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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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슐러 K. 르 귄. 헤인 연대기의 일부.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탐구가 만들어낸 SF의 명저. 쌍둥이 행성인 우라스와 아나레스는 전혀 다른 체제로 유지되고 있었다. 200년 전 우라스의 빈부 격차와 남녀 차별에 반기를 든 한 혁명가에 의해 비롯된 아나레스의 사회주의 실험은 평등하고 모순되지 않은 사회라는 목표를 가지고, 우라스와 대부분의 관계를 단절한 채 지속되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관료체계와 집단주의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는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되고, 이에 반하여 이른바 '자발적 조직' 이라는 단체의 주도 아래 물리학자인 쉐백이 목숨을 걸고 두 행성의 교류와 발전을 위해 우라스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대와는 달리 우라스에서 기다리는 것은 국가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음모였다.
-표지에 써있는 소개
어둠의 왼손과 더불어 헤인 연대기 중 1,2등을 다툰다.
어둠의 왼손, 로캐넌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이 말그대로 개고생하는 와중에 깨달음을 얻는 게 주요 스토리인데 어슐러 할머니도 어지간히 새디스트인 듯.
아나레스와 우라스인들의 외모는 기본적으로 인간(지구인)과 비슷하게 묘사되지만, 다른 포유 동물과 마찬가지로 온 몸에 털이 수북한 설정이다. [1] 절절한 로맨스 장면이나 고도의 성찰을 하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 털 묘사가 나와 묘한 위화감을 자아낸다. 다만 우라스 여자들은 제모를 해 매끈한 피부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라고.
성별적으로도 평등한 아나레스 인들은 남녀용 이름이라는 개념도 없다. 이름은 데이터 베이스에서 랜덤으로 고른다.
냉전시대때 쓰여진 작품으로, 미국(우라스)vs소련(아나레스) 구도에 대한 은유로도 많이 읽힌다. 물론 일대일로 대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발상의 시발점이 된 것으론 보인다 [2].
우라스는 지구와 같은 행성을 지칭하는 말이고 그 안에 여러 나라들이 있다. 이 중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는 에이 이오와 같은 나라도 있고 또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를 의미하는 츄와 같은 나라도 있다. 이 두 나라는 작중 냉전 중이다.
반면 아나레스는 지구로 이야기하자면 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라스의 위성에 계획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아나레스는 아나카즘적인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소유라는 개념을 없앤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 곳에서는 과도한 모성애조차 자기중심적이라고 죄악시하는 문화를 교육하고 있다. 공동육아가 일반적이다. 오도라는 혁명가가 만든 사상에 기반해 있고, 건국 당시에 철저하게 계획[3]하여 순수한 자발적 의지와 책임감으로 사회가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르귄은 이런 사회에서조차도 인간의 본성 때문에 관료화되고 법과 경찰이 생긴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런 경향성과 주인공의 갈등이 소설의 주 갈등 중 하나다. 실제로 아키즘vs아나키즘에 대한 성찰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로버트 A. 하인라인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하고 여러 모로 비교된다. 예를 들어 똑같은 경찰없는 무정부 사회지만 르귄의 아나레스에서는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서 나쁜 놈들이 없는 반면, 하인라인의 달사회에서는 나쁜 짓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맞아죽기 때문에 경찰이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4].
헤인 연대기 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신기 앤서블의 기초이론을 주인공이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사건 중 하나다. 이를 동시성 이론이라고 하는데, 시간은 선형적 것이 아니라 병렬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가 쓴 유토피아 계열의 소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소설. 인류가 가장 진보적이었던 70~80년대의 꿈이 담겨 있다.

[1] 후반부에 지구인(테라)과 만나 마치 갓난아기 같다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2] 다만 이러한 독해는 다소 적절치 못하다. 현실의 냉전시기 미소갈등에 해당하는 작중 갈등은 우라스의 자본주의 국가인 에이 이오와 독재적 공산주의 국가인 츄이며, 아나레스인인 쉐벡은 명백히 이 양자의 갈등에서 한 발 벗어나서 '개인의 소유를 절대시하는 에이 이오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츄의 공산주의'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쉐벡의 호의를 얻고 싶어하는 다른 우라스인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아나레스에 더 우호적이라고(츄인은 아나레스의 아나키즘과 자신들의 공산주의는 같은 혁명운동 시대의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에이 이오인은 츄의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주장한다. 즉, 정치적 은유로써 본다면 아나레스는 소련의 은유라기 보다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양강보다 더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역사적으로 실존하지는 않았고 그 가능성만 제기되었던 제 3의 지향을 은유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3] 심지어 언어도 인공어이다. 소유라는 단어가 없다.[4] 아나레스인들이 폭력에 매우 익숙치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폭력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은 오독이다. 작중에서도 쉐벳이 쉐벡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를 보던 주변인들은 (쉐벡이 도움을 요청했다면 도와줬겠지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니 그들 사이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내버려둔다. 또한, 쉐벡의 우라스행을 반대하는 시위에서도 폭력에 익숙하지 못한 아나레스인들이지만 돌 정도는 던지는 모습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작중에서도 성폭력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맞아죽지 않으려고 스스로 '섬'으로 들어간다(감옥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일단 어디까지나 밖에서는 못 버티겠다 싶은 사람들이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는 개념이 있는 것을 보면,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강제력이 없는 사회에서 주변인들의 인식과 집단적 영향력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설정은 대단히 비슷하다.