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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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州郡 / Hwangju County
1. 개요
2008년 기준 인구 155,215명. 황주읍이 중심이다. 서쪽으로 대동강 하구에 있는 지역으로 재령강과도 접한다.
2. 지리
부근 남포특별시와 함께 사과의 생산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위성사진으로 황주 일대를 보면 토양이 붉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테라로사 토양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다.
3. 역사
한사군 시대에는 낙랑군(樂浪郡) 둔유현(屯有縣)이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이 땅을 차지했는데 이 때는 동홀(冬忽)이라고 불렀다.
신라가 이후 이곳을 병합하면서 신라 헌덕왕 때 취성군(取城郡)을 설치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에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을 신라 서북면에 설치했다는 설을 긍정한다면 이 곳도 위치상 패강진 관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말에는 황보제공이 이 지역 호족으로서 왕건을 도왔고, 황주 황보씨는 신정왕태후와 이후 천추태후까지 배출해 고려 초기 정국을 주도하는 주요 세력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지명인 황주가 되었다. 이 황주는 황해도의 '황'에 해당되는 큰 도시였고, 이 이름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에도 대동강에 접한 겸이포(송림) 지역이 항만, 제철로 크게 발달했다. 1931년 읍으로 승격한 겸이포(송림)는 읍이었음에도 인구가 가장 적은 부(오늘날의 시)인 경상남도 진주시에 맞먹었을 정도(5만3천)였다. 하지만 겸이포(송림)가 해방과 함께 송림시로 분리 승격되면서 반토막이 났다. 광복 당시 황주군(송림 포함) 인구는 16만.
이북 5도 행정구역상 남쪽으로 봉산군, 동쪽으로 서흥군, 서쪽으로 재령강을 건너 안악군, 대동강을 건너 평안남도 용강군, 북쪽으로는 평안남도 중화군과 접한다. 한편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한때 평양직할시와 접하였으나 평양의 일부 지역을 쳐내면서 옛날 이야기가 되었으며, 봉산군에서 승격된 사리원시(인구 30만)와 남쪽에 접한다.
4. 교통
평부선의 황주역이 있고, 송림선이 여기서 뻗어나간다. 황주군의 일부인 흑교는 교통 취락으로 평안남도 중화군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흑교역이 있다.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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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었다.
- 황주읍(黃州邑)
- 구락면(龜洛面)
- 도치면(都峙面)
- 관할 리 : 도치(都峙), 가와(加瓦), 금송(金松), 노동(蘆洞), 대송(大松), 상산(商山), 성동(城洞)
- 삼전면(三田面)
- 관할 리 : 내송(內松), 석천(石泉), 외송(外松), 용전(龍田), 철도(鐵島)
- 영풍면(永豊面)
- 관할 리 : 냉정(冷井), 냉천(冷泉), 동산(東山), 성재(成財), 신정(新井), 영풍(永豊), 이정(梨井)
- 인교면(仁橋面)
- 관할 리 : 소매(小梅), 능산(陵山), 묵치(墨峙), 문수(文秀), 상매(上梅), 여이(汝伊), 인제(仁濟), 창대(昌垈), 천파(川波)
- 주남면(州南面)
- 관할 리 : 내함(內咸), 금산(金山), 대세(大稅), 소선(小仙), 순천(順天), 율목(栗木), 이우(梨隅), 정방(正方)
- 천주면(天柱面)
- 관할 리 : 내동(內東), 경천(敬天), 구이(九伊), 내교(內橋), 봉진(鳳進), 와동(瓦洞), 외두(外斗), 외상(外上), 외하(外下), 용계(龍溪), 이동(梨洞), 장좌(長佐)
- 청수면(淸水面)
- 관할 리 : 금광(金光), 묵천(墨川), 석평(石坪), 원정(遠井), 인포(仁浦), 진교(榛橋), 청원(淸源), 토정(土井)
- 흑교면(黑橋面)
6. 명승고적
'''월파루'''(月波樓)
月波樓의 一名은 湧金亭이라 하야 黃州城邑을 등지고 赤壁江沿岸에 놉히소사잇는 樓閣으로 高麗時代의 建物이며 그 建造에 잇서 藝術美를 極盡하야 자못 雄雅한 맛이잇고 附近에 風光이 明麗하야 西鮮唯一의 景勝地이다
7. 여담
- 삭간몰 미사일 기지가 여기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