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닝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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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독립 전쟁 시기인 1777년 8월 16일 뉴욕 주 허드슨 강 동쪽의 베닝턴에서 대륙군과 영국군이 맞붙은 전투. 캐나다에서 남하해 대륙군을 제압하려던 영국군은 이 전투에서 참패해 기세가 꺾였다.
2. 배경
1777년 8월, 캐나다 주둔 영국군 사령관 존 버고인 소장은 캐나다에서 남하해 챔플레인 호수를 거쳐 허드슨 강의 에드워드 요새로 진격했다. 이에 맞서야 할 필립 슈일러 소장은 허드슨 강과 모호크 강이 만나는 지점의 남쪽에 위치한 올버니에서 대륙군을 주둔시켰다. 당시 그는 티콘데로가 요새를 맥없이 적에게 내주고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고, 병사들의 사기는 극도로 떨어졌다. 하지만 버고인의 상황 역시 좋지 못했다. 그의 군대는 티콘데로가 요새에서 숲을 헤쳐나가며 포병대와 수레들을 운반할 도로를 건설했지만, 주변에 있던 민병대가 조직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나무와 돌을 마구 깔아놓는 바람에 도로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또한 버고인의 부대엔 말이 너무 적어서 브라운슈바이크 드래곤 부대는 여전히 도보로 걸어야 했다.
게다가 버고인은 뉴욕의 영국군 지휘관 윌리엄 하우 소장과 의견이 맞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버고인은 하우가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자신과 합세하기를 원했고, 식민지 문제 국무장관 조지 사크빌 역시 하우에게 버고인과 협조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하우는 사크빌이 버고인에게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해놓지 않은 점을 빌미로 삼아 자신이 반란 세력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를 침공해 적의 주력을 잡아끄는 것이 허드슨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면서 버고인에게 자신의 군대가 필라델피아로 갔음을 편지로 알렸다. 이로 인해 버고인은 단독으로 적의 세력 한복판에 고립된 상황에 몰렸다.
버고인은 바움 대령에게 멘체스터 연대 800명을 이끌고 에드워드 요새 동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말을 회수하고 식량 공급을 연결한 뒤 그 지역의 반항적인 식민지 주민들을 제압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바움은 진군하던 중 베닝턴에 물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자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편 영국군이 티콘데로가 요새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접한 뉴햄프셔 의회는 슈일러 장군에게 불신을 느끼고 존 스타크 준장이 지휘하는 민병대를 구성했다. 프링스-인디언 전쟁에서 활약한 경력을 갖춘 스타크는 이 지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주민들이 그의 군대에 합류하기 위해 베닝턴에 모여들었다. 한편, 버몬트 공화국의 지휘관 세스 워너가 지휘하는 그린 마운틴 보이즈는 허버튼 전투에서 패한 뒤 맨체스터에 주둔했다.
8월 16일 베닝턴 외곽 왈룸삭 강에 도착한 바움은 그곳에 주둔한 적이 아군보다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급히 버고인 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버고인은 바이만 대령에게 바움을 구원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존 스타크 준장이 대륙군을 이끌고 공격하면서 베닝턴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대륙군
- 지휘관: 존 스타크 준장
- 병력: 존 스타크의 병력 2,000명 +세스 워너의 병력 350명
3.2. 영국군
- 지휘관: 프리드리히 바움 대령, 하인리히 폰 바이만 대령
- 병력: 바움 대령의 800명 + 바이만 대령의 500~600명
4. 전투 경과
바움의 영국군은 왈룸삭 강에 설치된 다리 주위에 배치되었다. 그의 부대 일부는 강 남쪽에서 요새를 서둘러 건설하고 있었고, 다른 부대는 북쪽에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드래곤 부대와 영국 라이플 부대는 다리에서 반 마일 떨어진 언덕에 배치되었다. 8월 16일엔 폭우가 쏟아져서, 양측의 군사 이동은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오후 중반에 어느정도 비가 잦아들자, 니콜스 대령과 헤리크 대령이 이끄는 대륙군 부대가 전장을 우회하여 브라운슈바이크 드래곤 부대가 지키고 있는 언덕을 후방에서 측면으로 공격했다. 발포 소리를 들은 호바트 대령은 강변에 자리잡은 토리 민병대를 공격했고, 존 스타크 준장은 주력군을 이끌고 영국군의 주력을 공격했다.
바움의 영국군은 적이 이렇듯 체계적인 공세를 펼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해 순식간에 무너졌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숲속으로 도주했다. 전투 도중 중상을 입은 바움과 브라운슈바이크 드래곤 부대는 언덕 위에서 저항했지만 탄약이 부족하자 결국 항복했다. 얼마 후 바이만 대령의 군대가 베닝턴에 접근했다. 스타크는 마침 전장에 도착한 워너의 그린 마운틴 보이즈와 합세해 이들을 공격했고, 바이만 대령의 부대는 순식간에 붕괴되어 퇴각했다. 존 스타크 준장은 대륙군을 이끌고 밤이 될 때까지 적을 추격해 막심한 피해를 입혔다. 이리하여 베닝턴 전투는 대륙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5. 결과
바움과 바이만의 영국군은 900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기록했고 대포 4문을 상실했다. 반면 대륙군은 70명의 사상자만 기록했다. 대륙의회는 베닝턴 전투 이전 스타크가 슈일러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에 분개해 뉴햄프셔 의회와 심각하게 갈등했다. 하지만 베닝턴 전투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륙군은 비로소 스타크를 정식 준장으로 인정했다. 이후 스타크는 대륙군의 주요 군인 중 한 명이 되어 영국을 상대로 활약했다. 반면 존 버고인 소장의 영국군은 베닝턴 전투 패배로 물자 보급에 곤경을 겪으면서 점점 고립되다가 결국 새러토가 전투에서 파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