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수(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만수는 1897년 2월 2일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全鴻杓)로부터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즉시 수락한 뒤 3월 12일 밤 윤세주(尹世胄)·윤보은(尹輔殷)·정동찬(鄭銅燦)·김소지(金小池)·박소종 등과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의논하고 윤세주 집을 거점으로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밀양면사무소와 부북면사무소 등지에서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위북산에서 밤을 새워 수백 매를 인쇄하는 한편, 수백 장의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이윽고 거사 당일인 3월 13일 오후 1시 30분경, 박만수 등은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장터에는 수천의 군중이 운집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밀양거리는 온통 만세군중의 시위로 수라장이 되었고, 부산에서 출동한 일본헌벙과 수비대는 주모자 체포에 무자비한 행동을 가하였다. 그러던 중에도 다음날인 3월 14일에는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16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하였고, 거리의 주민들도 이에 호응하였다. 결국 군경의 탄압으로 시위대열은 해산되고 박만수 등의 주모자는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박만수는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부산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밀양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4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박만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