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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와츠의 SF 소설
외계문명과의 접촉 및 우주탐사에 관한 SF 소설이다. 자의식 및 정신활동이 진화적으로는 어떤 가치가 있고 그 본질은 어떠한지를 탐구하는 하드 SF다. 생물학자답게 우주선의 각 부위나 기계장치를 묘사할 때는 해부학적인 용어를 써먹는다.
제목을 직역하면 맹시(盲視, blindsight). 뇌 손상으로 눈앞이 안보이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테면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한다거나, 손을 뻗어 물건을 잡는 등. 뭔가 초능력스럽지만 신경학계에서 실제로 보고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2006년에 영문판이 나왔는데 각종 상의 후보에 올랐을 뿐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자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저자가 무료로 공개해 버렸는데 (지금도 영문판을 다운받을 수 있다) 그 후로 각국에서 팬층이 알음알음 생겨나고 있는 상황. 무료로 읽은 팬들이 저자에게 고맙다며 책값을 보내준다거나, 자국에서 책이 나오도록 돕거나 해서 저자가 그 덕에 먹고 산다. 한글판의 경우 김창규가 번역해서 2011년에 출간했다. 2014년에 일본 성운상을 수상했다.
1.1. 줄거리
2082년 지구 상공에 65,536개[1] 의 외계물체가 출현한다. 반딧불이(Fireflies)로 명명된 이들은 완벽한 격자 대형으로 지구 전체를 뒤덮더니, 마치 사진을 찍듯 번쩍 빛을 내고는 소멸되어 버린다. 반딧불이가 발생시킨 전파의 충격으로 인해 지구의 인공위성은 전부 마비가 되고, 인류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사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반딧불이들이 모종의 암호화된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관련 지점이 태양계 안쪽임이 확인되자 서둘러 최정예 팀을 구성하고 급파한다. 소설은 대원 중에 한 명인 시리 키튼(Siri Keeton)[2] 의 시각에서 탐사 임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진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탐사는 진행할수록 의문투성이다. 외계물체의 의도는 무엇인지, 적대감이 있는지 없는지, 지능이 있기는 한 건지, 위험한 존재인지, 생명체가 맞기는 한 건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 그러는 주제에 미끼를 던지고 사각(死角)지대에 숨는다거나, 사람의 맹점을 활용한다거나, 인간의 지성을 역이용한다거나 하기 때문에 무척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탐사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수수께끼를 추리하고 파악해내는 건 독자의 몫이다. 결말에서 모든 걸 친절하게 설명해주길 기대하고 읽지 말자. 보다 천천히, 작품 구석구석에서 제시하는 각종 정보들을 꼼꼼하게 체크해 나가면 의외로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사실 작품에서 그야말로 '맹시(블라인드사이트)'를 만드는 게 난무하는 기술용어들(...)인데, 사실 거기 신경쓰지 않아도 줄거리 자체는 명쾌한 편이고 메세지도 어렵지 않다. (특히)SF를 즐겨 읽어 훈련이 된 독자라면 그리 어렵다고 할 수도 없는 편. 이쪽 계열에 익숙지 않는 독자라면 차라리 기술용어 같은 건 스타트렉의 워프 속도 같은 수준으로 대충 받아들이고 전체 맥락을 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보다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매우 비범한지라(...) 이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지도.
1.2. 등장 인물
대원 중에 멀쩡한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우주여행시 동면에 들 수 있도록 '''대원들 전원이 뱀파이어 유전자를 이식받았다'''. 극한 임무는 정상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게 작가의 평소 생각인 듯.[3]
- 아만다 베이츠 소령 (군사 고문)
- 수전 제임스 (언어학자)
뇌에다 다중인격을 심었다. 별칭은 4인방(Gang of Four). 말하는 중에도 수시로 인격이 바뀐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사물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 어떤 언어라도 금새 파악할 수 있으며, 뭐든 대화로 풀어가는 걸 선호한다.
- 아이작 스핀델 (생물학자)
유쾌하고 친절하며, 상대가 사이코패스라 할지라도 호감을 품고 친구로 삼을 수 있는 녀석이다.
- 로버트 커닝햄 (생물학자)
모니터, 센서, 기계팔 등등 각종 기기를 뇌신경계에 직접 꽂아서 사용한다. 장비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신체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일종의 사이보그와 비슷한데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 스스로 신체와 뇌의 일부를 많이 희생했다.
- 시리 키튼 (종합가)
작중 화자. 한 발짝 물러나 임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역할이다. 어린 시절 심한 발작을 앓아서 뇌의 절반을 들어내고 기계로 대치했는데, 그래서 감정도 공감능력도 결여되어 있다. 지구에 계신 윗분들께 보고하는 일 이 주 임무라 다른 대원들 입장에서는 시리가 불편하다. 관찰능력, 객관성, 데이터를 이모저모 변환시키는 자질은 최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 주카 사라스티 (부지휘관)
뱀파이어. 생각의 속도가 인류의 한계를 현저히 뛰어넘는 팀의 리더이자 전략가. 뱀파이어는 오래 전에 멸종했지만 현대 유전공학 기술로 복원해냈다. 인류를 사냥했던 종족답게 한 공간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과 동물적인 공포감을 선사한다.
