산과정이 간단하지도 않을 뿐더러 못난이 인형은 디자인, 상표등록이 되어있기 때문에 제작사나 저작권자 허락없이 만드는 것은 불법이다.
  1. 왁스로 원형을 만든다.
  2. 원형 표면을 니켈도금을 얇게 한 뒤 동으로 도금하여 금형을 만드는데, 금형은 스러쉬금형과 로테이션 금형으로 나뉜다.
스러쉬 금형은 주로 저가의 작은 크기,로테이션 금형은 고가의 크거나 정밀함이 필요할 때 쓴다.[14]
  1. 원형을 통해 마스타 금형을 만든 뒤 시사출품을 뽑아내고, 다시 시사출품을 도금하여 양산용금형을 제작한다.
  2. 못난이인형은 보통 스러쉬 금형을 쓰는데, 금형에 프라스티졸을 넣고 기포제거 후 온도 300도 정도의 열매체[보통]에 가열하면 표면이 굳는데, 굳지 않은 안쪽을 통에 따라내면 금형 표면에만 플라스틱이 얇게 남게 된다. 이것을 재가열해 완전히 굳힌다.
  3. 금형에서 내용물을 분리하여 식힌다.(관련 동영상)
  4. 내용물이 식으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얼굴, 몸통에 페인트로 색을 칠한다.
  5. 전용 미싱으로 머리카락을 심어준 뒤[15]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조립한 뒤 포장하면 완성.

7. 그 외


어쩌다 못난이인형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다른 인형들에 비해 그닥 예쁜 건 아니어서일 것이다.
일본 Iwai사에서 출시했을 때 상품명은 Juvenile doll 이었다.
사실 자세히 보면 리본이 달린 원피스 혹은 망토를 입고 있는데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는 알기 어렵다. 못난이삼형제라는 말은 모델로 나온 초콜렛 광고에 '초코렛 삼형제'라는 문구의 영향과 짦은 헤어스타일에 때문인 것 같다.
당시 킹완구공업 공장에서는 못난이삼형제 인형을 비롯한 플라스틱 인형의 주문이 폭주하자 1970년대 초반 기준 생산직 직원들은 월 9000원의 봉급을 받으며 미친듯이 제품을 생산하고, 몇 명 안되는 관리직 직원들은 주문정리 및 각종 사무, 해외 바이어나 거래처 상대, 품질관리와 직원복지 및 관리로 인해 생산직 직원이나 관리직 직원 모두 야근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킹완구공업에서는 컨테이너 수준의 수출물량을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보냈는데, 외국으로 나가는 배가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배를 놓치면 한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배를 놓쳐 배송이 늦어지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대부분의 내수는 일찍이 다이아몬드완구공업에 맡겨 넘쳐나는 물량을 소화했다.
킹완구와 다이아몬드완구는 이처럼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기묘한 사이였으며, 서로 주문을 메워주느라 그런지 품질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16]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수출과 내수를 병행했다.(킹완구는 내수 10%,수출90%정도. 다이아몬드완구는 그 반대)
한창 바쁠 때는 머리카락 심는 미싱이 30대 가까이 돌아가며 하루에 인형 머리를 10000개 이상 심었고 컨베이어 벨트를 하루종일 가동했다고 한다.
한편 대만·홍콩에서는 못난이계열 인형의 인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현지에 재고가 남아돌기 시작했는데, 국내 수입업자들이 재고를 수입해 와 부산 일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킹 완구·다이아몬드완구 두 업체 모두 정부로부터 수출지원을 받았었는데, 1979년에 다이아몬드 완구는 수출금융지원 수혜를 받았지만 수출의무를 이행치 않아 6개월간 수출지원이 중지된 적도 있었다.
머리카락 심는 작업은 과거 왕십리나 영등포·부평 등지에서 형제나 가족끼리 미싱 몇 대 정도 가져다놓고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장처럼 미싱을 열몇대씩 놓고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도 있었다. 1990년대 국내 완구제조업의 몰락과 금융위기때 대부분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PVC완구 공장도 인천 부평동 일대에만 여러 곳이 있었다. 대부분 다이아몬드완구나 대협 같은 큰 업체가 망하고 직원들끼리 작은 공장을 세워 운영했는데, 1990년대 후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3개 정도의 업체가 남아있다.
한동안 PVC인형의 제작이 없다가 2010년대 들어 여러 육일돌 작가가 활동하자 생산량이 많아졌는데, 최근 육일돌의 인기가 떨어지며 다시 생산량이 감소중이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못난이인형이 자주 나왔는데, 이 때문인지 한동안 못난이인형 주문량이 증가했었다.
현재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나온 한국산 못난이인형은 다른 고전완구와 마찬가지로 꽤나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데, 당시 인기에 비해 남아있는 수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이 부풀려진 편이다. 해외에서, 특히 미국·일본에서는 배송비 빼면 비교적 싼 가격에 나온다. 물론 수출된 제품이라 흔한 편이며 국내 내수용으로 나온 제품은 잔존량도 적고 가격도 더 비싸다.
만약 옛날 제품을 소장하고 있다면 잘 관리하자.
빛 근처에 두면 색이 빨리 바래버리며, 애초에 내구성이 약한 제품은 금이 가 깨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빛이 들지않는 장식장이나 박스 안에 넣어놓는것이 좋다.

