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 곤노스케

 


夢想権之助
생몰년도 미상
전국시대 후기와 에도 시대 초기의 검호로 신토무소류의 창시자. 이름은 카츠요시(勝吉)이며, 6척의 장신이었다고 한다.
히타치의 마카베 성의 성주인 마카베 안야켄(마카베 우지모토)의 가신인 사쿠라이 요시카츠에게 텐신쇼덴카토리 신토류의 오의와 카시마 신류의 히토츠노타치의 극의를 배웠다고 한다.
혼초 무예 소전에 따르면 붉은 색의 큰 원의 문장을 그려놓으면서 어깨에 금색의 대문자로 병법천하제일 히노모토카이산 무소 곤노스케(兵法天下一 日本開山 無雙権之助)라고 쓴 하오리를 입고 각지를 다녔다고 하며, 케이쵸 연간(1596 ~ 1615)에 에도에 나와서 저명한 검사들과 수많은 시합을 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에도에 있을 때 활을 손질하고 있던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승부를 청했다가 주지토메(十字留)에 걸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기에 패했으며, 무사시에게 패하자 치쿠젠의 호만 산에서 기원하여 그 마지막 날 밤에 꿈 속에서 둥근 나무로 이치를 깨달으라는 신탁을 들었으며, 그 이후에 자신이 창시한 장술(杖術)로 쿠로다번에 들어갔다고 한다..라는 일화가 존재하는데... 문제는 무사시가 에도를 방문해서 싸웠다는 행적 기록 자체가 전혀 없으며, 또한 최초로 이 일화가 전해지는 책이 역사서나 일기 등이 아니라 '''가이쇼모노가타리(海上物語)'''라는 '''소설책'''이다. 심지어 가이쇼모노가타리에서는 반슈 아카시에서 시합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걸 무사시 사후 130년 후 이천일류류 사범인 토요타 마사나가가 쓴 무사시에 관한 전기인 무공전을 사료로 토요타 마사나가의 손자가 쓴 니텐기(이천기)에서 '''에도'''에서 나무토막(서양활)을 맞아 일격에 쓰러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났다고까지로 변형시킨다.
이렇게 소설책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일이니 두 사람이 시합을 했다는 장소도, 시기도, 관전자도 전혀 묘사가 없으며. 역사서는 물론이오 니텐기 이전에 무사시 + 무사시의 제자들이 쓴 기록, 오륜서에도 코쿠라비문에도, 탄지 미네히라 전기에도, 무공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일화이며, 특히나 그나마 사료로서의 가치가 존재하는 무공전에는 아예 없는 내용인데다가 니텐기 같은 경우 워낙 거짓과 과장이 심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전무한 책인지라 아예 니텐기 전체를 거짓으로 치부하는 연구자도 많아서 믿기 어려운 일화다.
특히나 일본 전승 무예유파 독본(여기서는 신토무소류의 구전을 말한다.)에 따르면 결국 무소 곤노스케와 무사시와 재전을 신청하여 무사시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문제는 구전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역시 역사 기록이 전무하다..
원래는 이 장술을 真道夢想流라고 했다가 발음이 동일한 神道夢想流로 고쳐서 오늘날에도 검도연맹의 장도부 등에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