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론
1. 개요
자유주의적 국제관계 이론 중 하나. 냉전 이후 국제관계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요점은 매우 간단하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해석에 있어서 이 분야의 모든 것이 그렇듯 상당히 복잡하다. 18세기 이마누엘 칸트가 주창한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현대에는 마이클 도일이나 브루스 러셋, 루돌프 럼멜 등이 체계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2. 주요 주장들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정의한 ''민주주의 국가'란 다음과 같다
- 집권 여당과 야당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선거에서 자유롭게 경쟁함
- 최소한 성인의 10% 이상은 투표권이 있어야 함
- 행정부를 통제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의회가 있어야 함[1]
- '자유주의적 정부'가 시장 경제를 채택
- 자주적 국내용 정책 보유
- 국민이 사법권을 보유
- 대의제 정부 보유. 성인의 30% 이상에게 투표권이 있거나 일정한 재산이 있는 모든 사람에겐 투표권이 주어저야 함[2]
- 최소 성인의 50% 이상에게 투표권이 있고 한 번 이상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여야 정권교체가 있어야 함[3]
- 민주주의는 곧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며, 권력자들은 비밀투표와 과반수의 선거권 보유를 전제로 한 공정한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한다.
-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 밎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헌법에 기반해 통치를 해야 한다[4]
민주평화론은, 우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민은 전쟁이 날 경우 본인들이 피해를 입는 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거부할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당연하게 여겨지며, 실제로도 상당히 잘 들어맞는 이론이기도 하다.
민주평화론의 핵심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민주적 정부는 전쟁에서 입은 손실로 유권자 대중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은 외교적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보다는 국제 협약이나 협상에 의존한다
- 민주주의 국가들은 비슷한 정책과 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을 적대하는 경향이 적다.
-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그렇지 않는 나라들보다 국부가 많으므로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기피한다
- 하지만 비-자유주의적 (non-liberal)이거나 비민주적 (undemocratic)인 국가들과는 전쟁을 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가난한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국가들과의 전쟁을 기피한다는 설명도 있다.
언뜻 민주평화론은 '민주국가는 (주로 내부적 여건으로) 전쟁을 선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민주국가는 나약해서 전쟁을 회피하려 한다'는 식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침략, 특히 비민주적 국가로부터 먼저 공격을 받으면 더 강력히 맞선다는 주장도 함께 제시한다.
3. 의의
민주평화론은 국제정치에서 전쟁, 평화 여부가 국가 내부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인가, 독재적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내부 요인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외부 요인, 즉 '무정부적인 국제질서'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며, 이를 위해 국가간의 세력균형이나 우위를 강조하는 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성격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평화론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에 대응하는 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적 제도론)에서 전쟁과 평화의 발생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현실주의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갈등의 해결을 국력을 기준으로 보고 따라서 국가간의 힘의 차이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를 서술하는 반면, 자유주의는 갈등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제도(국제 기구나 조약과 같은 것을 말한다)가 얼마나 기능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석유 가격이 발단으로 갈등이 일어났을때 제도적 기구가 부족한 시절에는 물리적 충돌이 빈발했지만 OPEC과 같은 기구가 생기면서 석유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이러한 제도의 역할이 적절히 수행될 수 있는 국내적 기반을 제공한다. 즉, 독재자나 소수 엘리트 집단의 결정은 집권층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뒤집어버릴 수 있고 따라서 제도 안에서의 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게 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기반으로 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그 결정이 오래동안 유지될 수 있으며 또한 갑자기 바뀌어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제도 내에서의 논의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유의할 점은 오늘날 자유주의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논리는 단순히 민주평화론만을 논의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론과 함께, 국가간의 광범위한 경제적 의존, 즉 '''자유무역의 전세계적인 확대''',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장으로서의 '''제도의 확립''', 이 세가지를 축으로 한다.[5]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이 서로간에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유지하면서 UN과 같은 제도 아래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간다면 설령 어떤 분야에서 갈등이 발생해도, 예를 들어 무역에서 관세나 역차별 등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서로간에 대화를 계속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의존성으로 인해 대화를 쉽게 끊지 못할 것이고, 국내적으로도 평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압력으로 문제 해결수단으로 무력을 꺼내기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제도 - 국제기구의 활발한 중재 노력으로 서로간의 의견 접근도 쉽게 가능할 것이니 굳이 갈등의 해결을 무력을 통해 이루려 하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4. 비판과 반론
4.1. 비판
이 이론이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 전제는 그 국가의 국민이 전쟁을 막을 것이라는 논리인데, 미국 국민은 자국의 군사 작전을 막아본 전례가 거의 없다. 이는 위의 전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 미국의 경우에는 세계 최강의 군대와 모병제가 합쳐져 위 전제가 많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오세티야 전쟁 역시 조지아와 러시아 모두 민주국가였으므로 일단은 반례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반론 참조.
