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화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길화는 1872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구령면 용당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유학자 김미하(金眉下)에게 글을 배웠고, 1882년에 동학에 입도했으며, 1894년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해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뒤 동학과 인연을 끊고 향리에 은거했으며, 1912년 향리에서 삼학서원(三學書院)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에 대한 민족사상 교육에 전념했다.
1921년 같은 부여군 출신인 강철구(姜銕求)가 전년도에 만주로 망명해 대한독립군정서에 가입해 서일 총재의 비서가 된 뒤 독립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공채를 소지하고 부여군으로 돌아왔다. 강철구는 박길화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고, 박길화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그는 문경섭, 김정제(金廷濟), 문장섭(文章燮), 김동순(金東純)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해 강철구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강철구가 모든 독립공채를 처분한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가려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그 바람에 그 역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박길화는 1923년 4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소 후에는 고향에 은거해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이다가 1952년 6월 12일에 병사했다. 저서로 <송은선생유고(松隱先生遺稿)>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길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