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1966)

 

<colbgcolor=#878787><colcolor=#fff> '''성명'''
박선영(朴善榮)
'''출생'''
1966년 9월 8일
전라남도 화순군
'''사망'''
1987년 2월 20일 (향년 20세)
'''학력'''
화순천태초등학교 (졸업)
순천동산여자중학교 (졸업)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 / 학사)
'''가족'''
아버지 박운주, 어머니 오영자, 3남 2녀 중 차녀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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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학생민주화운동가이다.

2. 생애


1966년 9월 8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서 아버지 박운주와 어머니 오영자 슬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
화순 천태초등학교, 순천 동산여자중학교, 전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3월 서울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했다. 독재정권과 교대의 폭압성[1]에 맞서 싸우다가 1987년 2월 20일 8장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자결했다.[2]
서울교대 학생이었으나 당시 교대 상황상 학내에서 활동하기는 힘들었고 주 활동 조직은 외부에 있었다. 그의 죽음은 서울교대를 위시한 전국 교대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된다.[3]

[1] 이 당시 서울교대의 학장은 국보위 출신 정태수로 2년제 초급대학인 교육대학을 4년제로 승격시킨 공로가 있으나, '''교대는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 아닌 초등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방침을 실현하려고 서울교육대학을 사유화한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반발하자, 여학생들을 '''여군훈련소'''에 한 주동안 입소시키고 입소 기간 동안의 성적이 낮으면 졸업 자체를 못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 당시 서울교대 측은 유가족에게 '''연애 문제로 자살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진실을 알게된 박선영의 양친은 오히려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3] 서울교대에는 교대 민주화운동 중에 사망한 87학번 남태현도 있으며 두 사람의 추모사업에는 생전의 이소선 여사도 참석하였다. 다만, 서울교대 학생회 내에서는 1989년에 분신자살한 남태현에 비중을 두어 박선영이 선배임에도 추모사업회 이름을 '''남태현 박선영 추모사업회'''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