4.2. 반론
남오세티야 전쟁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조지아와 러시아 모두 민주국가이긴 한데...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러시아를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위 비판은 민주평화론을 한 측면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 국가가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다. 군사력은 모든 국가가 갈등 해결 및 방어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얼마든지 사용가능한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6] 라고 믿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민주주의 국가는 독재나 과두제 국가에 비해 훨씬 믿을 수 있는 상대로서 상대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민주주의적인 국가일수록 민주주의 국가가 더 호전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왜냐하면 비민주주의 국가는 철저히 상층부의 의사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나 민주주의 국가는 민중이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다소 이상주의적,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의 자유주의에서는 '''민주평화론 하나만 보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서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국가의 행동 원리는 국익에[7] 좌우되기 때문에 국익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면 역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칸트의 삼각형 모형에서 경제적인 상호 의존과 대화와 중재의 장으로서의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이다.
5. 청중비용 이론과의 차이
민주평화론과 청중비용 이론은 별개의 개념이다. 단순히 민주평화론의 연장선상으로 보기에는 두 이론의 지향성이 명백히 달라졌다. 199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피어론 교수가 처음 제시한 데서 유래했다. 청중비용이론은 전쟁을 실패 했을 시 돌아올 비용을 고려하여 지도자가 전쟁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전쟁 여부는 현 지지율, 전쟁에서의 승률, 청중비용의 영향력 등의 변수에 의해 각양각색으로 달라진다. 즉, 민주국가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승리한다거나 혹은 평화를 유지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지속하도록 할 수도 있다. 현 지지율이 높다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의 경우 시도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크다. 반대로 현 지지율이 낮다면 승률이 낮아도 도박을 걸어볼 가능성이 크다. 전쟁에 대한 경향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는데, 한다면 이길 수 있는 전쟁으로 하기 위해 갈고 닦으며, 반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전쟁은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하다가 이길 수 없을 것으로 밝혀진 전쟁의 경우, 무산 시 청중 비용을 고려하려 끝내지 않고 끌고가려는 경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청중비용을 설명하는 데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쿠바 미사일 위기이다. 군사적인 면보다 오히려 국내 여론의 향방이 미국 대통령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더욱 중대한 변수였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 참고
- 세계정치론 (2015).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카오스북
- 김지용,(2014).위기 시 청중비용의 효과에 관한 이론 논쟁 및 방법론 논쟁의 전개과정 고찰,1994-2014.국제정치논총,54(4),195-232.
[1] Small and Singer (1976)[2] Doyle (1983)[3] Ray (1995)[4] Rummel (1997)[5] 이처럼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에서 세계평화의 3대 조건으로 1) 국내체제의 민주성, 2)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의존관계, 그리고 3) 국제기구 및 제도의 발전을 강조하는 것을 '칸트의 삼각형'(Kantian Triangle)이라고 한다. # [6] 2차대전 이후의 전쟁은 거의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 vs 비민주주의 국가, 또는 비민주주의 국가들간의 구도로 진행되었다.[7] 자유주의도 국제정치의 속성으로서 1) 국제질서의 무정부성, 2) 국가들의 이익 추구 속성을 인정한다. 현실주의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를 '한쪽이 이익을 보면 한쪽은 손실을 입는' 식의 '''갈등적'''(일명 제로섬)인 성격이라고 단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들이 대화를 통해 타협, 조정을 추구해서 당사국들 모두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