8. 관련 문서



[1] 1970년대 당시 최소 40만세트 이상 팔렸다.[2] 계약만료 이전에도 국내 내수용을 따로 만들어 팔았다. 일본업체에 눈치가 보여서인지 조잡하게 다운그레이드하여 팔았는데 큰 인기는 끌기 전이었다.[3] 당시 완구업계에서 디자인권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4] 당시 신생기업이라 해외 바이어가 주문을 잘 주지 않았다고 한다. [5]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미 플라스틱 인형은 판매되었지만 대부분 수입품이라 가격이 비쌌으며 몇 안되는 국산 제품은 질이 크게 떨어져 많이 팔리지 못했다.[6] 1974년 미도파백화점에서 다이아몬드완구 제작의 작은 사이즈 한 세트를 250원, 저금통용 큰사이즈는 한 세트에 2300원에 판매.[7] 이런 영세업체는 PVC와 가소제,안료를 알아서 혼합해 썼는데 혼합비율도 잘 모르는데다 값싼 싸구려원료를 쓰니 제대로 된 품질이 나올 리 없다.반면 다이아먼드완구나 킹완구 같은 큰 업체는 전문 PVC 제조업체에서 혼합된 원료를 드럼통에 담은 것을 공급받아 사용했다.[8] 스티커를 붙인 제품은 대부분 원형사가 각인작업을 까먹고 안 한 경우다, [9] 오히려 가소제가 날라가면서 딱딱해지는 경우도 많다.[10] 하청을 줘서 제작하고 있다.[11] 애초에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건물이라 누수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12] 실제로 이런 작은 업체들은 시골 구석 밭 옆에 천막을 치고 하거나 주소가 제대로 등록되있지 않은 달동네 판자집에서 하는 상황이었다.[13] 혹시나 재고품이 있을까 하며 가보지 말자. 폐업한지 오래되어 공장은 다 헐리고 이미 수집가가 다녀간 지 오래되었다.[14] 로테이션성형은 스러쉬성형에 비해 자동화되어있어 대량생산의 경우 단가가 싸다.대신 금형 제작비가 많이 든다.[보통] '토렉'이라는 질산칼륨과 아질산나트륨이 주원료인 열매체를 쓴다.[15] 현재 국내에는 기술자가 그리 많지 않으며 일반 미싱과는 달리 미싱바늘이 아래에서 위로 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또한 땀 간격을 감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16] 다이아몬드 제품이 도색이 번지거나 좀 더 알록달록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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