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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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t Party USA
홈페이지
청년조직[* YCL (Young Communist League USA)]
유튜브 채널[1]
올해로 설립 105주년.
당사는 뉴욕의 235 W. 23rd Street에 있다. 뉴욕으로 당사를 이전한 초기에는 당 내 주요 인사들이 9층을 사무실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4개 층을 제외하고는 전부 세를 주고 있는 상태. 당에 관련된 주요 자료는 건물의 7층과 뉴욕대학교 도서관의 태미낸트관 (Taminent Library)에 남아 있다. 관련 자료 1만 점 이상을 기증했다고 한다. 공산당이 자신들의 건물에 세를 주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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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산주의 정당. 득표율이 0.1% 전성기 시절에도 0.2% 얻는 군소정당이지만 1984년까지 대통령 선거에 꾸준히 후보를 출마시켰고 2019년 공산당원 Wahsayah Whitebird가 소도시 시의원에 당선되는 등 지금도 여전히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다. 1984년 이후로 대통령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는 건 소련 붕괴 이후 KGB에게서 받아먹던 지원금이 끊겨 재정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2. 역사
미국 사회당 내분(1912년-1919년) 당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당시 코민테른 참여를 주장하는 일부 공산주의자들이 창당하였다. 당원들이 1920년 1월 2일 소련을 위한 간첩 행위 혐의로 70여개 도시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검거당하는 탄압을 받았다. 1950년대에는 공산주의자 통제법으로 인해 탄압을 받았다.
3. 역대 당수
- 1대 찰스 에밀 루센버그 ( Charles Emil Ruthenberg)
- 2대 알프레드 와겐크나흐트 (Alfred Wagenknecht)
- 3대 찰스 더바 (Charles Dirba)
- 4대 루이스 샤피로 (Louis Sharpiro)
- 5대 L.E. 케터펠드 (L.E. Katterfeld)
- 6대 윌리엄 와인스톤 (William Weinstone)
- 7대 제이 러브스톤 (Jay Lovestone)[2]
- 8대 제임스 P. 캐논 (James P. Cannon)[3]
- 9대 칼렙 해리슨 (Caleb Harrison)
- 10대 아브람 자키라 (Abram Jakira)
- 11대 윌리엄 Z. 포스터 (William Z. Foster)[4]
- 12대 얼 브라우더 (Earl Browder) [5]
- 13대 유진 데니스 (Eugene Dennis)[6]
- 14대 거스 홀 (Gus Hall) [7]
- 15대 샘 웹 (Sam Webb) [8]
- 16대 존 바흐텔 (John Bachtell)
- 17대 로잔나 캠브론 & 조 심스 (Rossana Cambron & Joe Sims)[9]
4. 역대 대선 후보
5. 쇠퇴
미국 공산당은 2019년 기준 거의 100년 전에 창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상술한 시의원을 배출하기 전까지는 선출직 공무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미국 공산당이 한때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직후에 창당되던 당시도 그랬지만 1929년 세계 대공황 당시 당세가 크게 확장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당원이 크게 늘었다 정도의 수준이었지 지방선거에서든 상하원 원내 의석을 한번도 확보한적은 없었으며 냉전이 격화되면서 이미지가 더더욱 악화되었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미국 공산당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에 반대함으로써 소련의 지원마저 끊기게 된다.[11]
그러나 미국 공산당이 몰락한 이유를 전부 매카시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고 미국내 좌파단체에서도 위상이 악화된것은 변명할수 없는 수준이다. 위에서 나와있듯이 태생부터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공산당은 지속적으로 소련 공산당과 KGB의 자금 지원을 받아왔고[12] 그로 인해 소련 공산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베노나 프로젝트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심지어 미국공산당원들 중 일부는 실제로 KGB의 지령을 받고 소련을 위한 간첩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공산당원이 자신의 친구인 핵물리학자 시어도어 홀을 포섭해 '''KGB에게 미국의 핵무기 기술을 넘겨준 사건'''이 대표적이다.[13] 물론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미국에서 부진을 면치못하는것을 보면 소련의 간첩행위를 했든 안했든간에 큰 차이는 없었을것이기는 하다(...) 어쨌든 미국내에서 공산당에 대한 이미지가 원체 좋을리가 없었고 원내 기반이 있는것도 아니었으니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그냥 아웃 오브 안중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6. 관련 문서
[1] ZOOM을 사용해 일주일마다 회의를 하기도 한다.[2] 1929년 출당 처분을 받고 반공주의자로 전향. 단 CIA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면서도 노조는 찬성하는 등의 향보를 보였다.[3] 이후 출당 처분을 받고 트로츠키주의로 전향.[4] 1924-1932 대선후보.[5] 1936-1940 대선후보. 후에 쫓겨났으나 그게 자신에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며 공산당 활동을 후회했다.[6] 본명은 프랜시스 자비에르 월드론(Francis Xavier Waldron)이지만 팀 라이언(Tim Ryan)이라는 필명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미국 국회에서 증언할 때는 유진 데니스라는 이름으로 증언하려고 했다. 자기는 세금도 그 이름으로 냈고,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며 4분 45초짜리 영상에서 2분 가까이 말한다.[7] 생몰년도 1910.10.08-2000.10.13(향년 90세), 최장기 재임자 (1959-2000).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집하며 소련의 지원금을 끊기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논란이 된다. 단 홀이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집하며 소련의 지원이 끊긴 시점은 고르바초프 시절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당 내의 파벌 중 하나가 1990년대 초반에 당의 개방과 당 내 민주화를 요구하였으나 거부한 것으로도 비판을 받고 있다.[8] 2016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김.[9] 공동당수. 현직[10]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후보'''.[11]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이나 당시 당수였던 거스 홀이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해서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12] 미국공산당 총서기가 KGB로부터 자금을 수령한 영수증까지 남아있을 정도. 이 영수증에 서명한 사람이 바로 거스 홀.[13]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는 시어도어 홀 자신도 대놓고 미국공산당에 가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