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수
1. 횡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수
박봉수는 1898년 3월 14일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창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9월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의 일원인 변낙규(邊洛奎)·김병수(金炳洙) 등이 국내에 잠입하자 이들을 도와 연락기관을 설치하고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들은 평북 구성군에 소재한 거부인 최창학(崔昌學)을 납치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또한 박봉수는 1932년 12월 27일 동지인 장인준(張仁濬)·김일봉(金一鳳)과 함께 영변의 도박장을 습격해 군자금 모집을 시도했으며, 1933년 3월 29일 변낙규와 함께 삭주군에 거주하는 이봉주(李鳳柱)로부터 군자금 42원을 모집하고 위조지폐의 발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얼마 후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3년 8월 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제령 제7호, 폭발물취체규칙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횡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4년 1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봉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3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2020년 4월 15일, 독립유공자 후손 1,544명이 반민족 매체인 TV 조선, 채널 A 재승인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요구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요구서에 서명한 인사들 중에는 박봉수의 자녀 박의창도 있었다.#
2. 황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수
박봉수는 1866년생이며 황해도 황주군 천주면 이동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2일 오후 황주 읍내의 남천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했다가 당일 오후 천도교 교구에서 체포되었고,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박봉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