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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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태현(朴台鉉)
생몰
1886년 8월 20일 ~ 1948년 12월 5일
출생지
충청도 남포군 습의면
(현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추서
대통령표창
박태현(朴台鉉)은 1886년 8월 20일 충청도 남포군 습의면(현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증산리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이철원(李哲源)은 학생 전위대원으로 서울의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만세운동에 동참할 유림 선배들을 규합하였다. 박태현을 비롯한 18명은 원래 4월 16일 장날을 기하여 거행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다음날인 4월 17일 주렴산(珠簾山)에 올라가 국수봉(國帥峰)을 비롯한 3개의 봉우리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징을 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가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함께 부르고 하산하여 웅천읍내 2km 지점까지 행진하다가 일제 경찰의 제지로 박태현을 비롯한 주모자들이 연행되어 시위대는 해산하였다.#[1]
그해 4월 20일 보령경찰서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대를 맞고 풀려났다. 이후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목도한 후 그해 12월 5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다만, 이 자료에는 3월로 오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