- 테세우스 (우주선 겸 선장)
우주탐사선 자체가 선장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다. 한시가 급한 임무라서 아무런 무장도 갖추지 않고 출발하긴 했지만, 시간을 들이면 식량이든 로봇이든 무기든 뭐든지 생산할 수 있다. 태양 근처에서 생산된 에너지원을 양자정보 형태로 수신받는다.
1.3. 뱀파이어에 관한 설정
저자가 생물학자라 그런지 생리학적 묘사가 굉장히 자세하다. 바이러스 때문에 흡혈귀가 된다는 흔한 설정 대신, 진화된 고대 종족이라고 한 점이 특이하다. 박쥐나 안개로 변신하는 건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빼버렸지만 그 외에는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종교나 심리학적 측면이 아니라 흥미롭다.
뱀파이어는 선사 시대에 살았던 인류의 아종으로 호모 사피엔스 뱀피리스(homo sapiens vampiris)로 분류된다. 겉으로 보이는 골격은 인간과 크게 차이나지는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뱀파이어 화석을 원시인 화석과 구분해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뼈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인간과 차이 나는 점들이 많다. 육식을 하는 습성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각종 기생충 및 프리온(prion)에 더 많이 노출되었는데 이 때문에 면역력이 강한 개체만 살아남았다. 또 인간의 눈 속에는 원추세포가 3종이 있는데 비해 야간에 사냥을 즐겼던 뱀파이어는 4종의 원추세포를 갖게 되었고,[4] 4번째 원추세포로는 적외선을 감지한다. 청각 능력도 인간에 비해 탁월했으며, 잡아먹을 식량(인간)이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걸 선호했다. 그래서인지 천재 자폐증 환자와 비슷한 뇌 구조가 발달했다. 모든 정보를 멀티코어 CPU처럼 병렬로 처리하기 때문에 사고능력이 초고속이다.
뱀파이어의 모든 특징은 유전학적으로 단 하나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X염색체 위에 있는 Xq21.3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최초의 시발점이다. 이 돌연변이는 많은 장점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들도 같이 불러왔다. 우선 신경 발달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스스로 합성할 수 없게 되어[5] 음식으로 섭취해야만 했다. 문제는 인간의 번식 속도가 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느리다는 점. 그래서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뱀파이어는 주기적으로 동면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흘러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뱀파이어의 존재가 잊혀질 즈음이면 다시 깨어나 사냥을 하곤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번성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라 전성기였을 때조차 개체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약점은 시각 계통에서 발생한 일종의 버그였다. 가로로 된 선과 세로로 된 선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즉, 십자가를 봤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시각 데이터를 고속으로 병렬 처리하는 신경회로에 문제가 생겨서 심한 발작 증세가 나타난다. 이를 '십자가 결함(Crucifix Glitch)'이라고 부른다. 자연계에서는 직각이라고 할 만한 게 없으니 아무런 문제 없이 이러한 특성이 유전되어 내려왔는데, 인류가 건축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언제나 직각으로 지어댔기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식량에 접근하지 못하고 굶어죽기 일쑤였다. 결국 선사시대가 저물어 가고 문명이 태동하자마자 뱀파이어는 멸종에 이르게 된다.
후대의 과학자들이 유전자 치료기술을 개발하던 중 우연히 뱀파이어를 복원하게 되었는데, 다방면으로 쓸모가 있어서 연구 주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일단 초고속 뇌는 쓸모가 많다. 또한 동면하는 능력은 장거리 우주여행에 필수적이라, 작중에 등장하는 탐사대원들도 전부 뱀파이어 유전자를 이식받았다. 현대의 뱀파이어종은 유전자 치료기술 덕에 인간을 먹지 않고 스스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본능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지 사람을 보며 입맛을 다시거나 한다. 평소에는 십자가 결함을 누그러뜨리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약물을 투여받는다. 명칭은 항유클리드제 (anti-Euclidean drugs). 명칭으로 봐서는 시각을 일부러 일그러뜨리는 약제인 모양인데, 그런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뱀파이어는 천국(Heaven)이라는 가상세계에 접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픽셀 단위로 속속들이 다 보이기 때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
2. 로빈 쿡의 소설
의학 스릴러다.
[1] 2의 16승에 해당하는 숫자다.[2] 공교롭게도 시리(Siri)는 2011년에 나온 음성인식 앱 이름이기도 한데, 책이 2006년작이라는 걸 기억하자. 음성인식 서비스는 커녕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발표된 원년이다.[3] 전작 리프터스 삼부작은 심해 탐사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도 정신 상태가 제대로 된 탐사원이 없었다.[4] 뱀이나 고양이 같은 야행성 포식동물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성이다.[5] 정확히는 ε-Protocadherin Y 단백질. 이 단백질을 합성하려면 Y염색체상에 존재하는 유전자 코드를 활용해야 하는데 뱀파이어는 이 코드를 읽어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